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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an 04. 2021

오픈 채팅,
점점 절망으로 다가가는 나의 기대

나는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애정을 바란다.


오픈 채팅에서 만난 남자에게 사랑을 바라는 건 정신병 아닐까? 


그녀는 이렇게 글을 쓰려다가 문득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문장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리고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풍부한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다른 문장으로 바꿔보도록 하자. 


사실 거짓말이다. 솔직히 그녀는 남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누가 상처를 받든, 불편한 감정을 느끼든 알 바 아니다. 그녀가 저 문장을 쓰고 흠칫했던 것은 악플을 받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인간을 바꾸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보복이다. 악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두려워하지 않는 척하는 인간만 있을 뿐이다. 당근은 채찍을 쓰기 위해 존재할 뿐, 당근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그녀는 악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문장을 고쳤고 글은 한층 더 재미없어졌다. 솔직히 글은 싸가지가 없어야 한다. 그래야 재미있으니까. 모범생들은 재미도 없고 재수도 없다. 잘 노는 척하는 모범생은 더 최악이다. 쓰레기다. 


“나는 공부도 잘하는데 노는 것도 잘해요. 패션에 관심 있고, 음악에 관심 있고, 메이크업에 관심 있고, 외국어에도 관심이 있어요. 인기요? 당연히 많죠. 이런 것들을 다 하면서도 서울 상위권 대학에 합격했고 지금은 학점도 잘 받고 있어요.” 


그녀는 삶을 살아가는 내내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인상을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녀는 사실 클럽에는 관심 없지만 자주 다니고 있다. 대학 동기들에게 잘 노는 애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어서. 인스타그램에 클럽에서 놀고 있는 영상을 업로드한다. 당연히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영상으로. 그녀는 최근에 유튜브 브이로그도 시작했다. 은근히 학교 이름이 나오도록 했고, 두꺼운 전공 교재가 은근하게 화면에 잡히도록 했으며 외국인 친구들과 하는 채팅이 은밀하게 나오도록 했다. 대놓고 보여주면 잘난 척한다는 악플이 달릴까 봐. 자랑은 은근히 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오픈 채팅으로 돌아가자. 그녀는 요즘 친구에게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받고 있다. 친구는 오픈 채팅으로 남자를 만났고 만난 그날 남자와 잤다. 두 사람은 섹스에 미쳐있는 걸까?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꾸었다. 인간도 동물이다. 인류 역사는 인간을 동물에 가깝게 보느냐 신에 가깝게 보느냐로 나뉜다. 중세는 인간을 신과 가까운 존재로 봤다. 자신을 잘 가다듬고 수양하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다. 현대는 인간을 동물과 가까운 존재로 본다. 돈과 섹스에 미쳐있는 게 인간이다. 


친구는 그렇게 남자와 섹스 파트너가 되었다. 남자는 성욕을 해결하고 싶었고 친구는 외로움을 해결하고 싶었다. 물론 섹스 파트너가 있다고 해서 성욕과 외로움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단순히 섹스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심오한 것들이다. 프로이트를 비롯한 천재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달려들었지만 아직까지 인류는 성욕과 외로움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섹스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두 사람이 서로 몸을 뒤섞고 있는 동안에는 성욕과 외로움을 잊을 수 있다. 그 ‘순간’을 위해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만나 섹스를 한다. 


그녀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원나잇 섹스를 할 수 있지? 몰카에 찍히거나 에이즈에 걸릴까 봐 무섭지도 않은가? 그녀는 사실 소심하고 겁이 많다. 악플이 걱정돼서 글을 바꾸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녀는 울기도 잘 운다. 물론 혼자서, 몰래. 하지만 그녀는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언제나 당당하고 개방적인 사람.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보이길 원한다. 그래서 그녀는 친구의 전화를 받으면서도 애써 놀란 척하지 않았다. 자신도 원나잇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처럼, 다양한 연애와 섹스를 경험해본 것처럼, 남자에 대해 통달한 것처럼 나긋하고 거만한 목소리로 친구와 통화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기분이 점점 안 좋아졌다. 친구가 자신보다 더 잘 논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사람이 눈치채도록 해서는 안된다. 그 감정이 열등감이라면 더더욱. 인생 자체가 하나의 연극이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인생이다. 



친구는 울었다. 친구는 남자와 정식으로 연애를 하고 싶어 했다. 남자가 오로지 섹스를 위해 자신과 만난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만나는 거 아니겠냐고, 자기가 무슨 오나홀이냐고 그녀에게 말했다. 


친구는 처음에는 쿨한 척을 했다. 남자에게 말했다. 나는 너랑 섹스 파트너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이건 진심이 아니었다. 그녀는 몇 번 만나다 보면 남자가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번의 섹스가 끝나면 자신에게 고백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친구는 몇 번 그에게 언질을 주기도 했다. 장난으로 남자 친구 안 할 거냐고 물었다. 그는 기겁을 했고 그런 걸 원하면 관계를 정리하자고 했다. 그에게 있어 친구는 그저 섹스 파트너일 뿐이었던 것이다. 친구는 좌절했다. 섹스가 지속될수록 좌절은 절망으로 변해갔다. 


언젠가 그에게 진짜 여자 친구가 생길 것이다. 아니면 언젠가 그는 친구와의 섹스를 지루해할 것이다. 그렇게 남자는 언젠가 친구에게 섹스 파트너 관계를 정리하자고 말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친구는 절망과 마주해야 한다. 그가 자신을 단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절망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결국은 시간문제다. 이 남자와의 관계는 절망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 그 절망이 언제 다가오느냐만 남아있을 뿐이다. 



친구는 그녀에게 물었다. 자기가 쿨한 척한 게 잘못이냐고.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쿨한 척한 게 잘못인가? 친구는 그냥 연기를 한 것일 뿐이다. 연기를 하지 않고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는단 말인가? 그게 애초에 가능한 일인가? 그녀는 모른다. 그녀는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건 친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건 그 남자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처음에 이렇게 적었다. 오픈 채팅에서 만난 남자에게 사랑을 바라는 것은 정신병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마음을 바꾸었다. 사랑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정신병이다. 오픈 채팅에서 만나든 소개팅에서 만나든 길거리에서 만나든 남에게 사랑을 바라는 것 자체가 정신병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건 없으니까.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사랑은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가 돈이 없어지면 그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남자 역시 그녀의 얼굴과 몸매가 망가지면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현대는 인간을 동물에 가깝게 본다. 그러니까 이런 행동은 잘못이 아니다. 동물은 이렇게 행동하는 법이다. 그녀는 친구에게 괜찮다고 말해줬고 그건 진심이 아니었다. 그냥 빨리 전화를 끊고 싶었다. 그녀의 우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에게 연기를 했다. 


그녀는 가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가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가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남을 알 수 있을까?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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