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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ug 03. 2020

합리적인 인간의 가장
비이성적인 행위, 결혼

사랑의 유효기간을 믿지 않는 사람이 증명하고 싶은 ‘영원한 사랑’


확실하게 결정된 미래가 있고 그 미래가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모습이라면,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비용이 크더라도 당신은 흔쾌히 그 비용을 지불할 수 있습니까? 


물론 ‘아니오’라고 확고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확실하게 결정된 미래’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YES!’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그럴 테니 말이다. 하지만 확실하게 ‘네!’라고 대답하기 전에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선택 뒤에는 반드시 ‘매몰 비용’이라는 것이 따라온다는 점이다. 


선택 뒤에는 선택되지 않은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처음에는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을 쟁취하고 또 이루게 되었다는 기쁨에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만족감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석되고 옅어진다. 그리하여 고르지 않았던 선택지들에 대한 후회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이 나를 괴롭힌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결혼이란, 매몰 비용이 거대한데도 인간이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참으로 이상한 요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불타오르는 감정과 한 사람을 나의 곁에 두고 계속해서 볼 수 있다는 만족감 같은 ‘감정’이 매몰 비용을 고려하지 못하게 만든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를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상정한다면, ‘결혼을 결정하는 인간’ 만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또 있을까?


결혼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을 두고 고민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간섭이 심한 시부모님은 꺼려지지만 남자 친구가 정말 좋아서, 헤어지면 죽고 못 살 것 같아서 이 사람만 보고 결혼을 결정한다던지, 커리어나 자아실현 등 지금의 경제적 여유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한다던지,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아이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결혼과 출산을 결정한다던지 등의 모습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지금 당장 내가 좋아 죽겠으니 나중에 트러블이 발생하면 그건 그것대로 미래의 나에게 맡긴다!’와 같은 생각으로 매몰 비용이나 선택에 따르는 대가를 고려하지 않고 왜 결혼을 결심할까?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뒤로 미루는 '현재의 우리'로 인해 ‘미래의 우리’는 참으로 고달프다. 


예전에 모 남자 개그맨은 “결혼하면 어때요?”라는 후배의 질문에 웃으며 “결혼과 죽음은 가능한 한 뒤로 미뤄라”라고 말해 많은 기혼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들은 우스갯소리라며 농담조로 말했지만 우리는 안다. 말에 아주 딱딱한 뼈가 올곧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결혼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박수갈채까지 하면서 크게 공감을 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면 샘솟는 옥시토신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성향을 강하게 나타나게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미친 듯이 사랑을 하면서도 또 미친 듯이 싸우고 동시에 상대를 밀어내지 못하고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포기해야 하는 것과 나를 괴롭히는 것이 분명 존재함을 알지만, 이 사람을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은. 


어떤 과학자들은 사랑의 유효기간이 900일뿐임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성과 지성의 힘을 믿는 현대인들조차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유독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사랑에 900일의 유효기간이 있고 그 이후에는 ‘정’ 비슷한 것으로 관계가 흘러감을, 사랑이 단순히 호르몬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믿고 또 증명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긴 세월을 한 사람 하고만 살아가는 결혼 생활의 지루함과 이 사랑과 결혼을 위해 내가 기꺼이 포기했던 매몰 비용을 떠올리지 않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점차 ‘사랑’에 대해 커져가는 환상과 기대감을 어쩌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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