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Feb 21. 2020

그 인증샷, 어디까지 믿을 텐가?

모임에서 자리 옮길 때마다 보고하고 보고 받는 커플


“모임에 나간 연인을 어디까지 믿나요? 아니, 연인의 인증샷을 100% 믿나요?” 


단순히 메시지뿐만 아니라 사진이나 영상까지 쉽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되면서 연인 간에 ‘인증샷’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내가 20대 초, 중반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연인이 친구들과의 약속 자리라던지 회식에 참석한 경우, 자리를 옮길 때마다 일일이 사진 찍어 보내며 안심하게 해 준다는 이야기를 자랑삼아 말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마치 그러한 보고가 연인 간 사랑과 신뢰도의 척도인 것처럼 말이다.


나 또한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무심한 남자들 특유의 ‘연인에게만은 다정하고 세심한’ 모습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그래서 당시 만나던 연인에게 직접적으로 인증샷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내 친구 커플은 이렇게 한다더라’라며 은연중에 강요 아닌 강요를 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심리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평범한 남자들도 인증샷까지는 아니더라도 자리를 옮기게 되면 연인에게 메시지나 전화로 바뀐 행선지를 알리는 경우가 과거에 비해 많이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 나이 20대 중반이 넘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런 연애 방식이 과연 맞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한때 사귀었던, 지금은 전 남자 친구가 된 L과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L과 나는 1년 반 정도 사귀었다. 나이 차이가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아 그는 나를 어린 여동생처럼 늘 귀엽게 봤고 나는 연상인 그를 듬직하게 여기며 큰 다툼 없이 만났다. 특유의 무심함 때문에 한 번 말다툼을 한 적은 있었지만, 그마저도 채 10분이 되지 않아 화해했을 정도이니 이만하면 우리는 연인으로서 참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L은 술과 술자리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음에도 친구들과의 약속보다 나와의 약속이 우선이었다. 어쩔 수 없이 꼭 참석해야 하는 회식이나 모임에 나가더라도 인증샷과 더불어 중간에 전화를 하며 내가 최대한 안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모든 일들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고 그가 스스로 행한 것들이었기에 ‘알아서’ 나를 배려하는 그를 정말 깊이 신뢰했다.


하지만 이렇게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우리도 권태기를 이기지 못하고 헤어졌다. 헤어짐의 과정은 사귈 때와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무던하고 스무스했다. 마치 처음부터 서로에게 어떠한 감정도 없었던 사람들인 것처럼. 헤어지고 나서야 우리가 다른 커플에 비해 너무 싸우지 않았던 것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이 우리를 헤어짐으로 이끈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물에 물 탄 듯 무미건조하게 헤어진 후 몇 달이 지났을 때 L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 남자 친구의 연락은 늘 그렇듯 달갑지 않지만, 나쁘게 헤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 한편에선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그는 내게 밥 한 끼 하자며 만나고 싶다고 했고, 당시 만나던 사람이 없던 나는 ‘밥 한 끼’ 제안을 했던 그도 당연히 만나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약속을 잡았다. 가로수의 낙엽이 거의 다 떨어져 갈 무렵의 늦가을, 그와 만나 밥을 먹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의 주제도 내용도 제스처도 말투도 서로를 대하는 자세도 모두 담백했다.  



하지만 대화를 하던 도중, “여자 친구는 왜 아직 없어?”라는 나의 가벼운 물음에 그의 대답을 듣고 L에 대한 그간의 신뢰와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그는 “만나는 사람이 있다. 동갑이다.”라고 답했다. 나는 당황스럽고 화가 났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그럼 이 자리에 뭐라고 하고 나왔어?”라고 반문했다. L은 “동네에서 친구 만나서 논다고 하고 나왔어.”라고 말했다. 되물을 필요도 없이 나는 L의 여자 친구에게 ‘같은 동네에 사는 남자인 친구’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시 화가 났던 것은 2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의도치 않게 여자 친구 있는 남자와 데이트 비슷한 것을 하게 되어버렸다는 사실과, 다른 하나는 나와 만났을 때도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 바보처럼 속고 L을 신뢰하면서 좋은 남자 친구라 생각했던 것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더 이상 L과 마주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자리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앞으로 연락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보내며 그를 완전히 차단했다.


L과 헤어지기 전에 던진, “나 만날 때도 이렇게 거짓말 한 적 있어?”라는 물음에 “아니야, 너 만날 때는 거짓말 한 적 한 번 도 없었어.”라는 L의 대답처럼 나를 만날 때 그는 진실로 단 한 번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의 인증샷과 시시때때로 보내는 보고 모두 진실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면전에서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 친구에게 거짓말했다는 것을 털어놓는 남자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하물며 이런 사람의 지나가버린 증명할 길 없는 과거의 행적은 또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속이려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연인이 보내오는 인증샷과 보고는 믿지도 않지만, 읽어도 그냥 ‘본다’ 정도의 느낌으로만 슬쩍 보고 만다. '거짓을 말하려면 뭔들 진짜처럼 꾸며내지 못할까'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한편으로는 믿게 하기 위해 증명서처럼 남겨 놓는 것보다 사람 그 자체를 믿으려는 버릇이 생겼다.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뿐더러, 결국 믿지 않으면 괴로운 것은 나 스스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겪어보니 조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믿어줄 때, 상대방도 자연스럽게 나의 기대에 부응하는 믿음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천성적으로 남 속이는 것을 좋아하고 바람기가 있는 악질들은 제외하고 평범한 사람인 경우에 말이다.) 


그러니 연인이 모임이나 회식에 간 후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가급적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믿어주자. 자꾸 보채고 요구할수록 스스로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꼴이 되어 불안한 관계로 흘러갈 수 있으니까. 사진과 영상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세상에서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은 다시 ‘사람’ 뿐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의 진심과 행동을 더 믿어보자. 그 한 장의 인증샷보다는.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결혼에 대한 좋고 나쁨의 단상> 목차 보러 가기

스튜디오 크로아상 콘텐츠 보러 가기


▼ 웨딩해 콘텐츠 더보기 ▼

솔직한 결혼 준비 과정을 보여주실 딩뷰3기를 모십니다!

결혼 후에도 남녀 간 우정은 지속 가능할까

사이비 종교로 나를 전도하려는 남자친구


매거진의 이전글 난자 냉동을 격렬하게 고민해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