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Aug 17. 2020

우리 결혼하자
네가 일을 그만두지 않는 조건으로

결혼은 서로의 삶의 동반자가 되는 게 아닐까?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 


강아지를 기를 걸 그랬다. 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들의 이야깃거리는 진부하다. 부동산과 주식, 약간의 정치, 그리고 여자. 나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 부동산과 주식으로 수익을 낸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그렇게 관심도 없는 것을. 또 정치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다. 그냥 신문 칼럼이나 정치 유튜버들이 하는 말을 듣고 그걸 앵무새처럼 여기서 반복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럼 여자는? 30대 초반인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으면 달랐을 텐데. 나는 다시 한번 이렇게 생각해본다. 강아지 유치원, 강아지와 하는 산책, 강아지 미용실, 강아지 헬스클럽 같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진부하고 별 관심도 없는 주제들로 시간을 버리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나을 텐데. 아, 강아지 이야기도 별 소용이 없겠구나. 남자들은 강아지에 별 관심이 없으니까. 나도 여자 친구 때문에 강아지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 거지, 원래는 먹을 수 있는 수많은 동물들 중 하나로 생각했을 뿐이니까. 내가 강아지 이야기를 꺼내면 약간의 정적 이후 다시 부동산이나 주식 이야기가 시작되겠지. 그래, 그럴 거야. 


나는 지글거리는 삼겹살을 뒤집으면서 이런 상념에 빠져본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을 만나면 할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그냥 아무 말이나 하고 아무 말이나 듣다가 집에 돌아오기 일쑤다. 그것도 술이 들어가야 이야기가 시작된다. 술 없이 남자들은 입조차 열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예전에 우리는 만나면 할 이야기가 정말 많았는데. 예전의 우리는 술 없이도 서로의 삶을 나누곤 했는데. 이젠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나이가 든다는 게 이런 건가? 정말 좋은 게 단 하나도 없다. 우정도 시들어가고 사랑도 시들어가고 몸과 마음도 시들어가며 책임질 일들만 늘어난다. 올해 31살, 나는 벌써 삶에 지쳤다. 



관심 없는 질문 


“여자 친구가 결혼하자는 압박 안 해?” 


한 친구가 이렇게 물어보았고 우리는 일제히 눈을 바닥으로 떨군다. 당연히 우리는 압박을 받고 있다. 티비나 인터넷 뉴스에선 요즘 여성들이 결혼을 하기 싫어한다고 말한다. 비혼, 아니면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걸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주변에서 이런 생각을 가진 여자를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모두 다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물론, 그 친구들도 젊을 때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게 뭔가 더 멋지고 주체적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30살이 넘어가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대놓고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남자 친구가 있는 여자는 남자 친구에게 결혼하자고 무언의 압박을 하며 남자 친구가 없는 여자는 당당한 싱글로 보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한다. 내가 볼 때는 이게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젊을 때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괜한 치기로 느껴진다.  


나는 30살이 넘은 여자 친구에게 압박을 받고 있는 입장이다. 나는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 솔직히 지금 여자 친구랑 헤어지면 다른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는다. 지금 여자 친구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사랑하는 건 맞지만 너무나도 사랑해서 미쳐버릴 정도는 아니다. 그냥 내 나이가 그렇다. 새로운 여자를 만날 수 없는 나이다. 30살이 넘어가니 언제 다시 사람을 새로 만나서 연애를 하고, 언제 다시 서로를 알아가며, 언제 다시 서로에게 맞춰갈 수 있을까 싶다. 나에게는 그럴 여유도 힘도 없다. 그저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운명이겠거니 하고 결혼을 하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친구가 여자 친구가 결혼 압박을 하지 않느냐고 물어본 건 정말 궁금해서가 아니다. 그냥 할 말이 없으니까 물어본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별 관심이 없다. 오로지 관심이 있는 게 있다면 친구들보다 내가 돈을 더 많이 벌까 아닐까 하는 것뿐이다. 이건 어쩔 수가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남자는 허영심이 가득한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다른 수컷과 나를 비교하고 그 비교를 통해 내가 더 우월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 내가 열등하다는 게 드러나면 수치스럽고 분노에 휩싸인다. 그래서 남자들끼리 모이면 수입 이야기는 일종의 금기다. 우정이 깨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분위기로 누가 돈을 많이 벌고 있고 누가 돈을 적게 벌고 있는지 다 알 수 있다.  


“압박을 받긴 하지. 그런데 결혼이 쉽나. 집이라도 있어야 결혼을 하든지 말든지 할 텐데.”  


한 친구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담배나 피우러 가자.” 


