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Jul 20. 2020

나를 놓지 못하면 사랑도 없다

난 나를 지키려다 결국 나를 잃었다


그의 결혼식장에서 나는 웃어야만 한다. 울고 싶을 때 웃는 건 쉬운 일이어야만 한다. 나는 <피아니스트>에 나오는 이자벨 위페르처럼 무한한 도도함을 얼굴에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도도한 여자의 내면에는 이브가 살고 있다. 이브는 신이 자신을 발견할까 봐 무서워 두 다리를 벌벌 떨어댔고 어쩌면 오줌까지 쌌을지도 모른다. 이브는 두려워한다. 자신이 사치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남편까지 타락하게 만든 악처(惡妻)라는 것을, 뱀의 논리에 반박 조차 하지 못했던 멍청한 두뇌의 소유자라는 것을 신이 알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도도한 여자도 이와 똑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토한다. 나는 결혼식장에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나는 완벽한 연기를 해야만 한다. 우는 대신 웃어야 하고, 질투하는 대신 축하해야 하고, 우울감을 전파하기보다는 함께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 나는 무너져서는 안 된다. 진한 화장과 높은 하이힐 뒤에 숨겨진 내 나약함을 들켜서는 안 된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의 에고(Ego)를 놓아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웃어라. 이상하게 웃지 말고 예쁘게 웃어라. 웃어라. 어색하게 웃지 말고 여유롭게 웃어라. 나는 몇 번의 구역질을 변기통에 처박은 후 화장실 거울을 보며 내게 이렇게 속삭인다. 신은 여자에게 ‘연기력’이라는 천부적인 재능을 선물했다. 여자는 슬퍼도 웃을 수 있고, 화나도 행복할 수 있다. 남자의 아둔함으로는 결코 여자의 웃음이 진심인지 아닌지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남자의 자만함으로는 결코 여자의 신음소리가 행복에서 나오는 건지 지루함에서 나오는 건지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나는 오늘 그를 완벽하게 속일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러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그와 헤어진 이유와 내가 나쁜 년이 아닌 이유


나에게는 내 자존감을 높여 줄 남자가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내 자존감을 낮추는 사람은 옆에 둘 필요가 없다는 자기 계발서의 아름다운 충고를 따른 것이다. 인간관계라는 건 결국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우연이며, 내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인연은 그냥 끊어버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 아닌가? 내가 왜 다른 사람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야 하며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내 시간과 감정을 소비해야 하는가? 나는 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언제든지 인간관계를 정리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런 삶의 태도로 아직까지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취직에 성공했을 때 그는 수험생이었다. 남자는 군대에 2년을 꼼짝없이 바쳐야 하기 때문에 여자보다 늦은 나이에 돈을 벌기 시작한다. 게다가 그는 5급 공채를 준비했기 때문에 또래 남자들이 취직할 때도 여전히 수험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상황이 싫었다. 힘겨워하는 그를 응원하는 것에 내 시간과 감정을 쏟는 게 싫었다. 나는 요가와 요리를 하고, 여행을 하면서 인스타그램을 예쁜 사진들로 채우는 데 내 시간과 감정을 소비하고 싶었다. 나는 여자 연예인들이 유튜브를 통해서 보여주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존감은 바닥을 칠 것이고 나는 그걸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별을 말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이별의 이유는 만들기 나름이니까. 그는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는 나를 칼로 찌르겠다고 협박하지도 않았고 내게 이기적인 년이라고 욕하지도 않았으며, 성공해서 내게 복수하겠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였고 심지어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뭐가?”


이렇게 물어보고 싶은 욕망이 술을 진탕 마신 후 나오는 토처럼 쏠려왔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더러워졌다. 내가 꼭 나쁜 여자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간신히 뭐가 미안하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인간관계에는 다 끝이 있는 거야. 누가 잘못했다고 볼 수 없는 거야. 그냥 관계의 유통기한이 끝난 것뿐이야. 그뿐인 거야.’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내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마음을 돌보았다. 효과가 있었다.



연애 컨설턴트의 조언은 사실인가 아니면 나를 속이는 것인가?


