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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n 01. 2020

최선을 다했던 지나간 시간은
지나간 대로

그 시간에 충실했다면 그걸로 되었다


“잘 지내?” 

“그게 왜 궁금한데?” 

“그냥 문득 생각나서… 어떻게 사는지,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연락했어. 난 잘 지내.” 

“너 잘 지내는 거 하나도 안 궁금한데?” 

“야, 왜 이렇게 날이 서 있냐. 아직도 나한테 감정 남아있는 거야?” 


“특별하게 이렇다 할 이름 붙일 감정 같은 건 안 남아있어. 그냥 이렇게 저렇게 쌓인, 오갈 데 없이 밑바닥에 깔려버린 찌꺼기 같은 그 무엇들 정도?” 


“날씨도 따뜻해지고 봄바람 불어서 그런지 작년 이맘때 생각나더라. 너랑 벚꽃 보러 가서 마지막엔 싸우고 각자 집에 갔었는데… 내가 참고 양보하면 됐을 걸 왜 그렇게 성질을 부렸는지 모르겠더라. 너랑 함께한 시간을 생각하면 후회가 깊어.” 


“후회 하지 마. 나는 하나도 후회 안 하니까 너도 후회 같은 거 하지 마.” 


“너랑 만날 때 처음엔 참 좋았는데… 마지막엔 그 마음 반도 안 남았던 것 같아. 네가 여행 가고 싶다고 할 때 핀잔 주지 말고 군말없이 따라갈 걸, 기념일에 먼저 나서서 예쁜 선물 준비하고 근사한 곳에서 맛있는 밥 사줄 걸, 집에 한 번이라도 데려다줄 걸 하는 그런… 못 해준 것들만 생각나더라.” 


“우리의 시간은 이미 지나갔어. 다시 돌아오지도 않고 나서서 되돌리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 내가 후회하지 말라고 했지? 너도 나도 그땐 그냥 그랬던 거야. 그때의 너와 내가 서로에게, 서로의 시간에 대해, 서로의 감정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야. 우리가 지금 기억해야 할 건 이것뿐이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노력은 대부분 가치 있는 행동의 모양새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올리려는 학생의 밤샘 공부, 손주에게 과자 하나라도 더 사주고 싶어서 집에서 가내수공업 아르바이트를 하는 노부부의 손길, 눈 반짝이며 기다리고 있을 병아리 같은 자식들 손에 쥐여줄 치킨 봉다리를 들고 애써 밝은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향하는 부모님의 무거운 발걸음과 같은 것을 떠올리면 타인의 노력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이 더욱 진솔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가끔은 어떤 노력을 보면서 모진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지나간 사랑을 붙잡으려는 노력 같은 것을 볼 때면 더욱. 이런 모습을 마주할 때면 ‘네가 그리워하고 그렇게 되돌리고 싶어 하는 그때 잘하지 그랬어. 이젠 아무리 사탕발림을 해도 소용없어!’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를 때도 있다. 


그럼에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한다. 첫째로는 내 잘못도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 찔리는 면이 있으며, 둘째로는 시간이 흘러 나쁜 기억은 희석되고 좋은 기억은 바닥에 가라앉은 가루처럼 진하게 응축된 이 시점에 남아 있는 좋았던 시간에 대한 기억마저 의미 없는 먼짓 덩어리로 만들어버리고 싶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옆에 새로운 사람이 있든 없든, 내가 현재 외롭든 아니든, 과거의 사람에게 미련이 남았든 후회가 남았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이별에 대한 합의가 현재진행형이 아니라면, 이미 10M 이상 저 멀리 가버려 “기사님!”하고 목청껏 외쳐도 설 기미가 안 보일 만큼 적당한 아쉬움을 남기고 멀어져 가는 버스처럼, 과거 그때와의 물리적, 정신적 거리가 한참 멀어진 상태라면 이제 그만 미련을 버리고 지나간 사랑과 사람 모두 놓아주자.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해봐야 후회가 없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을 때가 있었던 나로서도 시간이 지나고 여러 사람을 겪으니 이젠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최선을 다했던 지나간 시간은 지나간 대로 남겨두는 것이 그 시간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던 존재들에 대한 예의인 것을. 때론 조금만 더 힘껏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을 애써 잡지 않으려 손에 힘을 푸는 안간힘도 써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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