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일상인 남자, 전화가 비상인 여자
우리는 서로 전화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남편의 경우, ‘뭐해?’로 시작하고 나는 ‘무슨 일이야?’로 받는다. 남편은 무슨 일이 없어도 전화를 하고 나는 무슨 일이 있어야 전화를 한다. 난 어떤 관계에서도 할 수 있는 연락 수단 중, 전화를 최후의 수단으로 두기에 누군가에게 전화가 오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부터 든다. 남편에게 전화는 일상이고 나에겐 비상이다.
대부분 연락을 안 해서 싸운다는데, 남편과 나는 연락을 너무 자주 해서 싸웠다. 그러니까 나의 퇴근 시간이 ‘7시’고 남편의 퇴근 시간이 ‘5시’였을 때, 퇴근길 남편은 늘 나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매일 5시면 퇴근한다며 전화하는 남편. 남들 앞에서 통화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 한참 일하는 중에 해맑게 ‘뭐해?’하며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우리는 여러 번 다퉜고, 그렇게 점점 남편의 퇴근길 전화도 뜸해졌다. 서로 저녁 약속이 잡혀 퇴근이 늦어지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나 전화를 하는 식이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필요할 때만 통화하는 방식. 서로 만난 지 10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서로가 맞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 중이라 불편했지만, 사실 나를 생각하며 건 전화로 시작되는 싸움이 줄어든 것도 기뻤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이른 퇴근에 신이나 밖에서 저녁이나 먹을까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뚜뚜뚜'하는 기계음이 나를 반겼다. ‘어, 이 시간에 누구랑 통화 중이지?’ 그날 외에도 종종 남편은 통화 중이었다.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퇴근 후, 남편과 통화하는 사람은 누굴까?
내가 아닌 누군가와 종종 통화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퇴근길에 남편과 마주했다. 오늘도 그는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그동안 묻고 싶었던 질문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누구랑 통화한 거야?”
“엄마랑."
“왜? 무슨 일로?”
“그냥, 퇴근할 때마다 전화해."
남편의 통화 상대는 시부모님이었다. 알고 보니 전화하는 걸 좋아하는 남편은 퇴근할 때면, 시부모님이나 우리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있었다. 전화를 해도 시큰둥하게 받는 나 대신 즐겁게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한 것. 우리 시부모님은 내게 연락을 강요하거나 기다리지 않으셨는데, 다 미리 전화해서 근황을 전하는 남편 덕분이었다.
난 요즘 남편이 전화를 잘하는 사람이라 좋다. 덕분에 시부모님은 내게 전화를 기대하지 않으시고, 우리 부모님 또한 딸보다 자주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사위의 전화를 무척 반기신다. 대신, 나는 남편이 잘 놓치는 부모님의 생신과 집안의 경조사들을 챙긴다. 매일 잘하는 것보다 어떤 이벤트를 놓치지 않는 것은 남편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 새삼 남편이 나의 성향과 다른 점이 고맙다.
종종 치약 짜는 방법으로도 싸우는 게 부부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맞는 것 같다. 함께 살다 보면 연애할 때는 몰랐던 것, 지나칠 수 있었던 것이 눈에 참 거슬린다. 사람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서로가 가진 성향을 이용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맞춰나가면서 살아가면 된다는 것, 그게 가족이 되는 과정임을 요즘 많이 느낀다.
오늘은 지금까지 쓴 글을 함께 읽으며, 남편과 내가 나눈 대화로 이 글을 마친다.
“글을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까?, 너는 내가 전화 자주 안 해서 속상해?”
“아니. 잘하는 사람이 하면 돼지. 너는 잘 받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