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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May 18. 2020

이별은 새드엔딩인가 해피엔딩인가

이별의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결국 같다.

  

여기 이별과 서른을 앞에 둔 여자가 있다. 그녀 앞에는 한 남자가 앉아있다. 그들은 8번의 봄을 함께 맞이했고 이제는 헤어짐을 말하고 있다. 함께 만들었던 둘만의 우주가, 그 세계가 비로소 먼지처럼 사라지려는 순간이다. 


둘 사이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좁힐 수 없는 거리 차이 때문에 이별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마저도 결혼까지 생각했으나 집안의 반대와 연인일 때와는 다른 결혼 후의 생활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이대로라면 함께 살아갈 수 없는다는 생각과 함께 결혼으로 이어지려는 찰나에 이별의 사유가 되는 경우가 많다. 둘만 좋으면 더 바랄 게 없는 한창 연애 중인 커플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별의 원인이다. 


일반적이고 평범한 커플들은 사소한 질투와 계속해서 쌓여가는 거짓말로 인해 무너진 신뢰, 연락 문제, 권태기, 바람과 같은 둘 사이의 애정 문제로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금 카페에 앉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한 모금 마시지도 못한 채 상대방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눈치 보며 타이밍만 재고 있는 이 커플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8년 전,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여전히 사랑해주며 그의 세상에서 소중한 게 여전히 나밖에 없는 것처럼 아껴주길 바란다. 하지만 여자도 한편으론 알고 있다. 8년이라는 긴 시간이 처음의 그 설렘과 풋풋한 감정을 모두 앗아가 버렸고, 이제는 자기 전에 굳이 울려대지 않는 폰을 손에 쥐고 누울 때면 한 번씩 떠오르는 지나간 설렘을 추억하는 것이 관계를 이어가게 해주는 유일한 이유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자도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남자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지 않다.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뜨겁게 요동치듯 끓다가 마침내 한 김 식어버린 미적지근한 커피와 같은 감정을 이어가고 있기에, 둘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음을 알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어린아이처럼 서툴게 떼를 쓰고 있을 뿐이다. 



남자는 자신의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감정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도 없다. 여자를 사랑했기에 열과 성을 다해 원하는 것을 해주었고, 원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도 기꺼이 해주고 싶었다. 이 마음만큼은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여자가 중요한 만큼 남자에겐 집중하고 싶은 다른 것들도 많다. 시야가 흩어지지 않도록 양 미간 옆에 차 안대를 쓴 경주마처럼 여자에게만 집중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경주가 끝나면 차 안대는 벗겨지는 법이다. 현실적인 남자는 곧 또 다른 현실 속 중요한 것에 집중했고, 이 또한 여자를 위한 일들의 연속이라 생각했다. 여자는 늘 처음만큼의 관심과 사랑이 변함없이 그녀에게 쏟아져 내려주길 원했고 남자는 이상만을 꿈꾸는 여자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어 점점 그녀와의 관계가 벅차기 시작했다. 


여자와 남자가 8년을 만나면서 헤어짐을 말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년 전 가을, 여자가 처음으로 울면서 감정을 토로했을 때 한 번, 5년 전 여름에 남자가 화가 났을 때 한 번, 6년 전 겨울 그리고 지금 8년째 봄이 지나갈 무렵에 또다시 한번. 처음에는 서로 아직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별을 무기로 삼았을 뿐이다. 정말 이별할 마음은 없었다. 5년, 8년, 시간이 지날수록 그동안 함께 해온 시간의 무게와 쌓아온 정의 깊이 덕에 섣불리 헤어질 수 없었다. 솔직한 감정의 상태를 인정하고 들여다보기보다는 오랜 시간 만들어온 현재의 견고함을 잃고 싶지 않았다. 



여자는 다시 한번 눈물을 흘리며 남자에게 말한다. 헤어지자고, 이제는 너 말고 다른 사람과 새롭게 제대로 된 성숙한 사랑을 해보고 싶다고. 남자는 말한다. 그럼 너와 내가 한 것은 사랑이 아니면 뭐였니. 여자는 대꾸한다. 이제 와서 이렇게 재고 따지는 모습, 너랑 어울리지 않아, 원래대로 해, 나한테 관심 없잖아 너. 남자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여자는 잠시나마 후련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남자가 떠나간 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이제는 정말 다 식어 흐릿한 김조 차 올라오지 않는 커피잔을 바라보며 식다 못해 차가워져 버린 커피가 마치 자신들의 관계를 보는 것만 같아 눈가에 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떨구고 만다. 


두 사람이 이 카페에서의 장면을 마지막으로 정말 헤어졌을지 아니면 둘 중 누군가 뒤늦게 어떠한 종류의 후회를 통해 다른 한 사람을 잡으러 집 앞으로 뛰어갔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이 장면을 새드엔딩으로, 누군가는 이 장면을 차라리 해피엔딩이라며 제각기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제각기 결말을 상상해볼 수 있는 것은, 이 둘의 모습이 우리들의 사랑과 연애 그리고 이별과 크게 다르기 않기 때문일 것이다. 헤어짐의 이유와 모양새는 다 다를지언정 결국 그 결말과 본질은 완전한 이별과 찝찝한 재결합 둘 중 하나일 것이기에.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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