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 공짜 촬영 보조가 아니야.
TV보다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훨씬 길어진 시대. 커다랗고 선명한 TV가 코앞에 있어도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은 그저 BGM 정도로 취급될 뿐, 눈과 손으로는 스마트폰 화면만 연신 쫓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혹은 아예 TV를 스마트폰과 노트북의 작은 화면을 대신해 유튜브를 시청할 수 있는 커다란 모니터 정도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유튜브는 일상에 스르륵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유튜브를 단순히 시청하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유튜버가 되어버린 지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독’과 ‘좋아요’는 ‘사랑’입니다!>를 외치면서 말이다. 인생을 채 10년도 살지 않은 꼬맹이부터 손자, 손녀를 등에 업고 활발히 활동하는 60, 70대 노인들까지, ‘유튜버’라는 새로운 직업은 그간 존재해왔던 여타 직업들에 비해 매력적인 구석이 참 많다.
작은 화면 속에서 제각기 개성을 바탕으로 참신한 콘텐츠를 뽑아내는 유튜버들을 보고 있노라면 대단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리고 공중파 방송의 짜인 틀 안에서는 지루하게만 여겨졌던 소재들도 일반인 유튜버들에 의해 새롭게 재해석되는 모습에서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이나 주변 지인 혹은 가까운 사람, 그중에서도 특히 나의 연인이 유튜버라면? 글쎄, 마냥 유튜브를 재미있고 즐겁고 매력적인 플랫폼으로만 생각할 수 있을까?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기 전, 오랜만에 친구들 모임이 잡혔다. 코로나 때문에 1월부터 미루고 미루던 모임 약속이 여름까지 미뤄지다가 겨우 ‘밥만 먹고 빨리 헤어지자’는 조건으로 성사된 것이다. 당연히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제는 필수였다. 예약해둔 식당에 들어가 발열 체크를 하고 손 소독제로 소독하고 자리에 앉았다. 주문을 하고 음식이 전부 나오기까지 기다린 후 자연스럽게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빠르게 내 손을 저지하는 게 아닌가?
“혹시 영상 찍거나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 찍을 사람 있어?”
순간 아차, 싶었다. 평소 SNS 계정에 사진 몇 개만 올려두고 잘 들여다보지도 않을뿐더러, 남자 친구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심지어 SNS 계정조차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처럼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현실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행동했던 것이다. 친구들에게 빠르게 “미안! 평소에 내가 사진을 잘 안 찍으니까 자연스럽게 손이 먼저 나갔네”라며 멋쩍게 사과하고 웃어 보였다. 하지만 나의 사과 뒤에 한 친구는 다소 퉁명스러운 말투로 제 생각을 덧붙였다.
“추억이나 기록 남기려고 사진 찍는 거 좋긴 한데, 요즘에 이것 때문에 피곤해 죽겠다 아주. 남자 친구가 유튜버 하겠다고 일상 vlog를 찍어서 올리는데, 뭐만 하면 한세월이야. 카페 가서도 먹지도 않을 거, 구색 갖추겠다고 이것저것 잔뜩 시켜서 커피 다 식는데도 영상을 몇십 분씩 찍고. 밥 먹을 때도 대화도 좀 하면서 즐겁게 먹어야 되는데 유튜브에 올릴 그럴듯한 장면 찍느라고 말도 없이 카메라만 쳐다보고 있고. 주말에 피곤하면 집에서 편하게 데이트하고 싶기도 하고 그렇잖아?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유튜브 영상 올려야 한다면서 주말에도 교외로 차 끌고 나가서 양평 어디 카페 가고, 강릉까지 장거리 뛰고… 피곤해 죽겠어. 주말엔 좀 쉬어야 되는데 억지로 가서 촬영까지 도와주고 오는 날이면 오히려 평일보다 더 피곤한 것 같아. 요즘 들어서는 얘가 날 공짜 촬영 보조로 생각하고 만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니까.”
사실 '자기 PR 시대니까'라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유명 유튜버가 되어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까지 많이 버는 길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기에 친구 남자 친구의 행동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나 또한 유튜브 영상 제작에 한창 빠져있던 때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피곤하다고 느낄 정도로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소홀히 대하는 게 맞는 걸까? 더욱이 합의되고 상의되지 않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써야 한다면? 상대방으로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모든 관계들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감정이라는 변하기 쉽고 또 그렇기에 섬세하게 다루어야 할 것을 매개로 하는 연인 관계에서라면 특히나 상대방을 수단으로 바라보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본다면 친구의 토로가 십분 이해되고 또 공감이 간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앞세워 상대방이 배려해주는 것을 당연시하고 또 그걸 이용해 내 목적만을 이루려 하지 말자.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내가 누군가의 수단으로 여겨질 날이 올 테니 말이다. 그때가 되면 아무리 억울해도 과거에 내가 날린 부메랑이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억울함을 어디에다 대고 하소연할 수도 없을 테니까.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