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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an 06. 2021

장거리 커플의 결혼식 날짜 정하기

결혼식은 언제가 좋을까요?

30대 중반 남녀의 연애는 결혼까지 순탄하게 이어졌다. 러시아에 있는 그와 만난 지 반년 만에 서로의 부모님을 만났다. 반년이라 해도 우리는 장거리 커플이었다. 처음 소개를 받아 대화를 나눈 지 3개월 만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다. 일주일 휴가를 내서 한국에 온 그와 매일 만났다. 함께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공원을 산책하는 일상의 데이트였다. 그는 처음 만날 때부터 내게 말했다. 


“불가사리와 결혼하고 싶어요.”

“저를 아직 잘 모르잖아요.”

“마음이 열릴 때까지 저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 


남자의 고백을 믿지 않았다. 이전의 연애가 그랬다. ‘네가 좋아 미칠 것 같아.’라는 연애의 시작은 늘 끝이 씁쓸했다. 감정에 대해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런데 이 사람. 만나자마자 ‘결혼’ 이라니? 혹시 내게 말 못 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는 나의 어떠한 모습에도 늘 한결같았다. 아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의 적절한 온도에 내 마음은 조금씩 열렸다. 두 계절이 지난 후, 그는 우리 부모님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빠보다 먼저 사진을 봤고 지난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조심스레 물었다. 


“네가 결혼할 사람을 소개한다니 좋기는 한데, 정말 너도 좋은 거 맞지?”

“그럼. 내가 좋으니까 소개하는 거지.

“응. 엄마는 네가 좋으면 괜찮아. 그게 제일 중요해.” 



꽃과 선물을 들고 잔뜩 긴장한 그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섰다. 오랫동안 해외에 있었기에 종종 서툰 한국어 표현이 나올까, 그런 그를 부모님이 잘 봐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졌다. 갑자기 아빠가 물었다. 


“러시아에 예쁜 여자도 많은데, 왜 우리 불가사리를....?”

“제 눈에는 불가사리가 가장 예쁜데요.”

“허허허.” 


예비 장인의 답이 정해진 질문에 꼭 맞는 답변을 함으로써 식탁 위의 대화는 자연스레 결혼식으로 넘어갔다. 그와 나는 ‘작은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가능한 불필요한 것을 제하고, 우리를 잘 아는 이들과 함께 따뜻한 식사를 나누는 것. 우리가 꿈꾸는 결혼식이었다. 바람은 큰 어려움 없이 이뤄졌다. 둘 다 집에서 첫 결혼이 아니었고, 아빠는 퇴직하신 후였다. 그의 집에선 기다렸던 막내아들의 결혼이었다. 남들보다 늦은 결혼은 어떤 면에서 장점이 많다. 양가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이제 그가 한국에 머무는 일주일 사이 결혼식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여기 드레스 숍이 문을 닫게 되어 며칠간 할인행사를 한대.”

“그래, 같이 가보자. 여기 공간도 예쁜데?”

“응. 소규모 결혼식도 열리나 봐. 한번 살펴보고 오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복합 문화공간을 찾았다. 주택가 골목길 사이 아담한 2층 단독주택이었다. 결혼식, 돌잔치, 행사 장소 대관을 주로 하는 그곳엔 할인 중인 웨딩드레스가 걸려있었다. 20만 원으로 내게 어울릴 것 같은 웨딩드레스와 1만 원으로 그의 나비넥타이를 샀다. 아담한 장소가 꽤 마음에 들었기에 대관이 가능한 날짜를 물었다. 


“지금 6월 9일이 비어있어요. 예약금을 내시면 바로 가능해요.”

“오. 그다음 주는 러시아 휴일이 있어. 날짜 좋다.” 



그의 상황에 꼭 맞는 날짜였다. 이 일정이라면 그는 목요일 저녁에 비행기를 타서 금요일 아침에 한국에 도착, 우리는 토요일 점심에 식을 올리게 될 것이다. 바로 예약금을 내면서 결혼식 날짜가 정해졌다. 2018년 6월 9일 토요일 12시. 근처 카페에 앉아 숨을 돌렸다. 우리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만, 이래도 괜찮은 걸까? 갑자기 걱정됐다. 


“부모님에게 말씀 안 드리고 이렇게 정해도 되나?”

“우리 집은 크게 상관없을 거 같은데.”

“일단 각자 집에 전화해보자.” 


먼저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우리 결혼식 날짜 잡았어.”

“응? 뭐라고?!”

“6월 9일이에요. 여기 식장 보러 왔는데 그 날짜만 비어있대요.”

“아니 그렇게? 일단 집에 와서 이야기하자.” 


그리고 그는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어머니, 우리 결혼식 날짜 잡았어요. 6월 9일이에요.”

“응 그래. 알았어. 표시해둘게.” 


양쪽 집의 반응은 역시 달랐다. 친구들은 말했다. 결혼식 날짜는 내가 아닌 남(식장, 부모님, 또는 집의 다른 어르신)이 정해주는 거라고. 내가 원하는 날에 맞춰 식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전적으로 우리의 의견을 존중해주신 양가 부모님 덕분에 새로운 가정의 첫 단추를 잘 끼운 셈이다.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부모님의 허락을 받을 수 있을지, 언제, 어디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될지 몰랐던 그는 준비했던 프러포즈까지 완벽히 수행한 후 다시 러시아로 떠났다. 한국에 나 홀로 남았다. 이제 결혼식 날짜와 장소는 정해졌다. 결혼으로 가는 길, 본격적인 준비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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