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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l 27. 2020

당신의 사랑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나요?

영화 <더 테이블> 속 다양한 사랑의 모양


여기 눈앞에 작은 카페가 보인다. 지금 막 문을 연 주인은 창문과 작은 종이 달린 문을 활짝 열어 갇힌 공기를 순환시킨다. 체크무늬의 행주를 손에 쥔 주인은 밤 사이 앉았을,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자리에 분명히 있을 먼지들을 깨끗하게 닦아낸다. 주인은 유독 통창 앞에 놓인 가로로 둥그런 테이블을 정성스레 닦는다. 그리고 그 테이블 위에만 화병이라고 하기엔 다소 민망한 크기의 꽃 몇 송이가 담긴 작은 유리잔을 올려둔다. 이로써 카페 주인의 아침 일과가 끝났다. 


출처 : 영화 <더 테이블> 스틸 컷


딸랑. 주의를 깊게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흘려들을 수 있을 만큼 작고 조용하게 종이 울린다. 주인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엔 한 여자가 있다. 여자는 머뭇거리다 통창 앞에 있는 해가 가장 잘 드는 자리에 앉는다. 곧이어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들어와 마찬가지로 머뭇거리다 여자 앞에 앉는다. 오랜만에 만난 듯 어색함을 두르고 있는 모양새다. '좋아 보인다', '많이 변했네' 등 칭찬도 뭣도 아닌 말들만 오가더니, 이 둘은 어느 순간 아닌 척 날카로운 말본새로 서로를 대한다. 자꾸만 과거를 되짚으며 아련해지다가도 말끝엔 현재의 서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짓는다. 두 사람은 도대체 왜 만난 걸까?


출처 : 영화 <더 테이블> 스틸 컷


딸랑. 다시 종소리가 들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금은 봄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하기엔 새해가 지나버린 지 한참이라고 말한다. 여자는 응수한다. “올해 처음 봤잖아요.”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 남자는 할 말을 잃는다. 두 사람이 오늘 만난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만남에서 남자가 놓고 간 시계를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남자는 돌려받은 시계를 손목에 차면서 말한다. “안 그래도 허전하던데…” 여자는 그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존재가 저 시계가 아니라 자신이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담긴 눈빛으로 남자를 본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의 마음도 모른 채 속없는 말들만 계속 내뱉는다. 자꾸만 부정적으로 말하는 여자와 자꾸만 긍정을 들이미는 남자, 시작도 해보기 전에 오해로 어그러질 위기에 처한 이 두 남녀는 초콜릿 케이크처럼 달콤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출처 : 영화 <더 테이블> 스틸 컷


딸랑. 오늘만 세 번째다. 이 작은 카페의 문고리에 달린 종이 이렇게나 바빴던 적이 있었나 싶은 날이다. 창가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은 여자 둘이 보인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듯 보이는 두 여자는 언뜻 모녀 사이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보인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대로 믿는 건 때론 위험하다. 모녀처럼 ‘보이는’ 이 둘은 실은 ‘가짜 모녀’다. 사기 결혼으로 남자들 등쳐 먹고살던 젊은 여자가 얼마 후에 있을 자신의 결혼식에 참석할 친정 엄마 대역을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의 대화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중년의 여자는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 하기 위해 젊은 여자에게 예비신랑은 무얼 하는 사람인지, 그쪽 가족들 재산은 꽤 되는지 등을 물어본다. 젊은 여자는 말한다. 


“원래는 사장 꼬시려다가 일이 꼬여서 막내 사원 하고 눈이 맞았지 뭐예요.” 아, 이 여자, 이번엔 진짜구나. 참사랑, 찐 사랑이구나. 중년의 여자는 문득 몇 년 전에 죽은 자신의 딸이 떠오른다. 죽은 딸의 결혼식 날짜와 같은 날에 식을 올리는 젊은 여자에게서 딸이 보인다. 중년의 여자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자꾸만 자신의 다짐을 말한다. “최선을 다 할게요.” 가짜 사랑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진짜 사랑을 찾은 젊은 여자와 그녀에게서 죽은 딸에 대한 사랑을 떠올리는 중년의 여자. 둘의 사랑은 각기 현재 진행형이다. 


출처 : 영화 <더 테이블> 스틸 컷


딸랑. 아마도 오늘의 마지막 종소리일 것이다. 해는 이미 기울 대로 기울었다. 밤이 찾아왔다. 비가 내린다. 무미건조한 표정의 한 남자가 앉아있다. 그는 눈앞에 있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조잡한 손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작은 유리잔에 꽂혀있던 꽃들의 잎을 전부 떼어내 버렸다. “어차피 죽은 꽃인데 뭐.” 남자가 떼어낸 꽃잎들을 손가락으로 모아 들어 올린 여자는 꽃이 꽂혀 있던 유리잔에 다시 넣고 마지막 숨결이라도 불어넣으려 한다. 


꽃 한 송이를 두고도 죽음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생명, 숨, 삶을 보는 여자가 있다. 이 둘은 처음부터 함께 할 수 없는 조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음은 서로를 향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부러 상대를 밀어내고 있는지도. 이런 상황이기에 결혼을 앞둔 여자는 미래를 약속할 수 없는 과거의 남자에게 현재의 남자가 떠나 있는 몇 개월 동안만이라도 자신과 함께 살자고 말한다. 흔드는 여자와 흔들리는 남자, 이 둘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출처 : 영화 <더 테이블> 스틸 컷 


작은 카페는 이제 오늘의 영업을 마감하려고 한다. 주인은 하루 동안 고생한 테이블과 의자를 정성스레 닦고 전등을 하나씩 끈다. 종소리를 뒤로 하고 주인이 떠나간다. 그리고 오늘 유독 많은 사람들이 기대었던 창가 테이블 위로 여러 가지 모양의 사랑이 떠다니는 것이 보인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추잡한 끝을 보고 말아 버린 찌그러진 모양새, 텅 빈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투명하고 순수한 사랑의 색으로 꽉 차있는 모양새, 어느 하나의 형태로 확정되지 않은 모양새 등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만약, 사랑의 모양새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당신의 사랑의 모양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모양과 같은 모습일까? 그렇지 않다면 어떤 색과 향기 그리고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내가 빚어내고 있을 사랑의 모습을 어렴풋하게 알고 싶다면, 영화 <더 테이블>을 추천한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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