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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ug 18. 2021

사랑과 종교 때문에
동생과 의절하게 생겼습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만 보던 일이 나에게 일어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가끔 말이죠, 정말 가끔이지만 저는 누군가의 불행을 보며 웃은 적이 있습니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에 관한 가십 기사를 보며, 그리고 그 기사에 달리는 살벌한 악플들을 보며 저는 통쾌해했습니다. 친구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해  좌절할 때 저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짜릿한 우월감을 느끼며 즐거워했습니다. 


나보다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끌어내리고 싶습니다. 그 사람이 몰락하고 또 몰락하면 그때서야 저는 착한 사람이 되어 “많이 힘들었지?”라는 식의 거짓 위로를 보냅니다. 저는 저보다 열등한 사람에게만 친절을 베풀 수 있습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에게는 분노와 질투 말고는 그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습니다. 


특히 제 지인들이 저보다 더 잘 나가는 건 절대 참을 수 없습니다. 옛 어르신들이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저 말은 그저 비유가 아닙니다. 저는 제 지인들이 저보다 잘 나가면 ‘실제로’ 배가 아픕니다. 마치 배탈이 난 것처럼 배가 너무나도 아픕니다. 이 아픔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나보다 잘 나가는 지인을 끌어내리는 것 밖에 없습니다. 


제가 잘못한 걸까요? 저는 죄를 지은 걸까요? 타인의 불행을 보며 즐거워하는 나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벌을 받는 걸까요?



저는 지금 동생과 의절 직전입니다. 동생은 여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그녀는 사이비 종교를 믿고 있습니다. 어떤 사이비 종교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너무 유명해서 말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 미간은 이미 찌그러져 있었고, 너무 찌그러져서 눈썹과 눈썹이 거의 만날 뻔했습니다. 저는 종교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이유를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교회나 절, 그리고 성당 같은 곳에 다니는 걸 전혀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니 까요. 


하지만 사이비 종교는 좀 다른 문제 아닐까요? 예수님이나 부처님, 하나님을 믿는 건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특정 ‘교주'를 믿는 걸 21세기를 살아가는 제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속이 터질 것 같고 답답함에 목구멍이 뜨겁습니다. 어찌 되었든 동생은 여자 친구를 사귀었고, 그 여자는 사이비 종교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동생은 자신도 여자 친구가 믿는 사이비 종교를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같이 믿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하더군요. 제가 복싱을 배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렇다면 이 녀석의 턱을 주먹으로 가격한 다음 복부 이곳저곳을 난타하여 다시는 이런 헛소리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텐데요. 하지만 저는 복싱을 배우지 않았기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턱을 땅끝까지 떨구며 “뭐라고?”라는 말을 내뱉는 것뿐이었습니다.


“네 여자 친구가 너한테 그랬어? 같이 종교 믿자고? 어?”


“응. 근데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래. 내가 지옥에 가는 게 싫대. 그게 너무 무섭다고 그래. 자기가 믿는 종교를 믿으면 죽어서도 지옥에 가지 않을 수 있대. 사실 나도 여자 친구 말을 다 믿지는 않아. 그냥 여자 친구가 원하니까 같이 믿으려고 하는 거야. 나도 여자 친구를 정말 사랑해.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건 최대한 다 들어주는 게 진정한 사랑 아닐까?”


동생이 내뱉는 말을 들으며 저는 당장 네이버에 정신병원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습니다. 내 동생이 미친 사람이라는 걸 저는 너무 늦게 깨닫고 말았던 것입니다. 


“뭐?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당장 네 여자 친구 데리고 와! 너 지금 제정신 아닌 거 알지? 왜 그래? 여자 친구가 그렇게 예쁘게 생겼어? 네가 정상적인 사고를 못 할 정도로?”


“예쁘긴 해…”


저는 곧바로 동생 여자 친구의 머리채를 잡고 사물놀이 하시는 분들이 헤드뱅잉 하듯이 돌려버리고 싶다는 강력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당장 헤어져. 너 지금 심각한 상태야. 모르겠니? 네 여자 친구는 우리 집안을 풍비박산 내버릴 거야. 10년 후 우리 집안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봐. 네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교주에게 돈 다 바치고 단칸방에서 세상에 종말이 올 거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뇌는 우리 집안을 상상해보라고! 이게 네가 원하는 거니? 당장 여자 친구랑 헤어지고 정신 좀 찾아오면 안 되겠니? 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너는 그런 애에게 마음을 줘버린 거야?”


“내 여자 친구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이야. 세상에 여자가 많다는 헛소리 좀 하지 마. 여자가 뭔데? 여자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실물이 이 세상에 있어? 여자라는 단어는 인간이 편의상 만들어 낸 것뿐이지 실체가 전혀 없는 단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 지금 내 옆에 있는 그 사람뿐이야. 난 그 친구를 여자라서 사랑하는 게 아니야. 그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하는 거야. 실체가 없는 말은 입에 담지도 마. 여자라느니, 남자라느니 하는 헛소리 좀 그만해. 오직 특정한 사람만이 이 세상에 존재할 뿐, 여자와 남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그건 그냥 인간이 사람을 분류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라고! 오직 개인만이 있을 뿐이야!”


“너… 너네 교주가 그런 소리 하든? 너네 교주가 그런 소리 해? 벌써 사이비 종교에 빠져버린 거니? 어떻게 하지? 정말 널 어떻게 해야 해? 사이비 종교는 빠져나오기 정말 힘들다던데… 너를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정신병원에 집어넣어버릴까? 폐쇄병동에? 내가 정말 널… 어떻게…”


저는 눈물을 참으며 동생에게 꺼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꺼져버렸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저는 아직까지도 동생과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언젠가 TV에서 시사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사이비 종교에 빠진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고 저는 그들을 보며 웃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어야 저런 말도 안 되는 종교에 빠질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똑같은 일을 겪고 있습니다. 물론 제 동생은 아직 종교에 심취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자 친구에 심취해 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일까요? 저는 지금 과거의 제 잘못으로 벌을 받고 있는 걸까요?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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