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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l 12. 2021

'애인=기간제 베프'
공식에 공감되는 이유

사랑했던 너뿐만 아니라 좋았던 추억까지 애써 잊어야 하기에


얼마 전, 많은 이들을 공감하게 했던 짧은 글이 연일 화제였다. 내용인즉슨,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것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했던 추억까지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슬프다는 심경을 토로한 것이었다. 막상 글쓴이는 담담하게 글을 써내려 간 것 같지만, 읽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생각해볼 지점이 있었기에 해당 글이 화제가 되었던 듯하다.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글쓴이는 단지 남자 친구와 헤어졌기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가까운 사람을 영원히 잃었다는 데서 오는 슬픔과 먹먹함이 당연히 존재하겠지만, 그보다는 “조건 없이 아무 때나 연락하고 만나서 놀고 밥도 먹고 여행도 갈 수 있던 절친한 친구가 사라진 것 같아” 마음이 아리다고 표현했다. 어렸을 때부터 한 동네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놀이터에서 같이 놀고, 함께 등하교하며 방과 후에는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허물없이 지내던 친한 동네 친구 같았던 남자 친구를 영영 잃어버린 것 같아 허전하다는 것이었다.


영화 <너의 결혼식> 스틸컷


학교 앞 분식집, 지하철역 근처 카페,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운동한답시고 땀 뻘뻘 흘리며 걸어가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던 지하철 3 정거장 거리의 영화관까지…… 어딜 둘러봐도, 어디에 눈을 두어도 함께 했던 추억이 눈앞에 선한데,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너라는 사람은 내게 있어 빨리 잊혀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가니 슬프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것이다. 화제의 글을 쓴 글쓴이도 이런 울컥하는 마음을 글에 담아내며 감정을 비우려고 한 것 같다.


한 사람의 넋두리로 시작되었지만, 삽시간에 온라인 공간으로 빠르게 퍼져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낸 이 글은 여러 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과거 세대에서는 단 하룻밤이라도 연인이 단 둘이서 여행을 간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면, 이제는 몇 달씩 함께 유럽 여행을 하기도 하고 결혼을 약속하지 않았음에도 동거를 하거나 서로의 부모님 댁에 허물없이 드나들기도 하는 등 연인 사이에 할 수 있는 일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꼭 진지하게 장래를 약속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타이밍이 맞고, 마음이 맞으면 연인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짐으로써 정말 친한 베프와만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연인과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정이 드는 만큼 추억도 켜켜이 쌓이고, 쌓아 올린 추억의 높이만큼 이별 후 홀로 빠져나와야 할 감정의 골짜기도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늘 즐거운 일만 있을 수 없고, 기쁜 일 뒤에는 나쁜 일이 반드시 오는 것처럼 행복했던 추억이 많았던 만큼 연인 관계에서 결실을 맺지 못했을 때 찾아오는 감정의 뒤탈은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이별하는 이유는 존재하는 연인들의 수만큼 많고 다양하지만, 결국 어떤 이유에서건 베프를 잃을 각오를 하고, 추억을 지워버릴 각오를 하고 이별을 택했으니 뒷감당은 오로지 본인의 몫이다.



살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내게 찾아와 머물기도 하고, 그저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누군가는 오래오래 끝까지 내 곁에 있어주기도 하고, 누군가는 조금 지내다 보니 서로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생각보다 빨리 내 곁을 떠나기도 한다. 관계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열심히 발을 구르며 헤엄치고 있지만 앞으로의 내가 어느 방향으로 향하게 될지, 그곳에서 누굴 만나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그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는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다만 마주치는 누군가에게 얼만큼 마음을 내줄 것인지 정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많은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서, 생각보다 많은 것이 우연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얻고 잃는 일에 크게 연연하며 슬퍼하지 말자. 지금 내 곁을 떠난 사람보다 더 내게 딱 맞는 인연이 나타나 몇 곱절 크게 날 행복하게 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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