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전업주부, 남자는 셔터맨?
밤 10시. 퇴근한 배우자와 함께 저녁을 먹고 두런두런 얘기하고 나니 어느덧 늦은 시간이다. 약속이나 한 듯, 요즘 애독 중인 유튜브 채널을 튼다. 우리 부부가 자주 보는 콘텐츠는 코로나 상황을 역이용한 ‘비대면 소개팅’. 예전엔 먹방 콘텐츠와 일상 브이로그 등을 자주 봤다. 얼굴 한번 나오지 않으면서도 독자가 몇만, 몇십만 명이라는 게 신기할 뿐.
"나도 이거 할까?"
남편에게 물어보니 심드렁하게 도전해 보란다.
"대박 날지는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을 붙이며.
"됐어. 나도 알아. 그냥 하는 소리야."
그러고 보니 우리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성공한 디지털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것 같다. 동영상 플랫폼 계정만 있다면, 개성 있고 독특한 매력을 24시간 뽐낼 수 있다. 공감을 하든, 욕을 하든, 혹은 감동을 주든 많은 사람들에게 자극만 주면 되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주변에서 부쩍 SNS를 해 대박 났다는 지인 이야기가 전설처럼 들려온다. 부인의 성공에 따라 남편도 자연스레 일을 그만두고 ‘셔터맨’으로 산다는 이야기도 함께. 주위에선 말한다.
"좋겠다. 회사에서 싫은 소리 들어가며 일 안 해도 되고." "부인만 안 됐네. 남편은 결국 집에서 놀고먹는다는 소리 아냐."
정말 그런가? 아니, 남편은 셔터맨을 하면 안 되나?
18평 빌라에서 40평 아파트로
이사 간 A 이야기
지인 사이에서 A 가족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그들은 결혼 후 몇 년 만에 40평대 아파트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다.
A의 성공은 다름 아닌 SNS 마켓 판매에 있었다. 평소 동창 사이에서 예쁜 외모로 유명했던 A는 평범한 남편과 결혼했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자연스레 SNS 팔로워들과 소통하며 비슷한 경험담을 가진 이들과 애환을 나눠 가졌다.
이들의 신혼살림은 18평 빌라에서 시작됐다. 주변에서 흔히 볼 법한 평범한 모습. 하지만, 살림을 하다 보니 아담한 집에 육아용품이 가득 찼고, 이 물품을 중고 거래 플랫폼을 활용해 처분하고 구매했더니 주변 엄마에게 ‘털털하기까지 한 젊줌마’로 통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A는 ‘써보니 좋아서 공유한다.’는 미명 하에 육아템 공구 마켓을 열었다. 구름같이 모여있던 SNS 친구들 덕택인지 공동구매는 순항을 이어갔다. 아이템의 종류는 점점 다양해졌고, 결국 어느새 세 식구의 집은 널찍한 신축 40평대 아파트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A 가족 이야기를 두고 지인들은 부럽다는 한편, A가 안 됐다는 소리도 했다.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쉰다는 얘기가 같이 들려와서다. 이게 말로만 듣던 셔터맨인 건가.
셔터맨이 왜 나빠요?
'셔터맨'은 흔히 능력 있는 아내가 운영하는 가게의 문을 열고 닫는 일을 하는 무직의 남편을 말한다. 어릴 때 다녔던 미용실에서 몇 번 듣곤 했었다. 당시 단골 미용실 원장님의 남편은 회사를 다니지 않으셨다. 작은 사업을 하신다고도 하다가, 잘 안 되어 집에서 쉬고 계신다고도 했다. 가게 문을 닫을 즈음엔 남편분이 원장님을 데리러오셨던 기억이 난다.
학창 시절 친구도 자신의 아버지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지역 병원 의사, 아버지는 예술가이자 셔터맨, 사실상 한량이 따로 없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허허 웃던 친구에게 놀랐었다.
21세기에도 그 표현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지금도 아내는 일하고, 남편은 쉬고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말하니까.
“부인이 돈 잘 벌어서 남편 셔터맨이라며?”
“여자만 뼈 빠지게 일 하겠네.”
셔터맨은 분명 배우자를 얕잡아 부르는 혐오가 내포되어 있다. 분명, 남성도 전업주부가 될 수 있는데 말이다.
반드시 맞벌이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외벌이에 아이가 있는 기혼 남성은 유난히 ‘이직’을 두려워했다. 출근하자마자 회사 욕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직장동료에게 ‘맞는 옷을 찾아 떠나라.’고 조언해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달만 집에서 쉬어도 벌써 공포에 떨 아내와 아이를 볼 수 없어서라나. 그의 말엔 늘 결혼한 남성 동료들이 격하게 동의했다. 아이 분유값은 밀려서는 안 된다며, 30분에 한 번씩 담배를 피우러 나가더라도 절대 회사를 먼저 그만두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외벌이의 애환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 또한 그들을 볼 때마다 절대 맞벌이를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벌이가 주는 연대감이 가정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서다.
물론, 외벌이로 살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아이를 키워야 할 때엔 육아휴직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긴 하지만, 살 수는 있지 않던가. 혹은 둘 중 한 사람이 재충전을 원하고 심기일전하고 싶다면, 한 사람이 버는 동안 여유롭게 제2의 삶을 고려할 수도 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다만, 본격 전업이 아닌 재충전을 위해 쉬고 있는 이들이라면, 심기일전의 시기가 짧았으면 좋겠다. 휴식과 다음을 위한 숙고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상대방은 예민해지고 지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