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널 위해서였어”라는 말 뒤에 숨은, 사랑을 가장한 잔인함
몇 달 전, 유명 남녀 배우 간의 스캔들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지금은 어느덧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지만, 처음 스캔들이 화제가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두 사람 간의 사적인 대화가 고스란히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여러모로 충격을 자아냈다.
우선 어떤 경로로 사적인 대화가 매스컴을 타고 ‘전체 공개’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개인 간의 은밀한 대화가 ‘알 권리’라는 이유를 등에 업고 세상에 공개되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더불어 해당 여배우가 현재는 전남친이 된, 당시에 사귀고 있던 남배우를 상대로 쉼 없이 ‘가스라이팅’을 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연애 참견 프로그램과 유튜브, 미스터리한 사건을 파고드는 프로그램 등에서 자주 언급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 타인의 심리적 경계 안에 파고들어 멋대로 조종함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가하고, 피해자가 자신이 그러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할 수 없도록 한다는 점에서 정신적, 심리적 폭력을 가하는 행위인 가스라이팅은 관계를 막론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다만 심리적으로 밀접한 관계 안에서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가스라이팅은 유독 연인 관계에서 많이 일어나는 듯하다.
때로는 연인 관계 안에서 부모-자식, 형제-자매, 몇십 년 지기 친구, 동기간, 선후배 사이에서보다 더 깊은 이야기가 오가기도 하고,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기도 한다. 아마 ‘사랑’이라는 내밀한 감정을 매개로 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이 사람만큼 나를 위해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연인이라는 관계의 속성상 당연히 상대방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절대적일 것이기에, 그 어떤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보다도 나를 위한 금과옥조 같은 조언을 해주리라고 믿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연인 사이라면, 상대방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기도 하다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조언을 하고 때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인이라는 관계의 특수함 때문에 어디까지가 날 위한 조언이고, 어디까지가 선을 넘는 집착이자 지배, 간섭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우리를 가스라이팅의 경계 안팎에서 혼란스럽게 만든다. 특히 사랑의 저울의 기울기가 한쪽으로 너무 기울 때,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사람이 교묘하게 관계를 이용해 가스라이팅을 하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내가 널 사랑하니까 이렇게 말해주는 거지, 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네가 뭘 어떻게 하든 신경도 안 써. 그러니까 내 말 들어. 내 말 들어서 손해 보겠어?”라는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교묘함’이라는 습성을 이용해 한 사람을 심리적, 정신적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가스라이팅은 연인 사이에서라면 무조건적으로 배제되어야 하는 게 맞다. 더불어 피해자가 스스로 덫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에, 주변인들이 연인에 의해 가스라이팅 폭력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씩 적극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이 스스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상대방의 행동과 언어를 과하게 제약하고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관계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유지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 가장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단순히 친밀과 애정을 넘어선 어떤 지나침과 과도함이 수반되어 있다면, 더 이상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관대해지지 말자.
가스라이팅. 명확히 알 것 같으면서도 혼란스럽고 어려운 단어다. 그렇기에 이 말을 떠올릴 때면 자꾸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 나는 정말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지 않은 것인지, 나 자신이 연인을 향해 가스라이팅을 가하고 있는 가해자의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물론 자신을 되돌아본다고 하더라도 주변의 도움 없이 스스로 100% 진실에 가까워지기는 어렵겠지만, 지금 나의 고민이 건강하고 건전한 관계를 위한 밑거름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