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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Sep 28. 2020

그는 해피엔딩이 싫다고 말했어

도대체 사랑의 엔딩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거야?


수많은 로맨스 영화들은 제가 가진 능력을 아주 잘 살려 곧잘 우리의 심금을 울리곤 한다. 서로 좋아하지만 모종의 오해로 연인이 되지 못한 채 상황을 비관한 여자가 떠나려고 공항에서 캐리어를 돌돌돌 끌고 가면 뒤에서 남자가 달려와 백허그를 한다던가 권태감을 이기지 못해 서로에게 막말을 하고 돌아선 남녀가 각자의 시간과 공간에서 서로를 추억하다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해 달려간 곳에서 재회해 결혼까지 골인한다던지 하는 그런 장면으로부터 말이다. 뻔하고 상투적인 스타일의 전형적인 클리셰인데 왜 우리는 이런 장면들에 눈물을 흘리고 격하게 공감하는 걸까? 


얼마 전 지인 H와 함께 <미술관 옆 동물원>을 봤다. 20년도 훌쩍 지난 영화인데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어찌나 세련되고 톡톡 튀는지 주인공들의 대화 장면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누군가는 전형적인 90년대식 흔한 멜로 영화라고 할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잘 만든 영화의 감성 터지는 대사와 빛바랜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롤러코스터에 앉아 앞자리 등받이에 붙어있는 손잡이를 미친 듯이 꽉 쥐고 있는 사람의 오르내리는 감정의 동요처럼 두 주인공의 널을 뛰는 듯한 감정선을 따라가고 있노라니 어느덧 결말 지점에 이르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의 액자식 구성 덕에 지루함 없이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결말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나와 H의 영화에 대한 평이 확 달라졌다. 10점 만점에 8점과 3점. 결말이 평점에 주는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마치 10번 잘해도 1번 실수하면 가차 없이 나를 내던지는 비열한 세상과도 같달까? 


출처 : <미술관 옆 동물원> 포스터


H의 변(辯)은 이러했다. 


“으악, 전형적인 해피 엔딩이잖아? 이 영화의 엔딩이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 정말! 아니 멜로 영화들이 멜로 영화인 건 알겠는데, 왜 마무리도 꼭 <해피>로 끝나야 하는 거야? 뭐 썸 탄다고 다 연인이 되라는 법도 없는데 이건 멜로가 너무 멜로 했네(필자의 덧: 이 말은 판타지스럽기도 한 멜로 영화의 특성을 비꼰 말인 듯하다). 현실에서는 서로 마음을 확인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커플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좀 비현실적이다. 너무 전형적이야.”


H의 말과 마음도 이해는 간다. 특히 <미술관 옆 동물원>의 두 주인공들을 1시간 반 가까이 따라가다 보면 왠지 그냥 친한 친구나 아는 사이로 남아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왜 현실에서도 있지 않은가. 얘네들은 너무 잘 어울리고 친해 보여서 커플보다는 오히려 친구로 투닥거리면서 지내는 게 보는 사람 눈에 왠지 더 흡족한 그런 사이 말이다. 그래서 나 또한 결말에 조금의 아쉬움은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론 영화니까, 그것도 멜로 영화니까 가능한 결말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영화를 고르고 볼 때 각자 기대하는 지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멜로 영화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까? 아마 현실에서의 비루한 나의 연애를 대신해서 진하게 농축된 연애와 사랑의 감정을 즐겨주기를 바라기 때문 아닐까? 비록 나는 구질구질하고 로맨스라고는 1도 없는 짜증 나는 연애를 하고 있을지라도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장면 속 사람들 만큼은 아름다운 연애를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리하여 멜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우리의 부족함과 아쉬움을 채워줌으로써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것으로써 제 존재 의의를 가지는 게 아닐까 싶다. 


출처 : <미술관 옆 동물원> 스틸 컷


그동안 멜로와 로맨스 영화를 참 싫어했다. 남의 연애하는 모습을 뭣하러 돈까지 내가며 2시간 동안 꼼짝 않고 보고 있어야 하는지 진절머리가 났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문득 누군가가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젊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아름다운 줄 모르는 건 그들 자체가 꽃이기 때문이라고.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지금에 와서 멜로도 꽤 괜찮은 장르구나,라고 느낀다는 건 이제는 영화 속 그들처럼 풋풋한 연애에서 한 발자국 멀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생각으로부터 조금 서글퍼지는 건 별개로.


이렇게 지독한 현실주의자와 극한의 이상주의자의 멜로 영화 탐험은 또다시 서로의 다름만을 명확하게 확인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디 엔드!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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