시간은 흘러가지만 내 영혼은 변한 것이 없다. 시간은 육체의 아름다움만 서서히 빼앗아갈 뿐 영혼을 성숙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헤어졌지만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게 ‘쿨’ 한 것이라고 배우며 자라왔다. 남자 때문에 우는 것은 지질한 일이고 사귀는 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지질한 일이다. 헤어지고 나서도 친구처럼 지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멋진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라고 배웠고 난 지금 이 가르침을 충실히 실천하고 있다. 나는 타인이 나를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데 목숨까지 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시험에 합격했고 나는 여전히 TV에 나오는 연애 컨설턴트들의 조언을 충실히 따르며 살고 있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감정이며, 내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으면 무조건 타인의 잘못이다. 그런 사람과는 인간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왜? 세상에 사람은 많으니까. 내 기분을 좋게 해주는 사람과 만나야지, 내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과는 아예 만날 필요조차 없다고 말하는 연애 컨설턴트의 강연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충고에 따라 사는데도 난 점점 혼자가 되어 간다고 느꼈다. 연애는 신통치 않았으며 외로움만 늘어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결혼을 못 한 채 –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채’ – 늙어서 고집만 세진 아줌마 혹은 할머니. 그게 내 미래가 될까 봐 나는 점점 더 큰 불안을 느낀다. 


“혼자라도 괜찮다. 주눅 들지 말아라. 너의 잘못이 아니다. 자존감 낮은 사람만 외로움을 느낀다.”


이런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는 내게 그가 결혼한다고 연락을 해왔다. 자존감은 더 바닥으로 떨어져서 더 내려갈 곳도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난 몇 번이고 이 말을 되뇌었다. 어느덧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데 난 아직도 혼자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남자도 없는 불쌍한 여자라고 생각할까? 내게 무슨 하자가 있어서 아직까지도 연애를 못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까? 아마 그럴 것이다. 아무리 비혼이 유행이라지만 여전히 결혼 안 한 여자 – 특히 서른 살이 넘은 여자 – 보다는 제때 연애하고 결혼하는 여자가 더 나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심지어 나도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두근거리고 사지가 떨렸다. 거울 앞에서 옷장에 있는 옷이란 옷은 다 꺼내서 입어보고 어떻게 해야 더 ‘시크하게’ 보일까 연구했다. 그도 그지만 그의 신부보다 못생겨 보인다면, 자살하고 싶을 것 같았다. 

 


자존감을 지키려다 자존감과 사랑도 잃었다


“나는 결혼식장에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다.”


결혼식 전날, 나는 이렇게 일기에 적었다. 전 남자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안달 난 여자가 되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된 비극을 겪는 여자가 되는 것이 더 좋겠다 싶었다. 신은 여자에게 ‘연기력’이라는 천부적 재능을 선물했다. 여자는 자기 자신도 속일 수 있다. 나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난 비극을 주체적으로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여자다. 그렇게 난 결혼식에 갈 준비를 마쳤다.


나는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난 화장실에 들어가 토를 한다. 웃어라. 이상하게 웃지 말고 예쁘게 웃어라. 웃어라. 어색하게 웃지 말고 여유롭게 웃어라.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세뇌하고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신랑에게 축하 인사를 하러 간다. 나는 무너져서는 안 된다. 진한 화장과 높은 하이힐 뒤에 숨겨진 내 나약함을 들켜서는 안 된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앞으로 가다가 뒤로 돌아선다. 도저히 예쁘게, 여유롭게 웃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식장을 빠져나왔다. 나는 나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내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의 에고(Ego)를 놓아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내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마음을 돌보았다. 효과가 있었다. 나는 나를 속이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결혼에 대한 좋고 나쁨의 단상> 목차 보러 가기

스튜디오 크로아상 콘텐츠 보러 가기


▼ 웨딩해 콘텐츠 더보기 ▼

당신이 잊혀지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죠?

돈으로 사랑을 살 수는 없어도 유지할 수는 있다

딩 호구 탈출방! 결혼 준비 함께 나눠요!


매거진의 이전글 연애의 시작에서 권태로움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