나의 말에 우리는 삼겹살을 먹다가 중간에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간다. 나는 고깃집 바깥뿐만 아니라 아예 지구 밖으로 나가고 싶다. 우주에 있는 별과 행성을 보다가 그냥 죽고 싶다.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나는 9급 공무원이고 월급은 쥐꼬리만 하다. 굳이 여기서 내 월급의 액수를 적나라하게 공개하고 싶지는 않다. 인터넷 검색만 해도 다 나오는 거니까. 다만 내가 이 월급을 받으며 생활해보니 단 한 가지는 너무나도 분명해졌다. 결혼을 하게 되면 반드시 맞벌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혼자 벌어서는 절대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집을 사려면 대출을 해야 하는데 대출금으로 끝이 아니다. 자식을 낳게 되면 돈이 무자비하게 많이 들어간다. 자식이 어릴 때만 돈이 들어갈까? 아니다. 자식이 커도 잔인할 정도로 많은 돈이 들어간다. 학원도 보내야 하고, 옷도 사줘야 하고, 아무튼 뭐 사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만약, 자식이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으면 나중에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라는 미친 소리를 듣게 된다. 난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30대가 되기 전에는 내가 이런 인생을 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나는 30대 초반이 되면 경제적 자유를 얻을 줄 알았다. 부동산 경매를 통해서 싸게 산 집을 비싸게 팔고 주식 시장에서 가치가 낮게 평가된 주식을 사서 오르면 판다. 그렇게 내 통장에 돈이 쌓이고 난 돈 걱정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아내가 될 사람도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 자식도 마찬가지다. 나는 20대 때 내가 이런 능력을 가진 어른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난 9급 공무원도 5년 만에 합격했다. 아마 5년 차에도 떨어졌으면 난 자살했을 것이다. 난 내 능력을 이렇게 알게 되었다. 난 부동산이나 경매는커녕 월급쟁이도 겨우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 여자 친구를 만났다. 사실 ‘다시 만났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너무 힘들어서 여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별을 했고 내가 공무원이 되고 난 뒤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항상 나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를 많이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그녀가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면 난 여자 친구라는 존재를 아예 만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9급 공무원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직업이다. 특히 30대가 넘어서 9급 공무원이 된 남자는 더 인기가 없다. 나는 공무원에 합격하고 몇 번의 소개팅을 했는데 만나기도 전에 까였다. 주선자가 여자에게 내 조건을 말하는 순간 난 소개팅을 거부당하곤 했다. 그렇게 난 남자는 결국 능력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돈이 세상의 전부라는 걸 그렇게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능력 없는 남자라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나를 좋아할 일이 절대로 없다는 것도 뼈 아프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난 지금의 여자 친구와 결혼하고자 한다. 아까도 말했듯 그녀를 너무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나를 좋아하는 다른 여자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 나는 아마 결혼도 못한 채 늙어 죽을 것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 삶의 유일한 낙이 종로 낙원상가 앞에서 또래 남자들과 장기를 두는 것뿐인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런 삶을 사는 것보다는 운명이 아니더라도 지금 옆에 있는 여자와 결혼을 하는 것이 낫다. 나는 내 수준을 알고 있다. 운명 같은 아름다운 사랑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때, 지금 옆에 있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최선이다. 


맞다.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남자다. 나는 내 수준을 알고 있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내 여자 친구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그녀는 아직도 꿈속을 살아간다. 그녀는 결혼을 하면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마음이 답답하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나도 여자 친구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집에서 맘 카페 활동을 하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난 그럴 능력이 없다. 9급 공무원 월급이 얼마인지 뻔히 알지 않는가? 그녀는 내게 결혼을 하자고 말한다. 나도 하고 싶다. 하지만 그전에 그녀는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너와 동반자로서 결혼하고 싶다 


나도 결혼하고 싶다. 여자 친구의 나이도 곧 서른 중반을 향해 나아간다. 그녀는 나보다 더 불안할 것이다. '서른 중반까지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뭔가 이상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도록 하는 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니까. 머리가 아프다. 하루빨리 그녀와 결혼해서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다. 자식도 조금이라도 젊을 때 낳는 것이 좋으니까 어서 결혼을 하고 싶다. 


나는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계산해보았다. 결혼하면 살 집도 알아보았고 자식이 생기면 보낼 유치원과 학교도 알아보았다. 남은 것은 단 하나다. 그녀에게서 계속 일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다. 맞벌이를 해야만 내 계산대로 삶을 살 수 있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돈에 쪼들려서 삶이 지옥이 된다. 나는 질문한다. 결혼이 언제부터 이렇게 힘들었을까? 모르겠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적극적으로 찾아볼 만큼의 여유가 없다. 삶은 과제의 연속이다. 결혼도 그 과제들 중 하나다. 어렸던 시절엔 낭만적인 사랑을 꿈꿨다. 하지만 지금의 난 사랑이 아닌 삶의 ‘동반자’가 필요하다. 여자 친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게 로맨틱한 사랑은 내게 허락되지 않은 것 같다. 여자 친구도 이런 현실을 깨닫길 바란다. 나는 그녀의 낭만적인 남자 친구가 아니라 삶을 함께 꾸려나가는 동반자다. 


우리는 함께 아이를 키우고 돈을 저축할 것이다. 우리는 함께 미래에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일을 할 것이다.  

이거면 된 거 아닐까? 혼자서는 삶을 꾸려나가기 힘드니까 결혼이 있는 것 아닐까? 여자 친구에게는 미안하다. 능력이 없는 남자라서. 하지만 이제 사과하기도 지쳤다. 삶이 이런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삶은 원래 힘든 것이고 나이가 들수록 그 힘듦은 배가 된다. 그래도 혼자서 삶의 고난을 짊어지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 짊어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것이 결혼이 아직까지도 필요한 이유다. 난 결혼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무조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신병자들을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에서. 여자 친구에게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다. 우리, ‘삶의 동반자’로서 결혼하자고.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결혼에 대한 좋고 나쁨의 단상> 목차 보러 가기

스튜디오 크로아상 콘텐츠 보러 가기


▼ 웨딩해 콘텐츠 더보기 ▼

영화 어바웃타임의 결혼식은 현실에 없었다

결혼해본 자가 알려주는 결혼 전 체크리스트

딩 호구 탈출방! 결혼 준비 함께 나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