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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l 19. 2021

서울의 집과 남자친구의 눈물

나는 아직도 그가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


내 말 한마디 때문이었을까? 그 한 마디가 그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버린 걸까? 우리는 같이 밥을 먹고 있었고 남자친구는 TV 속,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홀로 사는 사람들을 보며 “멋있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어떤 부분이 멋있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가 멋있는데?” 

내 말에 그는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자유가 없으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라고 은은하게 대답했다. 

“그건 돈을 많이 벌어본 사람만 할 수 있는 말 아닐까? 너는 아직 돈을 많이 벌어본 적이 없잖아. 그리고 돈과 자유가 서로 상반되는 가치야? 돈을 많이 벌면 반드시 자유가 없어지게 되어 있는 거야?”

나는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서 말을 툭 내뱉었고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산책을 나갔다. 길을 걸으면서 부동산에 매물로 나와있는 집들의 가격을 보았다. 전세가 4억, 5억. 억(億)이 얼마일까? 부동산 시장은 나와 전혀 관계없는 세계다. 부동산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우리 서울에서 계속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식이나 코인 투자를 배워야 할 것 같아. 그 방법이 아니면 도저히 서울에서 집 사기가 어려워. 정말 답이 없어.”

나는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말했고 그는 이번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샤브샤브 먹으러 가자”는 남자친구의 카톡에 놀랐다. 평소에 뭐 먹으러 가자는 말을 잘하지 않는 그였다. 유튜브로 주식 고수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콜”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기분이 좋았다. 유튜브 주식 고수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주식으로 돈을 버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았고, 남자친구가 먼저 무언가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하는 걸 보니 그가 나를 생각해주는 것 같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남자친구를 만나러 갔다. 


“공짜야.”

그는 식당에 들어가면서 말했다. 

“공짜? 어떻게?”

나는 공짜라는 말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아는 형한테서 블로그 샀어. 공짜로 먹는 대신 블로그에 리뷰 올리면 돼. 그 형이 바이럴 마케팅으로 돈 많이 벌었는데, 내가 형한테 사정해서 좋은 블로그 하나 싸게 샀어. 이제 블로그 활동 열심히만 하면 돈 많이 벌 수 있어. 서울에 집 살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기쁨은 결국 슬픔이 되고 웃음은 결국 눈물이 되었다. 남자친구가 블로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는 많이 웃었다. 공짜로 이것저것 먹으러 다니고 비타민 제품 광고도 받아서 블로그에 올렸었다. 허나 이젠 지겹다. 우리만의 삶이 사라져 버렸다. 남자친구에게 먹고 싶은 걸 말하면 그는 “이번 주에 xx식당에서 공짜로 먹을 수 있는데 왜 굳이 비싼 돈 내고 먹어야 해?”라고 대답한다. 나는 이번 주에만 로제가 들어간 음식을 5일 동안 먹었다. 내 몸은 이미 유제품이 되어버렸으며 나는 내가 젖소인지 인간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난 네가 더 지겨워.”

투정을 부리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서울에 있는 집을 사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어. 넌 뭐 하고 있어? 주식으로 돈 벌었어? 네가 말했지. 월급만으로는 절대 서울에 붙어있을 수 없다고. 나는 서울에 살지 않아도 상관없어. 아니, 오히려 더 좋지. 나는 자연을 좋아하니까. 하지만 넌 아니잖아. 넌 죽어도 서울이 좋다며. 돈도 없는데 서울에서 죽어도 살아야겠다며. 그래서 나는 지금 미친 듯이 블로그를 하고 있는데 넌 뭐야? 넌 왜 하는 것도 없으면서 불평만 해?”

그는 이렇게 화를 내기도 했다. 


“네 말이 다 맞는데 이건 아니야. 블로그 하느라 우리만의 시간이 단 하나도 없잖아. 모든 것이 다 블로그 위주로 돌아가고 있어. 먹는 것, 사는 것, 데이트… 모든 게 말이야. 서울에 집도 사야 하겠지만 우리가 커플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돼. 관계는 꽃처럼 물을 계속 주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거야. 우리 관계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돼.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으니까.” 


나는 그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고 그는 또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울었다. 나는 그가 왜 울었는지 아직까지 알 수 없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우리 관계는 이렇게 끝나버리는 걸까? 나는 단지 서울에 집을 사고 싶었을 뿐이고, 동시에 우리 관계가 소원해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요구였던 걸까? 서울에 집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하는 걸까? 그게 우리들만의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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