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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ug 10. 2020

너 말이야, 너!
티 좀 안 낼 수 없니?

연애는 너희가 하는데 괴로움은 왜 내 몫인지


학생이면 학교에서, 직장인이면 회사에서, 동호회나 취미 활동 또는 각종 소모임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이 속한 곳에서 인연을 만들어간다. 의지가 되는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같이 있기만 해도 즐거운 사람들을 알게 되기도 하며,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혹은 ‘평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나의 진실된 감정을 오롯하게 보여주면서 깊은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래, 여기까지는 참 좋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주파수가 맞아서 우정이든 사랑이든 스파크가 튀게 되는 건 참 경이로운 일이니까. 60억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그랗고 파란 구체 안에서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지금, 이 시간, 이 공간에,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그중에서도 서로만 눈에 들어오는 이 기묘하고도 기이한 인연을 ‘신비’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모든 인연은 선연이든 악연이든 놀랍고 또 경이롭게만 다가온다. 하지만 이것 또한 당사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야기이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애증이든 타인들의 관계에 제삼자인 내가 나의 의도와 다르게 억지로 끼어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이것 참 골치뿐만 아니라 때론 명치까지 아픈 일이 되어버린다. 



대학에 다니던 무렵, 역세권에 있는 큰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지하철역 출구 바로 앞에 있었고 또 큰 대학가 상권 안에 있었기 때문에 저녁 늦은 시간까지도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피크 타임에는 일하는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이 5~6명일 때도 많았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매장에서 한 사람이라도 자기 몫을 느슨하게 처리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동료들과 손님들에게로 돌아간다. 따라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항상 긴장한 상태를 유지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을 해서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한 직원이 들어와 귓가에 말을 속삭였다.  


“J 씨랑 S 씨, 어제 헤어졌대. 오늘 J 씨 출근이라서 지금 일하고 있는데 기분 안 좋은 것 같으니까 일 없으면 굳이 말 걸지 말고. J 씨가 일처리 늦게 해도 그러려니 해. 알겠지?” 


두 사람, 드디어 헤어졌구나. 그런데 헤어진 건 개인적인 일인데, 감당은 왜 우리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사건의 장본인인 J와 S는 같은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이었는데, 함께 근무하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좋은 감정이 싹텄고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둘은 일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했고 사람들은 곧 두 사람이 사귀는 것을 눈치챘다. 사실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공개적으로 “저희 사귀어요!”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행동과 말을 곧잘 했기 때문에 ‘저렇게 티 내는데 모르면 바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7살짜리 아이가 와도 “와 저 삼촌이랑 이모 사귀나 봐!”라고 말할 상황들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둘의 연애는 참 유별났다. 물론 지켜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유별났을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아니었다. 여느 연인들처럼 남자 친구인 J는 여자 친구인 S가 힘들까 봐 S와 함께 근무하는 날이면 S가 해야 하는 일을 아르바이트생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고, S는 휴식 시간도 남들보다 조금 더 길게 가질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갓 사랑을 시작한 연인을 바라보는 왠지 모를 훈훈한 마음 때문에 다들 이해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직원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은 불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J와 S가 다투기라도 한 날이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둘의 눈치를 봐야 했다. 둘은 나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는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이 표정과 행동, 말투에 그대로 티가 남으로써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J는 자주 담배를 피우러 나가며 멋대로 휴식 시간을 가졌고 S는 직원 휴게실에서 남몰래 한 번씩 눈물을 훔쳐서 휴게실에 쉬러 들어갔던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다시 나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렇게 불타는 연애를 하던 그들은 결국 반년도 채 되지 않아 헤어졌고, 그들의 이별 후유증에 수반되는 불편함은 고스란히 제삼자들이 감당해야 했다. 



학교나 직장뿐만 아니라 사람이 일정 수준 이상 모이는 곳에 소속되면 꼭 하나 이상의 커플이 생겨나는 현상을 직접 마주하게 된다. 나 또한 CC였던 경험이 있지만, 전 남자 친구와 나는 전혀 다른 전공이었고 겹치는 친구들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이별로써 타인에게 불편함을 준 일은 없었다. 설사 사귀는 동안 주변에 함께 알게 된 친구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내 연애의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타인에게 연애사를 떠벌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가급적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을 것이다ㅡ물론 저들처럼 나 또한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음에도 티가 났었을 수는 있겠다. 그리하여 불편했던 지인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의 말을 전한다ㅡ. 


하지만, 주변을 보면 저들끼리 서로 좋아서 커플이 되었다가도 싸우고 헤어지게 되면 동아리를 다 헤집어 놓고 나간다던가, 회사에서 사내 커플인 사람들이 헤어지면 주변 사람들이 하루 종일 전전긍긍, 말조심, 행동 조심하며 눈치를 봐야 한다던가 하는 일들을 꽤 자주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때론 그들의 이기적인 행동에 진절머리가 나기도 한다. 


사내에서, 학교에서, 동아리에서, 동호회에서의 공개 연애, 좋다 이거다. 하지만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감당하라 했다고, 그렇게 티 내고 다닐 거면 연애만큼 제 할 일도 똑 부러지게 하고, 또 싸우고 헤어지더라도 어른스럽게 주변인들에게 피해 주지 않도록 대처하면 어떨까? 제발 당신들의 공개 연애에 애먼 사람들이 피해 보지 않게 행동하길 바랄 뿐이다. 


(공개 연애자들에게 훈수 두는 자들의 이야기가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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