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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May 25. 2020

착한데 능력 없는
남자 친구와의 결혼

그가 나를 때리지는 않겠죠?


그와 만난 지 어느새 7년이 지났습니다. 제 나이는 서른을 넘어갔고, 주변에는 결혼을 하거나 아이도 갖는 친구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들과 저를 비교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친구들의 삶과 제 삶을 비교하고 아직까지 결혼을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며 열등감을 느낍니다. 요즘은 결혼을 안 해도 괜찮은 시대라고 여러 매체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못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다른 것이겠죠. 저는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 때문에 가끔 짜증이 솟구칩니다. 


남자 친구는 아직까지 직장이 없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지 4년이 되어가는 지금, 솔직히 그가 합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행정고시도 아닌 국가직 9급을 4년 동안 떨어졌다는 걸 감안하면 그가 정말 멍청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자 친구가 이런 상황에 있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결혼을 할 수 없습니다. 몇 번 넌지시 결혼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특유의 바보 같은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부담스럽다며, 나중에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언제? 우리 벌써 7년을 만났어. 난 결혼도 못 할 남자와 사귀느라 7년을 허비해버린 거야.’  


저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그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여린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모든 문제는 저에게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는 엄마를 몹시 때렸습니다. 마치 UFC 선수들이 얼굴을 강타하듯 아버지는 엄마의 얼굴을 건드렸습니다. 광대뼈 하나가 부러지면 주먹질을 멈추곤 했습니다. 엄마는 벌벌 떨면서 그렇게 맞았고 저 역시 울거나 벌벌 떨면서 그 장면을 바라보았습니다. 몇 번 아버지에게 대든 적이 있었는데 그 대가로 저는 삭발당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제 머리채를 잡고 가위로 이리저리 잘라버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 싫었습니다. 인터넷에 살인하는 법을 검색해볼 정도로 말입니다. 저는 폭력이 소름 끼치도록 싫었고 이런 제 어린 시절 때문에 남자 친구를 만날 때도 몸이 약해 보이는 사람을 만나곤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맞아도 안 아플 것 같은 사람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지금의 남자 친구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멸치입니다. 그냥 멸치도 아니고 씹 멸치입니다. 



나이가 든 지금은 아버지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직업을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엄마 말에 따르면 결혼하기 전에 직업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이런 하찮은 일은 하기 싫다면서 직장을 그만둬 버렸다고 합니다. 집 밖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아버지는 집 안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폭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돈도 못 벌어오는 버러지’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눈이 돌아 거의 저를 반 죽여 놓았습니다. 아버지가 선천적으로 악마인 것일까요? 아니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아버지들은 대부분 이런 것일까요? 


저는 나이가 들면서 일을 하지 않는 아버지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집안사람들에게 폭력을 쓰는 것입니다. 왜? 집 밖에서는 쓰레기에 불과하며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집 안에서는 폭력을 통해 아내와 자식들이 자기를 ‘존중하는 척’ 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능력 없는 남자가 집 안에서 왕처럼 굴려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제 생각이 틀렸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 남자 친구는 참 ‘착한’ 사람입니다. 물론 착하다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이런 남자 친구도 계속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직업을 갖지 못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저에게 폭력을 쓰는 사람으로 변할까요? 저뿐만 아니라 자식에게도 폭력을 쓰는 아버지가 되어버릴까요? 저는 그게 너무 두려워서 남자 친구가 하루빨리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이번에도 안 될 것 같다는 강력한 확신이 제 온몸을 감쌉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회적으로 낙오되면, 자신의 존재가치를 세상에게 인정받지 못하게 되면... 그도 나의 아버지처럼 변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심장을 타고 제 온몸을 순환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제 아버지가 그냥 악마였던 것일까요? 선천적으로 그냥 폭력적이고 쓰레기 같은 사람이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를 그렇게 폭력적으로 만들어버린 것일까요? 


저는 지금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해도 괜찮은 것일까요? 그가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7년 동안 저를 때린 적이 없기 때문에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하는 게 옳은 것일까요? 인생은 너무 어렵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삶을 해석하기에 저는 너무 머리가 나쁩니다. 저는 그냥 더 이상… 더 이상 맞으면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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