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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Feb 01. 2021

우울증을 앓는 남자 친구와
이젠 헤어지고 싶다

나는 오늘도 나의 모든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선다


남자 친구는 이제 성관계도 잘 못한다. 그가 먹고 있는 어떤 약 때문에. 나는 그 약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우울증 약이라는 것만 알 뿐이다. 


나는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걸까? 여러분들이 내게 답해주길 바란다. 난 이제 지쳤다. 내 인생도 힘든데 우울증에 걸린 남자 친구까지 신경 써야 하니 너무 힘들다.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나는 연애를 하면서 힘을 얻고 싶지 힘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다. 지금 남자 친구는 내게 힘을 주기는커녕 내 힘까지 빼앗아 가고 있다.


더 솔직히 말해도 될까? 나는 그와 헤어지고 싶다. 단단하고 진취적이며 성공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 나도 이제 20대 후반이다. 결혼을 생각해야 할 때다. 난 평소에 우울증 환자에 대한 어떠한 편견도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 심지어 우울증 환자는 우리 모두가 배려하고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이게 얼마나 개 같은 소리였는지 이제 알겠다.  


막상 옆에 우울증 환자가 생기니 더 이상 저런 말은 못 하겠다. 그와 격리되고 싶다. 병원에 집어넣어버리고 싶다. 또 나는 우울증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과는 가급적 인간관계를 맺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하고, 옆에 있는 사람을 진 빠지게 만드니까.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안타깝긴 하지만 나도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내가 우울증 환자를 돌보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나쁜 년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내가 쓰레기인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나는 이제 나의 본성을 알았다. 난 내가 착한 사람인 줄 알았다. 언제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뿔, 그건 환각에 불과했다. 나는 남자 친구가 우울증에 걸려 골골대자 곧바로 그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힘드니까. 남자 친구보다 더 나은 남자들이 눈에 들어오니까. 지금이라도 그런 남자를 만나야 한다. 지금보다 나이가 들면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기 어려워진다. 


이게 나다. 이기적이고 나밖에 모른다. 이런 사람이 뭐? 다른 사람을 배려해? 이런 사람이 뭐?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웃기는 소리. 나는 그냥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그런 소리를 한 것에 불과했다. 솔직히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한 게 뭐가 있을까?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리 한 번 비켜준 적 없다. 내가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한 게 뭐가 있을까? 없다. 나는 재활용 조차 하지 않는다. 난 그냥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저런 소리들을 했던 것이다.  


이제 알겠다. 나는 다른 사람이나 세상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 나는 그저 에르메스 가방이 가지고 싶을 뿐이다. 지금 남자 친구가 에르메스를 사줄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에르메스를 살 능력을 갖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없다. 그래, 그렇다면 헤어져야지. 세상에는 내게 에르메스를 사줄 능력이 있는 남자들이 존재할 테니까. 세상에는 내가 에르메스를 살 능력을 갖도록 도와줄 남자들이 있을 테니까. 



이 글에는 악플이 달릴까? 그럴 수도. 많이 달아주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덜 수 있을 테니까. 당신들의 악플은 내게 힘이 된다.  


나는 유튜브를 본다. 그곳에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커플들이 있다. 어떤 커플은 사귀는 도중에 남자가 장애인이 되었다. 그런데 여자는 그를 떠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그를 보살피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서로 장난치고 웃기도 한다. 변한 것은 남자의 몸뿐인 것으로 보인다. 저게 진짜일까? 나는 의심한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몸이 변하면 마음도 변해야 하는 것 아닐까? 여자는 여전히 남자를 똑같이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나로서는 믿을 수 없는 광경들이 유튜브 영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저게 정상인 걸까? 여자 친구라면 마땅히 저렇게 해야 하는 걸까? 남자 친구가 우울증에 걸려도, 남자 친구가 장애인이 되어도 예전과 똑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 그게 진정한 여자 친구인 걸까?  


나는 영상을 꺼버린다. 죄책감이 드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남자 친구와 헤어질 결심을 약하게 만들어버리니까. 나는 이미 결정했다. 나는 저 여자와 다르다. 그에게 이별을 말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차라리 그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죄책감도 안 느꼈을 텐데.  


남자에게 차이길 바라는 건 처음이다. 난 정말이지 차이고 싶다. 하지만 그는 헤어질 마음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말할 수밖에 없다. 내가 쓰레기인 걸까? 나는 다시 묻는다. 당신들은 나와 다른가요? 그렇다면 나를 욕해주세요. 만약 나와 같다면, 그렇다면 내가 잘못된 거라고 말해주세요.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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