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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Dec 07. 2020

사진첩을 사니 남자 친구의
모든 모습이 멋져 보여요

착각이라도 상관없어요. 모든 인간은 착각을 하며 사니까요.


맘 같아서는 여러분들에게 당장 사진첩을 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제 경험이 여러분의 경험과 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사람은 다 다르지 않습니까? 저는 사진첩과 좋은 경험을 나누었지만 어떤 분들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글에서 여러분들에게 사진첩을 사라고 말하기보다는 제가 사진첩으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말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북한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남자 친구가 어느 날 제게 북한산을 함께 올라가자고 하더군요. 저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순종적인 편입니다. 그렇게 등산 준비를 하던 중 저는 무의식적으로 사진기를 챙겼습니다. 비싼 거 아닙니다. 저는 거지입니다. 돈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아주 예전에 산 캐논 디지털카메라입니다. 그렇게 카메라와 물, 빵, 그리고 고구마, 이온음료 몇 개, 그리고 단감 몇 개를 챙겼습니다. 네, 압니다. 저는 돼지입니다. 


그렇게 등산을 하러 올라가면서 저는 사진을 막 찍었습니다. 산을 찍고, 남자 친구의 뒷모습을 찍고, 셀카를 찍고, 그냥 아무렇게나 찍었습니다. 평소에 저는 휴대폰으로 - 물론 아이폰이죠 - 하루에 100장 정도의 사진을 찍습니다. 그중에서 평균 0.3장 정도를 건집니다. 그러니까 4일 연속으로 사진을 찍어야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 한 장을 얻을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저를 나무라지는 마세요. 저도 예뻐 보이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카메라가 싸구려라서 그런지 그냥 아무렇게나 찍고 싶었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북한산 정상을 찍고 내려와서 닭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식당에서 저는 제가 찍은 사진들을 봤고 왠지 모르게 인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사진 인화하는 사람이 있나요? 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인화라는 걸 해본 적이 없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굳이 인화? 컴퓨터에 저장해놓으면 되는데 굳이 돈 내서 인화를 할 필요가 있나?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왠지 그 날은 인화가 하고 싶었습니다. 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인화를 맡기고 저는 교보문고로 사진첩을 사러 갔습니다. 하지만 너무 비싸서 쿠팡에서 샀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놀라지 마세요. 사진첩 결제를 딱 하고 나니까 갑자기 사진을 찍고 싶은 열정이 막 더 생기는 겁니다. 진짜입니다. 제 마음속에서 남자 친구와 저의 순간순간을 모두 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막 솟구쳤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진이 있기 때문에 사진첩을 사는 게 아니다. 사진첩이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애플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이폰을 사는 게 아니라 아이폰을 사니까 애플을 좋아하게 되는 것과 같다.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저는 갤럭시도 좋아합니다. 삼성 갤럭시는 정말 편하고 멋있지요! 단지 예를 들기 위해 아이폰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이재용이 팀 쿡보다 잘생기지 않았나요? 


어쨌든 그렇게 저는 저와 남자 친구의 순간순간을 사진기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남자 친구가 못생겼을 때도, 제가 화장을 안 했을 때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맛없는 음식을 먹을 때도, 날씨가 좋을 때도 날씨가 좋지 않을 때도… 이렇게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찍고 사진첩에 정리하니 삶의 모든 순간이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친 것 같죠?  



그런데 정말 그렇지 않을까요?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 좋든 좋지 않든 그 모든 것은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아니, 어쩌면 삶에서 일어나는 일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단지 그 사건들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느냐만 있을지도 모르죠. 


사진첩이 있고 삶의 모든 순간이 적어도 사진첩을 채울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저는 삶 자체를 어느 정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좋든 싫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어느 정도 과장입니다. 저는 가끔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저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첩 하나 샀다고 해서 제가 인생을 통달하고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여러분을 기만하는 것이고 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니까요.  


저는 다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사진첩을 샀습니다. 그리고 사진첩을 사니 사진을 찍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삶의 모든 순간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루를 살아갈 이유 하나를 얻었습니다. 인생에서 나쁜 일이 일어나든 좋은 일이 일어나든 그건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고, 그렇기에 저는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이건 속임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을 살아갈 이유가 있기 때문에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삶을 살아갈 이유가 필요해지는 게 아닐까요? 사진첩은 그렇게 저에게 삶을 살아갈 이유 하나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이건 제 경험입니다. 그리고 제 경험은 여러분들에게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저는 삶의 이유들 중 하나를 사진첩을 통해 얻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삶의 이유가 없으면 삶을 살기 어렵습니다.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살아갈 이유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남자 친구가 개 같은 짓을 해도 바로 헤어지기보다는 이렇게 생각해보는 게 어때요? 이것도 사진첩에 들어갈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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