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은 예의를 갖춘 공손한 초대 인사다.
2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매년 몇 장의 청첩장을 꼬박 받아왔다. 가까운 친구에서부터 아는 언니, 오빠 그리고 이제는 동생, 후배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결혼식 청첩장을 모아놓고 일일이 비교해보지는 않지만, 대충 떠올려봐도 청첩장에는 당사자 특유의 스타일이 빼곡하게 담겨있는 듯하다.
유난히 꼼꼼하고 세심하면서 남에게 보이는 부분을 중시하던 한 선배는 고급 수입지에 말린 유칼립투스 가지를 하나하나 정성 들여 붙인 청첩장을 건넸다. 눈을 크게 뜨고 보지 않아도 한눈에 고급미가 넘치는 게 느껴지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10년 지기 친구는 커플 사진을 일러스트 그림으로 담아낸 귀엽고 아기자기한 청첩장을 제작했는데, 친구 커플 특유의 발랄함과 생기가 온전히 느껴졌다. 이 커플을 잘 모르는 먼 친척 어르신이라도 청첩장만 봐도 신랑과 신부가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들인지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또 다른 후배 커플은 주례 없는 결혼식을 올리고자 계획했고, 이에 따라 청첩장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두 사람의 다짐을 간략하게 적어 넣음으로써 주례와 그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이처럼 청첩장은 부부가 될 두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 스타일을 대번에 알 수 있어 청첩장을 받는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에 부수되어 신경 쓸 일이 많고 돈 들어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청첩장 정도는’ 이라며 간단하게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러한 태도를 본인 결혼식에 초대할 사람들 앞에서 여과 없이 내보인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지인’ 정도의 범위에 넣을 수 있을 만한 사람에게서 청첩장을 받았다. 그 사람과의 관계를 간단하게 정의 내린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단 둘이 만나 청첩장을 주고받을 만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함께 아는 다른 사람과 만나 식사를 하며 청첩장을 받기로 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모두에게 청첩장을 돌렸고 다들 예의상 봉투에서 바로 청첩장을 꺼내보며 장소와 날짜, 시간을 살폈다. 그런데, 청첩장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 같이 애매했다.
요즘 워낙 세련되고 예쁜 청첩장들이 많다 보니 심플한 카드에 간단한 식장 약도와 날짜, 시간 등 기본 정보만 쓰여 있으니 반응들이 밋밋했던 것이다. 이런 일행의 반응에 지인은 괜히 변명이라도 하듯 “다 생략하고 간단하게 한다고 해도 진행하면서 챙길 게 계속 늘어나더라고. 어차피 청첩장은 지도 역할 정도인데 크게 돈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싸게 뽑았어”라고 말했다. 지인의 말을 들은 일행은 “그래~ 살 것도 할 것도 많은데 뭐하러 이런 데 돈을 써. 잘했어”라고 말했지만,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 저마다 “그래도 청첩장인데… 돈 조금 더 쓰면 좋았을 걸. 요즘 싸고 예쁜 청첩장 많은데…”라며 한 마디씩 덧붙였다.
생각해보면 그날 청첩장을 건넨 지인의 말도 어느 정도는 맞다. 사람마다 형편에 맞게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고, 각자 중점을 두는 부분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건 개인의 취향이자 가치관이니 남이 뭐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하지만 그날 우리에게 청첩장을 건넸던 지인의 간소한 청첩장 그 자체보다도 지인의 말과 태도가 우리를 더욱 마음 쓰이게 만들었다.
주변 사람들 말처럼 돈을 쓰면 누구나 남부러울 것 없이 멋진 청첩장을 찍어낼 수 있다. 하지만 자금 사정이 여유롭지 못해 청첩장에 돈을 많이 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지도 역할 정도’, ‘한 번 보고 버려질 것’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당사자가 청첩장의 역할을 지도 쪼가리 정도로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이를 건네받는 누군가에게는 청첩장이 ‘얼굴 몇 번 보지 못한 두 사람에게 받는 정중한 초대장’과도 같다. 하물며 초등학생 때 친구들을 생일 파티에 초대할 때도 카드에 정성 들여 색칠을 하고 가위로 이것저것 모양낸 것들을 풀로 붙여 예쁘게 꾸미는데, 결혼식에 수 백 명의 사람들을 초대하면서 ‘어차피 버려질 지도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청첩장을 받고 초대에 응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단출할 수 있다. 고급지거나 화려하지 않을 수 있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흔한 디자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디자인의 문제를 떠나 한 장을 만들더라도 한 장을 건네더라도 진심을 담은 정중함을 담아낼 수는 없었던 걸까? 벌써 몇 년이 지난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카톡 목록에 있는 그 지인의 이름을 볼 때면 그때 청첩장을 건네던 그 마인드가 떠올라 아쉽고 또 씁쓸하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