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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Nov 09. 2020

당신의 눈으로 나를 볼 수 있어요

사진기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만들어진 것인가요?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다면 
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텐데 


그는 사진을 찍는다. 가끔은 그게 나를 짜증 나게 만든다. 그는 같이 길을 걷다가도 툭하면 걸음을 멈추고 사진기를 들었다. 난 멀뚱히 서서 그 남자의 의식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바람이 불어서 내 머리가 흐트러졌고 때로는 해가 너무 뜨거워서 그림자 밑으로 몸을 숨겨야 했다. 그렇게 나는 그를 기다렸고 그는 셔터를 누르고 누르고 누른 후 내게로 왔다. 난 도대체 그가 뭘 보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한국은 자유가 없지. 안 그래?” 


그는 불쑥 이렇게 묻곤 했다. 자유? 내가 자유에 대해 뭘 안단 말인가? 나는 그의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 


“더 이상 독재자는 없잖아.”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당신은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말은 그냥 나오는 것이다. CPU가 뭔지 몰라도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말의 의미를 몰라도 대화를 할 수 있다. 그거면 된 것이다. 


“법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진짜 자유가 필요해.”  


그는 이렇게 말했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 너는 자유가 필요 하구나. 난 안정이 필요한데. 어디까지 자유가 필요한데? 여자 친구가 있어도 다른 여자를 만날 수 있는 자유까지 필요한 건 아니지?’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기분이 나빠졌다. 그에게 집착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지만 그런 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아는 하나의 미스터리다. 그렇기에 타인은 거대한 미스터리다. 



나는 못생겼고 세상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기 싫어 


나는 언제나 사진보다 그림을 선호했다. 내가 못생겼기 때문이다. 그림은 못생긴 얼굴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피카소가 그린 여자 얼굴을 보면 이 사실이 분명해진다. 하지만 사진은 못생긴 얼굴에 가차 없다. 물론 포토샵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돈이 없다. 포토샵을 돌릴 컴퓨터를 살 수도 없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고 찍히지도 않는 것이다.   


그는 틈만 나면 나를 찍었고 그게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얼굴이 못생겨서 사진 찍는 게 싫어.”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못생긴 사람에게도 자존심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난 그가 내 사진을 찍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는 날 찍는 것으로는 모자랐는지 찍은 사진들을 인화해서 나에게 주기까지 했다. 난 사진이 휴대폰 속 파일이 아닌 다른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알게 되었다. 그가 건네준 사진은 얇은 비닐 안에 담겨있었고 난 그걸 책상 어딘가에 처박아 두었다. 못생긴 얼굴은 매일 아침 거울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내 마음이라는 
좁은 시야를 벗어나게 만들어 


이별은 아이스크림과 함께 찾아온다. 나는 그와 헤어지고 나뚜루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통을 혼자 다 먹었다. 그렇게 1,470칼로리가 내 몸속에 들어갔고 난 얼굴뿐만 아니라 몸까지 못생겨지기 시작했다. 유지방으로 그득한 몸을 일으켜 방을 정리했다. 주위에 있는 그의 흔적을 모조리 지워야 한다. 그와 함께 했던 과거는 내게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내 습관이다. 나는 관계가 틀어지면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을 없애곤 했다. 그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다. 그 사람과 함께 있었을 때의 내가 싫어서다. 내 마음속에 과거를 위한 자리는 없다. 과거는 부정되어야 하는 것이고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방 정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좁은 원룸이니까. 나는 책상 어딘가에서 그에게 받은 사진 뭉치를 집었다. 100장, 200장, 아니 300장은 족히 될 것 같았다. 이제 그것들을 집어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으면 된다.  


코에 먼지가 들어갔고 재채기를 했다. 사진을 쓰레기봉투에 넣기 전에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찍었다. 클로즈업을 하기도 했고 멀리서 찍기도 했다. 코만 찍기도 했고 입술만 찍기도 했다. 엉덩이만 찍기도 했고 가슴만 찍기도 했다. 나는 점점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이 나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 자신을 제삼자로 느끼기 시작했고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진이 원래 이런 걸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사진기가 만들어진 것일까? 


나는 미쳤다. 사진 속의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괜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럼 매일 아침 거울에 비치는 못생기고 쓸모없는 나는 뭐지? 내 마음이 만들어 낸 이미지인 건가? 사람은 눈으로만이 아닌, 마음과 함께 세상을 보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나는 웃었다. 나는 왜 그의 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그가 찍은 사진은 그의 마음이다. 나는 눈 앞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 마음이 나를 실명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나를 볼 때에야 난 좁은 내 마음속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자기 연민은 이제 필요 없다. 


나는 사진을 다시 책상 속에 넣었다. 과거의 나를 쓰레기봉투 속에 버릴 필요는 없다. 과거의 나를 지워야 할 필요도 없다. 자아는 변덕스럽고 연약하지만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 사진은 하늘을 나는 새가 되어 나와 당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며 나와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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