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Oct 26. 2020

현명하게 가사 분담하는 방법?

그게 그렇게 쉬울 리가요?


민족 대명절도 벌써 한참 지났고 앞으로 연말까지 공휴일이라곤 단 하루도 없는 나날의 연속이다. 오늘은 어제와 같고 내일은 또 오늘과 같을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대화의 주제와 이야깃거리도 매번 비슷하게 되풀이되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도 삶에서 특별한 이벤트(예를 들면 복권 당첨(!), 졸업, 여행, 결혼 등)가 발생하지 않으면, 우리가 주고받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일정 주기를 기점으로 반복된다. 마치, 명절을 전후해서 보도되는 <급증하는 이혼 상담, 이혼 서류 접수 증가> 뉴스처럼 말이다. 


올해 추석에도 어김없이 친척들이 모두 모이는 집에 내려가지 않았다. 코로나가 좋은 변명거리가 되어주었지만, 어쨌든 부모님도 간섭하지 않는 결혼 문제로 압박을 가하는 친척들에게 뻣뻣하게 굴어 나 때문에 분위기를 망쳤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긴 시간 통화하며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근황을 담은 수다를 떨었다. 연인과는 집에서 소소하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영화를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름대로 즐겁게 연휴를 보냈지만, 지인들 중에는 마음 놓고 연휴를 즐기지 못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일찍 결혼한 친구에게서 명절 연휴 막바지에 연락이 왔다. 평소라면 긴 이야기는 만나서 해도 될 법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통화로 대신했다. 근황 토크로 간단하게 대화를 시작했고 이야기는 인간관계와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그렇게 이어진 대화는 남편과의 말다툼에 관한 하소연으로 이어졌다. 



사정인즉슨 이랬다. 1년에 2번 있는 명절 중 한 번은 시댁 먼저, 다른 한 번은 친정 먼저 가는 것으로 결혼 전부터 합의를 했고 이 약속은 꽤 잘 지켜지고 있는 편이라고 한다. 세상이 바뀌어 대부분의 분야에서 남녀가 서로를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단 한 번이라도 시댁보다 친정에 먼저 갈 수 있도록 허락해준 시댁에 마땅히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게 일반적인 듯하다. 친구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시댁에 갔을 때만큼은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최대한 다 하려고 했다. 하지만, 시댁에 가면 며느리라서 일하고 친정에 가면 우리 엄마 일하는데 딸이 되어서 마냥 누워서 먹고 놀고 쉴 수 없어 일하고, 이중으로 일하려니 힘든 와중에도 눈치 보지 않고 허허실실 마음 편하게 있는 남편이 새삼 미워졌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라도 가사 분담에 따른 제 역할을 잘해줬다면 명절 하루, 이틀 정도는 친구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 맞벌이를 하는 와중에도 자신이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데, 명절에까지 과중하게 일하려니 도무지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흥분해서 말하는 그녀의 입에선 정제되지 않은 뒤죽박죽의 말들이 튀어나왔지만, 결론에 가서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안 싸우고 현명하게 가사 분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였다. 그래서 대답했다. 


“남편을 바꿔치기하지 않는 이상 이번 생에선 어려울 듯…”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작은 탄식에는 좌절이 묻어났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항시 제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 정돈하고 자신이 먹은 밥그릇은 스스로 치우고 양말은 뒤집어 벗어 놓지 않으며 빨랫감은 색깔 별로 구별해서 넣어두는 것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에게 바뀌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상대방 입장에서는 잔소리를 동반한 ‘싸움을 걸어오는 행위’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물론, 아무리 못한다, 할 줄 모른다 말해도 주입식으로 교육을 시켜 반복하게 만들면 어떻게 해서든 바뀔 수도 있지만 흔쾌한 마음으로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라면 며칠 혹은 몇 달 정도 하는 척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적절한 가사 분담을 원하는 입장에서는 짜증 나고 복장 터지는 게 당연하고 다시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재차 되물을 것이다. “그래도 부부 중 한 명만 가사를 전적으로 분담하는 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평생 엄마나 보모처럼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힘들게 살라고요?”라고.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어차피 혼자 살아도 밥은 해 먹고살아야 하잖아요? 깨끗한 옷 입으려면 내 손으로 빨래해야 하고, 밥 다 먹었으면 식탁 치우고 설거지해야 하고요. 다 마른빨래는 정리해서 옷장에 넣어야 하고 먼지 보이면 걸레질해야 하고요. 이런 것들 다 어차피 혼자 살아도 해야 할 일인데, 그까짓 한 사람 분량 선심 쓰듯이 조금 더 해준다고 생각하면, 몸은 좀 힘들어도 마음이라도 좀 편하지 않을까요? 세상 사는 거, 마음 편한 게 제일이라잖아요.” 


부부 중 아내든 남편이든 가사를 더 많이 하게 된다면 한 사람에게로 치우친 불공평한 가사 분담은 일을 하는 쪽에게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까지 큰 부담이 된다. 불공평한 가사 분담의 부정적 속성까지 애써 외면하라는 말이 아니다. 어차피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도 내 손으로 평생 해야 할 일이라면, 상대방이 같이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짜증이나 화를 내기보다는 관점을 바꿔 생각해보면 마음이라도 좀 편해지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끼리 만나 가정을 이루고 맞춰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치약 짜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따지고 들면 싸울 일이 천 가지, 만 가지가 넘는데 그때마다 나의 불평과 불만만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상대와 나에게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현명한 가사 분담 방법’ 같은 건 존재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가사 분담뿐만 아니라 결혼 생활을 하면서 맞닥뜨리는 어떠한 문제든 뾰족한 수가 없고 자꾸만 다툼으로만 번진다면, 차라리 내 마음을 다스리고 관점을 바꿔보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더 지혜로운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결혼에 대한 좋고 나쁨의 단상> 목차 보러 가기

스튜디오 크루아상 콘텐츠 보러 가기


▼ 웨딩해 콘텐츠 더보기 ▼

남편 셔츠, 왜 내가 다리고 있는 거죠?

매일 저녁 따뜻한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

오픈채팅방에서 결혼 준비 같이해요!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가 만든 대세, ‘인만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