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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pr 05. 2021

남을 먹여 살리겠다는
흔쾌한 결심이 필요한 이유

공평과 평등 속에서도 때론 양보와 희생이 필요하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부부입니다. 둘 다 직장에 다니고 있고 각자 월급에서 일부를 빼서 생활비 통장에 넣습니다. 식료품, 생필품, 공과금 등 대부분을 생활비 통장과 연결된 카드로 지불하고 있어요. 그런데 얼마 전, 남편이 제가 생리대 사온 걸 보고 생리대는 생활비 카드가 아닌 제 용돈으로 사라고 합니다. 생리대도 엄연히 생필품의 일종인데, 생리대는 자신은 사용하지 않는 물품이니 제 용돈으로 사는 게 옳은 거라고 하는데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고민을 재편집 후 카드 뉴스 형식으로 만든 콘텐츠를 보게 됐다. 제목만 봤을 때는 요즘 유행하는 ‘반반 결혼’에 따른 갈등의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읽다 보니 단순히 ‘너 반, 나 반’의 규칙을 어긴 데 따른 불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갈등의 핵심은 결혼과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생활에 대한 마음가짐, 태도의 문제였다. 


연인이 일정 기간 교제 후 결혼을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언제까지고 연애만 할 수는 없으니까,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었으니까, 부모님께서 재촉하시니까, 빨리 경제력을 합쳐 더 여유롭게 살고 싶어서, 함께 살면 불필요하게 소요되는 데이트 비용도 줄고 매일 한 집에서 함께 할 수 있으니까, 안정적으로 한 사람에게 정착하고 싶어서, 더 이상 외롭고 싶지 않아서 등 이유와 동기는 가지각색이지만, 비혼 주의자가 아니라면 연애의 종착지가 결국 결혼이라는 것에 많은 연인들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종종 간과되는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에 앞서 경제적인 부분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능력도 안 되면서 무리하게 빚을 내서 결혼하거나 부모님께 도움을 받아 결혼하면서 겉으로만 독립의 모양새를 취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문제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즉, ‘나의 배우자가 어느 순간 경제적으로 무능력해진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이 사람을 위해 노력하고 면박 주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과 그에 따른 결심이 선 채로 결혼을 결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결혼 방식의 트렌드는 ‘각자 여력이 되는 한에서 반반 결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면서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로 부모님께 손을 벌리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표면상으로 남자 쪽에서 이것저것 끌어 모아 반, 여자 쪽에서 이것저것 긁어 모아 반, 도합 100을 만들어서 결혼하게 되면 시작은 깔끔할 수 있다. 너도 반, 나도 반 해왔으니 누구 하나 밑지는 사람 없이 공평하게 각자 의견 내면서 평등하게 살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분명 처음과 달라지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다른 것도 아닌 ‘돈’과 관련된 문제라면, 상황은 녹록지 않게 흘러가게 된다. 차라리 마음이 변한 거라면 관계의 회복을 위해 마음을 더 쓰며 노력하거나 아니면 깔끔하게 갈라설 수 있다. 만약, 사회에서 잘 나가던 내 남편이 갑자기 실직해서 집에서 백수로 놀고 있다면? 혹은 아내가 갑자기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고 갈구는 상사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힘들어 이제부턴 살림만 하면서 전업주부로 살고 싶다고 한다면?  


처음 몇 달 정도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러려니 보아 넘길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왜 저 사람은 내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에서 놀고먹고 나만 계속 이렇게 힘들어야 해? 언제부터, 왜, 이렇게 된 거지? 차라리 혼자 살았으면 저축은 못해도 월급 쓰는 건 다 날 위해서였을 텐데, 죽어라 일하면서 쓸 수 있는 돈은 혼자 살 때보다 더 적잖아. 에이 짜증 나!’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짜증은 알게 모르게 상대방에게로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때부터 “능력도 없는 게 먹여 살려주니까 고마운 줄도 모른다.”라는 험한 소리가 나오며 싸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외도를 하거나 아예 마음이 변한 게 아니기에 섣불리 이혼하지 못하고, 교착 상태가 지속되면서 관계에 악영향만 미치게 된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참 간사한 존재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의 통찰력에 감탄할 정도로 말이다. 연애 때는 기념일 아닌 날에, 원하지도 않았는데 마음에 쏙 드는 비싼 선물을 해주기도 하고 1인분에 십몇 만 원 하는 고급 식당에도 가며 상대를 기쁘게 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면서, 결혼 후 ‘진짜 내 가족’이 되었을 때는 오히려 ‘내가 왜 쟤를 먹여 살리면서 생리대까지 사줘야 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생각해버리고 만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족과 주변인들로부터 많은 부분에 있어 무조건적인 수혜를 입는다. 그리고 자라면서 점점 세상이 나에게 무조건적이지 않다는 것을, 기브 앤 테이크 방식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점점 이분법적이고 계산적인 면모를 갖추게 된다. 물론,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따져볼 건 따져보고 계산할 건 계산하면서 똑 부러지게 행동하는 건 옳다. 하지만, 내가 선택해서 사랑하고 결혼까지 한 사람과의 생활에 있어서조차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경제적 논리를 들이대고 있다면, 함께 하는 결혼 생활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결혼은 사랑이 밑바탕에 있어야 하지만, 사랑한다는 것만으로는 결혼 생활이 유지될 수 없다. 시간이 지나 사랑의 크기가 처음에 비해 작아지고 강도가 약해지더라도, 상대방이 큰 잘못을 하거나 나를 저버리지 않는 이상 끝까지 함께 하리라는 결심이 필요하다. 그러니 지금 결혼을 고민하고 있다면 혹은 ‘내가 왜 뒤돌아서면 남인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기혼자라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자. 이 사람이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져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는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존중으로 상대를 대우할 수 있는지 말이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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