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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Mar 29. 2021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는 남자 친구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제가 너무 보수적인 걸까요?


“몸과 마음은 하나가 아니야. 내가 다른 사람과 몸을 섞었다고 해서 마음까지 섞은 건 아니야. 물론 이해하기 힘들 수 있어. 하지만, 난 지금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거야.” 


근래에 저는 정말 치욕적인 일을 겪고 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겠습니다.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와 잤습니다. 제가 이 역겨운 진실을 직접 찾아낸 건 아닙니다. 남자 친구가 이 사실을 먼저 고백했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죠? 네,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저를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짓거리를 할 수 있는 거죠? 저 지금 남자 친구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거 맞죠? 진짜 머리카락을 다 뽑아버리고 싶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한 사람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 한다는 건 세상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해. 아주 극소수의 커플만이 서로를 사랑하면서 평생 살아가. 정말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래. 나머지는 그냥 죽지 못해 함께 사는 거지. 대부분이 그래. 난 우리가 다르게 살았으면 좋겠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그의 말을 들으며 저는 아주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습니다. 분노와 치욕감이 몰려오는 동시에 일종의 희열도 느꼈습니다. ‘아, 글감 하나 생겼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뺨을 때리지 않고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남자 친구에게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자리를 떴습니다. 화장실에서 저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지금 난 아주 역겨운 상황에 처해있다. 하지만 이 역시 좋은 글감이다. 그러니 평정심을 되찾고 제삼자의 눈으로 이 상황을 보도록 하자. 원래 주인공이 치욕을 당할수록 글이 더 재미있어지는 법이다. 도대체 그가 무슨 개 뼈다귀 같은 소리를 하는지 어디 한 번 들어보자. 



저는 자리로 돌아와 “무슨 말이야?”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다른 여자랑 잤어.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건 너뿐이야. 그 여자랑은 그냥 잠만 잔 거야. 누군지도 몰라. 연락처도 없어. 그냥 하룻밤을 같이 보냈을 뿐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는 것을 느꼈고 이렇게 뇌졸중으로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말이야? 아니, 애초에 왜 그걸 나한테 말하는데? 차라리 말 안 했으면 내가 몰랐을 거 아니야. 대놓고 말하는 이 심보는 도대체 뭐야?” 저는 극심한 두통을 이겨내고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온한 거짓보다는 불안한 진실이 낫다고 생각해.” 


미친놈이 왜 갑자기 명언 비슷한 것을 날리는 걸까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무릎 꿇고 빌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무슨 자기가 법륜 스님도 아니고 뭐? 평온한 거짓? 불안한 진실? 이런 개 뼈다귀 같은 소리를 듣고 있자니 온몸에 흐르는 피가 검은색으로 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아, 저는 살인 사건이 왜 일어나는지 알아버리고야 말았습니다. 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커피잔으로 가져갔습니다. 그의 얼굴에 커피를 뿌리겠다고, 그래서 그의 얼굴에 화상이라도 입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서로에게 자유를 허락하자. 아니, 사실 자유는 허락하는 게 아니지. 자유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천부적 권리지. 그러니 말을 바꿔야겠어. 우리, 서로를 구속하지 말자. 몸과 마음은 하나가 아니야. 난 너에게 몸과 마음을 다 주고 있어. 하지만 그게 다른 사람에게 몸이나 마음을 주지 못하다는 건 아니야. 너 역시 마찬가지고.”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저는 기가 쏙쏙 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커피 잔을 들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그의 말이 맞는 건가요? 저도 진보적인 사람입니다. 아,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제발 정치적으로 해석하지는 말아주세요. 저는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멍청합니다. 저는 정치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투표조차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제가 진보적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냥 제가 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걸 여러분들에게 어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저도 자유로운 성생활에 관한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는 말입니다. 교보문고 같은 곳에서 다자 연애를 다룬 책들을 읽기도 했습니다. 이런 책들을 읽으며 그 어떠한 불쾌감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세상이 발전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답답한 세상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응원했습니다! 저는 그들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런 방식의 자유로운 사랑이 제게 닥치니 더는 진보적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니, 한 사람에게 몸과 마음을 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책임을 다 한다는 뜻 아닌가요? 어떻게 여러 사람을 동시에 충실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거죠? 정말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저는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아빠가 제게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보수주의자가 된다.” 아무래도 아빠 말이 맞는가 봅니다. 저는 정말 스스로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 일이 되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오늘따라 하늘에 있는 아빠가 더 그리워요.  


아빠 보고 있어? 나 어떻게 해야 해?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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