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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Oct 08. 2021

아이가 없다고 해서
측은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엄마가 되지 않아도 괜찮을까?

톨스토이의 책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오래전 읽었던 이 문장이 최근 다시 눈에 띄었다. 특히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라는 구절에서 마음이 멈췄다. 결혼했다고 하면 뒤따라 묻는 자녀계획에 대해 '모두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고 답하고 싶었다. 자녀의 유무로 행복과 불행을 나누자는 건 아니다. 다만 미디어에 등장하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에 자녀가 있었다. 좋아하는 일러스트 작가의 포스터를 사러 갔다가 ‘Family’라는 문구와 함께 남자와 여자, 그리고 두 사람의 손을 꼭 잡은 아이를 보았다. 남자와 여자의 그림 아래는 ‘Couple’이라고 쓰여 있었다. 자녀가 없는 부부는 가족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는 건가? 이런 생각은 너무 과도한 걸까?


자녀가 없는 부부도 가족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남과 여, 자녀가 있어야 온전한 가족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다. 해외에 사는 친구 K는 최근 불쾌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같은 해에 결혼한 그녀와 나는 30대 중반이 지나 가정을 꾸렸고, 아직 둘 다 아이가 없는 2인 가족이다. 온라인 모임에서 알게 된 기혼 여성은 K의 나이를 물었고, 자연스레 결혼한 지 오래되었을 거라 짐작했으며, 자녀가 없다는 말에 안타까워했다.


“기분이 썩 좋지 않더라.”
“그래, 나라도 그랬을 거 같아.”

“어떡하냐면서 난처하고 불쌍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라니까.”


그날 우리는 봇물 터지듯 서로의 생각을 쏟아냈다. 상대의 입장과 상황을 알 수 없기에 조심스러웠던 이야기들, 모든 부부는 아이를 원해야 하는가, 원한다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까,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면 후회가 될까, 정작 아이를 원해도 찾아오지 않는다면 실패한 건가. 그 가족의 모습은 평생 미완성으로 그치는 걸까. 아이가 없는 부부에겐 모두 저마다의 이유와 사정이 있다.


영화 <조제> 스틸컷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결정하는 데 ‘자녀’에 대한 가치관도 영향이 컸다. 우리는 둘 다 30대 중반이었고, 한쪽이 자녀를 간절히 원한다면 결혼까지 이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란 건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난임으로 몸과 마음이 상해가는 여러 친구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에게 아이가 안 생기거나 없을 수도 있어.”
“괜찮아. 부부가 1순위니까. 그리고 우리 집은 형도, 누나도 이미 자녀가 있어.”


막내아들인 그는 대를 이어야 한다는 어떤 책임에서 자유로웠다. 그의 말은 현실적으로 내게 안심이 됐다. 하지만 결혼 후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할 자신도 없었다. 내가 그와 나눈 이야기는 모두 ‘만약’이라는 가정법이었다. 우리에게 자녀가 있을지, 없을지 그 모든 것은 알 수 없는 거니까.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수 없는 게 인생이지만, 자녀는 더욱 그랬다. 노력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불확실한 것, 현실적으로 젊은 나이라면 좀 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이를 만난 적 있다. 외국어학당에서 만난 그녀는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낳지 않기로 사전에 합의했다. 이듬해에 해외에서 공부할 거라는 그녀의 부푼 꿈을 들으며, 아이라는 변수를 제외하고 계획할 수 있는 미래가 있다는 게 부러웠다. 여전히 나는 이쪽에도, 저쪽에도 서지 못한 불완전한 마음이라서 더 그랬다. 잔잔하지 못하고 밀물과 썰물처럼 요동치던 마음으로 망설이던 밤, 나는 내 마음의 질문이 담긴 책을 발견했다. 육아와 아이를 원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인터넷에 넘치도록 많았고, 종종 아이를 선택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도 보았지만, 그 과정을 통과한 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책 <아이가 없지만 행복하게 살아요>의 작가 이수희는 여러 차례 난임 시술을 받으며 몸과 마음이 망가지면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녀의 책에서 내가 지금 가져야 할 태도를 찾을 수 있었다.


후회는 아이를 낳지 않아서 온다기보다 충분히 고민하지 않아서 오는 거라 생각한다. 둘이서 열심히 고민해서 내린 선택이라면, 그 선택에 따른 즐거움을 누리면 된다. 그리고 감당해야할 부분은 감당하면 된다. 그 어떤 선택도 만족만 존재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이 늘 그렇게 기쁨과 그에 합당한 무거움을 함께 주니까.
- 책 <아이가 없지만 행복하게 살아요.> p.36


영화 <메기> 스틸컷


스스로 ‘엄마가 되지 않아도 괜찮을까?’물어보며 ‘후회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과 두려움이 컸다. 임신 초기에 한 번 유산을 한 터라 더욱 그랬다. 무척 힘들었던 그 시간을 또 한 번 겪고 싶지 않았다. 생명이 찾아오는 것만큼이나 열 달을 건강하게 품는 과정도 쉽지 않은 거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으니까. 


고민하는 건 나쁜 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래서 그 질문의 답을 찾았냐고 묻는다면 연필은 들었지만, 아직 확실하게 적진 못했다고 답하겠다. 다만 어떤 이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당신 곁에 아이가 없는 부부가 있다면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해 주기를. 불쌍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그래. 자녀 없이 살아. 그게 행복해”라는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침묵이 어색하면 차라리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물어보라고.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아이 없이 오늘도 고민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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