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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Nov 23. 2020

한 끗 차이의 미묘함 -
호기심과 시험의 사이에서

호기심은 이해할 수 있지만 날 시험한 거라면 용서 못해!


“그러니까, 지금 너 나 떠본 거잖아. 아니야? 아니라면 그런 질문을 왜 해?” 


이 어마어마하게 잔인하고도 차가운 대사는 실제로 내가 연인이었던 이에게 들어본 말이다. 나는 그저 호기심으로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상대방은 내가 자신을 ‘떠봤다’며 기분 나빠했다. 나는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것인데, 왜 그따위 것을 궁금해했냐고 물어본다면, 그저 궁금해서 궁금해했을 뿐인데…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다며 억울한 표정으로 중얼중얼 제 생각을 읊어대던 드라마 속 아역 배우의 대사가 방언 터지듯 입에서 재생되어 나오는 순간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그와 사귄 지 채 3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하철역 플랫폼에서 함께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그는 열심히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며 우리 앞을 지나치는 사람을 흘끗 봤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지나간 후 작게 속삭였다. 



“난 길거리에서 걸어가면서 저렇게 뭐 먹는 거 좀 그렇더라. 특히 여긴 환기도 잘 안 되고 먼지도 많은데, 여기에서 뭐 먹으면 그 먼지들 다 같이 먹는 셈이잖아.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냄새로 피해줄 수도 있고, 빵가루 같은 쓰레기 떨어질 수도 있고……”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둘만의 대화였다고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타인의 자유에 대해 왈가왈부했다는 점에서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우리를 지나쳤던 그 사람에게는 절대 들리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늦게나마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바깥에서 걸어 다니면서 음식을 먹는 것이 싫다고 말하는 그에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되물었다. 


“그래? 그래도 저건 저 사람 자유 아닌가? 음, 그럼 만약에 내가 돌아다니면서 길거리 음식이나 포장해온 샌드위치, 과자, 빵 이런 거 먹으면 어떨 것 같아? 나한테도 뭐라 할 건가?”


당시 나는 어떤 의도도 숨기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를 곤란하게 하거나 몰아세우려는 등의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배가 고픈데 식당에 들어가서 밥 먹을 시간은 없는, 그런 예외적인 상황이 있을 수도 있고, 나 또한 걸어 다니면서 테이크아웃 커피나 젤리 같은 군것질거리를 먹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반해, 상대방은 그렇지 않으니 그저 그 사람의 반응과 생각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가 싫어하는 어떤 행동이 그가 좋아하는 사람인 나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는 예외가 되는 것인지, 뭐 이 정도 의도와 기대는 가지고 질문을 던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화’ 그 자체였다. 그는 갑자기 돌변해서 “너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쿨하게 넘기는데, 나는 뭐 까다롭거나 유별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너 무슨 의도 가지고 나 떠보는 거냐? 그것도 아니면 답정너야? 다른 사람은 안되지만 너라면 괜찮아, 뭐 이런 말을 듣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라고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물론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질문을 던진 사람이고 상대방은 그걸 받는 입장이었으니 내 생각이나 의도와 달리 당황하거나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3개월 차 연인의 불 같은 화를 감당하기가 어려웠고,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궁금해했을 뿐인데 이게 시험한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잘못된 건가?’라는 서운함이 몰려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도 그때의 내 질문이 그렇게 상대방을 화나게 하는 것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질문은 잘못된 거야. 그래서 난 화가 나’라고 말한다면, 나로서도 온전히 마음으로부터 이해는 되지 않지만 사과해야 하기에 그때 당시에도 내가 먼저 사과하며 어찌어찌 풀었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이 사건은 ‘연인 사이에 있었던 작은 해프닝’ 정도로 기억될 수 있지만, 아직도 그때 당시의 분위기, 말투, 눈빛 등이 잊히지 않고 제법 똑바르게 기억이 나는 걸 보니 스스로 깨달은 바가 많은 것 같다. 그리하여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아직 탐색 중인 연인 사이에서 호기심과 시험은 ‘연인 간의 예의’라는 선을 사이에 두고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한 끗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끗 차이의 미묘함을 앞에 두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본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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