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에서 운명 공동체로 변한 우리 관계
동거를 하면서 알게 된 남자 친구의 새로운 모습
남자 친구와 동거하는 법은 매우 간단한데요. 그냥 “나 너랑 같이 살래”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남자 친구는 “왜?”라고 물을 겁니다. 이때 “너랑 계속 같이 있고 싶으니까”라고 대답하면 동거가 시작됩니다.
남자 친구 집으로 들어간 첫날, 저는 고마움의 표시로 찜닭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맛이 정말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해서 저희는 그 검은 닭들을 모두 버리고 김밥을 사 먹어야만 했답니다. 남자 친구에게 미안했지만 저는 밤에 즐겁게 해 주겠다고 말하면서 그의 마음을 한껏 다독여주었습니다. 남자 친구는 제게 “네 손이 부엌으로 향하는 건 김정은의 손이 핵폭탄 버튼으로 향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라고 대답하며 이따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고 말하더군요.
그렇게 해가 저물며 밤이 찾아왔고 저는 의식을 치를 만반의 준비를 다 마친 채 침대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의식을 시작하기도 전에 남자 친구가 기르던 강아지가 침대를 긁으며 멍멍거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는 강아지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당장 이 방에서 나가 너의 집으로 들어가'라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정말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이 강아지는 제 눈빛을 단번에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침대를 긁으며 마치 자신을 침대 위로 올려달라는 듯한 몸짓을 뻔뻔하면서도 당당하게 해 보였습니다.
여러분, 강아지는 강아지고 인간은 인간이 아닐까요? 아무리 강아지가 예쁘다고 하지만 인간이 더 중요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는 강아지에게 “이곳에서 썩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이 조그마한 짐승은 제가 만만했는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똑같은 행동을 지속했습니다. 저는 곧장 네이버를 열고 <강아지에게 겁을 주는 방법>을 검색했습니다. 답변은 소리를 치거나 땅을 신문지로 때리면서 강아지에게 겁을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현답에 따라 침대 위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끊임없이 강아지에게 외쳤습니다. 이 애완견은 제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애한테 왜 그래?”
이 말은 남자 친구가 저를 보고 내뱉은 첫마디였습니다. 우리 애? 저는 남자 친구가 강아지를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화들짝 놀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강아지를 안더니 “놀랐지…”라고 말하며 이 작고 귀여운 짐승을 달래주었습니다. 여러분, 물론 강아지가 놀랐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놀라지 않았을까요? 나체로 침대에 누워있는데 강아지가 침대를 긁으며 올라오려 한다고 상상해보세요. 저는 남자 친구가 이토록 쉬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우리는 운명 공동체
저와 남자 친구는 이 날 이후 많은 토론을 했습니다. 저는 개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남자 친구가 개를 향해 가지는 감정에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남자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꼭 개빠 같아.”
남자 친구는 제 말에 짐짓 당황하면서도 “일주일만 지나 봐. 너도 나랑 똑같아질 거야”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콧방귀를 뀌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참 침착하게도 하네. 비트코인 가격이 떨어졌을 때도 이렇게 침착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함께 살기로 했으니 강아지를 양육하는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을 단호하고도 정중하게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남자 친구 말대로 되었습니다. 강아지의 눈망울을 보고 저는 정말 이 예쁜 짐승이 예뻐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남자 친구가 왜 강아지를 그렇게 예뻐하는지 온전히 알게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전혀 아닙니다. 동물의 권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전혀 아닙니다. 저는 멍청하고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허나 이런 저도 강아지의 예쁨 앞에서 무릎을 꿇고야 말았습니다. 여러분 중에 강아지를 키우시는 분이 있다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강아지를 키우시지 않는 분이라면 시간이 지나야 제 말을 이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네가 옳았어.”
저는 남자 친구에게 이렇게 저의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강아지는 강아지로 키워야 한다는 내 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고, 그 말은 틀린 게 아닌 것 같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그는 그동안 강아지를 그냥 예뻐해주기만 했는데 그 방식이 과연 강아지에게 좋은지 모르겠다며, '어쩌면 자신의 무능력함을 착함으로 포장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강아지를 양육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했고 지금도 어떻게 해야 이 강아지를 잘 기를 수 있을까를 서로 이야기하며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동거를 하게 되면서 저는 남자 친구와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강아지를 잘 키우기 위해 함께 토론을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더 큰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아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돈을 불리기 위해 경제 이야기도 하고, 나중에 어떤 인테리어를 한 집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해 함께 꿈꾸기도 합니다.
떨어져 있을 때도 좋았지만, 같이 살면서 이렇게 함께 미래를 꾸려나간다는 게 저는 정말 좋네요. 강아지 양육 방식으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삶의 많은 부분을 함께 계획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함께 삶을 꾸려 나가게 된 것에 매우 만족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하고 있는 동거를 매우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고 있답니다. 저는 어리석고 연약하여 삶을 혼자 꾸려나가는 것보다는 둘이서 꾸려나가는 것을 더 좋아하거든요.
이상, 저의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강아지와 산책하러 나가야 해서 글을 줄이겠습니다. 여름이네요. 해가 참 오래 떠있죠? 풀과 나무가 생동하듯이 여러분의 삶도 생동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