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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Nov 02. 2020

도피성 결혼을 할 뻔했다

이모, 구해줘서 고마워요!


요즘 유튜브에는 ‘옛드’, 즉 지나간 시절의 유명했던 드라마들이 15~20분짜리 짧은 영상으로 많이 올라온다. 어릴 때 부모님 옆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무슨 내용인지 이해도 못하고 함께 봤던 드라마를 지금 유튜브에서 보고 있노라면, 그때 그 시절의 감성이 함께 몰려오는 듯하다. 화질도 좋지 않고 사운드도 엉망이며 소위 말하는 ‘옥에 티’도 자주 보이지만, 옛날 명작 드라마만의 감성이 있어서 추천 영상으로 뜰 때면 종종 보곤 한다. 


심심할 때 한 두 편씩 ‘옛드’를 보던 중, 한 서브 여주(엄밀히 말하자면 서브 여자 주인공이지만, 아래 글에서는 간단하게 ‘여주’라고 표현하겠다)의 ‘고군분투 결혼 허락 구하기’가 눈에 들어왔다. 여주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맞고 사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 상대를 고를 때 가장 염두하는 것은 인성이다. 매일 맞고 또 울어도 이혼하지 못하는 엄마를 앞에 두고 “엄마처럼은 안 살 거야!”라는 대사를 던지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날고 기는 직업을 가진 좋은 집안의 남자라고 하더라도 인성에 문제가 있으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는다. 


그런 그녀에게 언젠가부터 착해빠진 친구의 남동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둘은 우연에 우연이 몇 번 더해지는 필연으로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부잣집 딸과 가난한 집 아들이 결혼에 골인하기가 쉽겠는가? 양쪽 집안에서는 서로 쌍수를 들고 반대한다. 부잣집은 그 나름대로 가난한 집 아들을 사위로 보지 않겠다며 나서고, 가난한 집은 그 나름대로 자격지심이 앞서 부잣집 며느리는 부담스러워서 싫다고 고사한다. 둘의 사랑 앞에 고난과 역경이 닥쳤고 남자는 여자를 위해 헤어지자고 말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팔을 잡고 말 그대로 ‘애걸복걸’한다.


출처 : MBC <보고또보고> 다시보기 홈페이지 


“나 XX 씨 아니면 평생 결혼할 마음 없어. 결혼할 이유도 없어. 엄마, 아빠 등쌀에 떠밀려 선도 여러 번 봤지만 XX 씨 만한 사람 없었어. XX 씨의 착한 성격이 날 움직였어. 사실, 말하지 않은 게 있어. 우리 아빠, 밖에서는 사람들 눈치 때문에 가정적인 척하시지만 꽤 폭력적이야. 특히, 술 마시거나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면 엄마랑 나, 벌벌 떨면서 기다려. 이런 삶에 지쳤어. 나랑 결혼해서 나 좀 데리고 가줘.” 


여주의 연기력도 참 좋았다. 절절한 눈빛과 OST도 심금을 울릴 정도였다. 하지만, 대사를 듣고는 ‘읭?’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주가 남자를 정말 사랑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그를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를 그저 자신의 힘들고 버티기 어려운 현재 상황에서의 도피처 정도로 여길 뿐, 다른 착한 사람이 그보다 먼저 나타났다면 아마 그 남자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선택을 내릴 때, 선택을 좌지우지하는 배경, 조건 등을 깔고 앉는다. 어떤 상황과 조건에 구애됨 없이 과감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여러 가지 조건에 떠밀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특히, 결혼을 결정함에 있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좋고 미래를 함께 꾸려가는 것이 기대되어서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이가 있어서, 부모님께서 재촉하셔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확신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만약, 헤어지게 된다면 또다시 다른 사람을 만나서 알아가고 하는 과정이 귀찮아서, 주변 친구들이 다 결혼하니까 나도 해야 될 것 같아서 등 유난히 주변의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도 있다. 전자라면 전혀 문제가 없고 또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더라도 나의 선택에 따른 대가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후자라면 글쎄, 문제가 간단하지만은 않다.



필자가 아는 이모(50대 미모의 여성)는 자신의 결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내가 돈이 너무 없었어. 일하는 것도 힘들고 혼자 책임지는 것도 버겁고. 그래서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됐을 때 몇 번 만나보지도 않고 덜컥 결혼을 결정했어.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빨리 결정하지 않았을 거야. 한 마디로 그때 난 남편을 도피처로 생각한 거지. 그런데 그때의 내 선택이 살다 보니 날 더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선택이었지 뭐야? 결혼으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구하거나 도와줄 수 없어. 어차피 인생 다 혼자야. 그런 생각으로 결혼을 할 바에는 그냥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혼자 이렇게 저렇게 헤쳐나가는 편이 나아.” 


그리고 이모는 덧붙이셨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주체적’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결혼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왜 여전히 주체적이지 못한 지 모르겠다고. 그렇다, 그녀의 의문은 정말 합리적이다. 먹고 싶은 메뉴도, 말도 통하지 않는 머나먼 외국으로의 몇 년 어학연수도, 전공을 선택하고 직업을 가지는 것도 다 주체적으로 말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면서 결혼만큼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  


결혼은 절대 도피처가 될 수 없다. 낙원도, 천국도, 아름다운 꽃밭도 될 수 없다. 지루한 주례사에서 늘 듣는 말처럼, 결혼은 비좁고 더럽고 험한 가시밭길도 둘이 함께 손을 잡고 걸어 나가면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그나마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최악을 가정해야 그나마 현실적인 어려움이 견뎌지는 것이 결혼인데 한 사람을 의지 삼아 도피처로서 결혼을 택한다면 그 끝이 행복이라는 단어로 갈무리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난 회의감을 안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만 싶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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