임신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의 차이로부터
해가 바뀌면서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대대적으로 바뀐 친구들과 늦은 신년회를 하게 되었다. 직장에서 승진을 한 친구도 있고, 2020년엔 결혼식을 올릴 예정라는 친구도 있었다. 각자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혹은 성큼성큼 걸어 나가고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서로의 속도가 다를 뿐 언젠가는 인생에서 한 번씩 거쳐가거나 고민해 볼 만한 흔한 주제들이었다. 단 한 가지, 난자 냉동에 관한 이야기만 빼고.
이야기의 발단은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에게 아이 계획을 물어본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친구는 가능하면 둘 정도 낳고 싶고, 아들과 딸 골고루 낳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천륜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본인에게 한 명이 오면 한 명을 잘 키우고 두 명이 오면 오는 대로 잘 키워보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현재 남자 친구가 없는 또 다른 친구는 본인이 30대 후반이 되어서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다면 비혼식을 할 거라고 외쳤다. 덧붙여 혹시 비혼식 후에 늦게라도 짝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면, 축의금 없는 결혼식을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친구는 늦은 결혼보다 그에 따른 노산이 걱정되어 난자 냉동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갑자기 튀어나왔지만, 사실 난자 냉동은 평범한 여성들도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문제다. 아니, 적어도 궁금증 때문에라도 인터넷에 검색은 해봤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지인이 한쪽 난소와 난관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이후, 한 번씩 난자 냉동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면 고민해봤다. 지금은 아픈 곳이 없지만, 언제 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될지, 암환자가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건강할 때 미래를 대비하는 보험을 든다면, 난자 냉동을 한 번씩 고민해보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할까 말까에 대한 고민보다도 소시민으로서 비용에 대한 부담이 가장 크고, 이는 절대적으로 현실적인 문제이기에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당장 언제 결혼을 할지 구체적인 청사진도 세워놓지 않은 상태에서 주니어에 대한 걱정이라니,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난자 냉동을 화두에 올려놓은 친구의 입장은 달랐다. 그녀는 ‘건강한’ 상태, ‘조금이라도 더 젊은’ 상태의 난자를 저장해야 나이가 들어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 ‘나이 든 상태’의 난자보다 우월할 거라고 생각해 ‘지금’ 난자 냉동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즉, 한 살이라도 더 어리고 아직 여유가 있을 때 난자를 냉동해놓고 싶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봤던 뉴스 기사를 통해 특정 전문병원을 기준으로 난자를 냉동하는 여성이 4년 사이에 15배가 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세먼지 등 치명적인 환경 문제와 더불어 신체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신체 부속 기관인 난소와 난자도 함께 나이 들어가고 쇠약해져 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기술이 발달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불안감’ 조차 돈만 있으면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경이로웠다. 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건강한 2세를 얻을 확률, 원하는 미래를 이뤄나갈 수 있는 확률이 낮아진다는 점은 썩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더불어, 자연 상태에서 원래 그렇게 설계되고 만들어진 것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남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를 여성들은 살면서 고민해본다는 사실에 불만이 솟구쳤다. 물론 남자들도 큰 병에 걸릴 미래를 대비해 더 젊을 때 건강한 정자를 냉동할 수 있지만, 여성은 ‘폐경기’ 혹은 ‘완경기’라는 것이 삶에서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를 대비해서 난자 냉동을 생각하는 여성들이 더 많다. 결혼 시기가 늦어지고, 결혼을 하더라도 딩크족을 고려하게 되는 요즘 세태와도 동떨어지지 않은 현실적인 고민인 것이다.
과거에는 결혼이 거의 필수였다. 결혼하지 못하면 신체와 정신에 하자가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괜한 오해를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대다수 젊은 세대들이 부모의 노후를 본인이 온전히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물론 어느 정도 도움은 드리겠지만), 본인의 자식들도 노후 보험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아이를 낳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지인처럼 “나는 아이를 ‘안’ 낳는 거지, ‘못’ 낳는 게 아니야.”라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막상 ‘못’ 낳을 확률에 가까워지니 ‘아직 한쪽 난소가 있을 때, 지금이라도 한 명 낳아야 하는 걸까?’라고 생각을 바꿔 먹게 된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친다면, ‘진작 난자 냉동해놓을 걸!’이라는 격렬한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안’이 아니라 ‘못’이 되어버리는 비자발적 선택 상황에 닥쳤을 때를 대비해서라도 난자 냉동, 돈은 많이 들겠지만 실천해야 할까.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