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지옥으로 가기 vs 그 시간에 나를 더 사랑하기
연애를 하다 보면 별 것 아닌 사소한 것에도 자존심을 세울 때가 있다. 내 말이 맞다, 네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거다, 너는 매번 이런 식이야 같은 말들로 서로에게 날과 각을 세우면서 말이다. 하지만 백 번 양보해 여기까지는 여느 연인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자, 평범한 연애에서라면 귀여운 말다툼 정도로 흘려보낼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인 중 한 명이라도 자존감은 낮으면서 자존심이 센 성격이라면?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해진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과의 연애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자존심이 센 사람과의 연애는? 물론 쉽지 않다. 어쩌면 자존감 낮은 사람과의 연애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사사건건 강한 자존심을 내세우며 지지 않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한쪽이 무조건적으로 져주고 배려해주는 성격이 아니라면 매사에 싸우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최악은 자존감이 낮으면서 자존심이 센 사람과의 연애라고 감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얼마 전, 한 프로그램을 통해 콤플렉스 덩어리인 자존감 낮은 남자 친구가 허세를 부려서 고민이라는 사연을 듣게 되었다. 마른 게 고민인 남자 친구는 사람들이 ‘멸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만 해도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해 화를 냈다고 한다. 심지어 사연자의 남자 친구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겉모습만 보고 자신을 얕본다고 생각해 거짓 위세를 과시하고자 가짜 문신 팔토시와 가짜 금목걸이를 하고 다니기도 했다. 소형차를 운전하는 자신을 직장 동료들이 깔본다고 생각해 매달 월급의 반을 할부로 갚아야 할 만큼 비싼 차를 고민도 없이 턱 사버리기도 했고, 여자가 남자 기를 살려주는 거라며 자신의 친구들 앞에서 사연자를 대놓고 하대하고 홀대하기도 했다. 결국 남자 친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연자는 이별을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의 사연이었다.
이 사연에서 남자 친구의 가장 큰 문제는 낮은 자존감과 그에 반비례하는 굉장히 센 자존심이다. 자존감만 낮은 사람은 남이 보기에 그저 매우 소심한 사람 정도로 보일 수 있다. 자존심이 매우 센 사람은 자기주장이 너무 센 것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아 타인의 말에 일일이 영향을 받으면서 동시에 자존심이 세서 타인이 내게 조금만 뭐라고 해도 화부터 내는 사람은 연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최악이다. 이런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되지도 않는 오기를 부리며 자기 자신만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사람까지 괴롭게 한다.
사연자는 매사에 소심하고 자존감이 뚝 떨어져 있는 남자 친구가 안쓰러워서 더 잘해주고, 용기를 북돋는 말과 칭찬을 아끼지 않고 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상한 방법으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하는 남자 친구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사연을 마무리했다. 안타깝지만 이 경우에는 관계의 시작 지점에서도, 그리고 관계가 무르익은 현재에도 여자 친구인 사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자존감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자신'에 대한 생각이자 마음이다. 남자 친구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는데, 주변에서 “너 정도면 괜찮아. 네가 뭐 어때서?"라고 아무리 얘기해봤자 그에게는 공염불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자존감을 스스로 채우고 세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 그것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낮추어서 자신의 위세와 지위를 올리려고 한다는 점에서 정말 최악의 연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생각만으로도 기가 막힌데, 실제로 친구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여자 친구를 막 대하는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더 이상 재고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아껴주고 싶고 뭐든지 다 해주고 싶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를 버리기까지 할 수 있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상대를 더 생각하고 배려하는 게 사랑이라면, 낮은 자존감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진정한 사랑을 바랄 수 있을까? 자신만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이 스스로의 전부인 자존심 센 사람에게 너보다 나를 더 사랑해달라고 말한다면, 그는 이러한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니 나 자신을 사랑한다면 나를 파괴하려 하는 사람,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과의 연애는 집어치우자. 그리고 다음에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나를 더욱 아끼고 사랑해주자. 함께 지옥으로 떨어지는 연애보다는 스스로를 온전히 알아가고 사랑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더욱 값지니까 말이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