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인생을 즐기자고 말하지만 저는 1원도 헛되이 쓰고 싶지 않아요
저는 결혼이 너무 하고 싶고 아이도 2명 이상 낳고 싶습니다. 전 외동이 이기적이라거나 눈치가 없다거나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냥 2명 이상의 아이를 갖고 싶을 뿐입니다. 남자친구는 있냐고요? 네, 다행히 남자친구는 있습니다. 그와 결혼할 생각이냐고요? 네, 저는 그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만약 제 남자친구가 장점만 가지고 있다면 전 고민 없이 그와의 결혼을 추진했을 겁니다. 어떻게든 그를 제 남편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경제에 무지하다는 겁니다. 그는 금융에 관한 지식은커녕 재테크에 관한 기본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남자친구가 돈 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속이 뒤집어지고 창자가 꼬이며 말 그대로 혈압이 올라 쓰러져버릴 것 같습니다. 그와 연애를 하면서 제 건강은 많이 나빠졌습니다. 그의 소비 습관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거든요.
남자친구는 제가 너무 짠순이라면서 한 번 사는 인생 그런 식으로 살지 말라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틀리고 남자친구 말이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많고 귀가 조금 얇은 편이라서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제 이야기를 듣고 공명정대한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바라길 원합니다. 여러분이 제 헌법재판관이고 여러분이 제 대법관입니다. 그럼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금수저로 태어났다면 이런 글을 쓸 일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제게 현금 10억이 있다면 뭘 고민하겠습니까? 높은 금리를 주는 적금과 안전한 ETF에 10억을 적절히 분산하면 되는 걸요. 물론 어떤 분들은 10억이 돈이냐며 고작 10억으로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저는 천만 원도 없습니다. 저에게 10억은 정말 꿈만 같은 돈이고 어떻게 해서든 모아야 하는 돈입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저는 꿈을 꿉니다. 넓은 부엌에서 맛있는 요리를 하는 꿈을 꿉니다. 빵도 직접 만들고 마카롱도 직접 만들고 여러 가지 이색적인 음식들도 직접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대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넓은 부엌을 가진 집을 사는 게 어디 쉽나요? 물론 돈 버는 게 제일 쉽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저는 돈 버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게 느껴지거든요. 그러니 저는 우선 돈을 아껴야 합니다. 돈 버는 재주가 없으니 돈을 아끼고 또 아껴서 목돈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돈을 벌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돈을 굴리고 또 굴려야지, 소비하는데 써버려서는 안 됩니다. 저도 마카롱이 먹고 싶고, 유기농 버터가 먹고 싶고, 옷장 가득 옷을 채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소비를 해버리면 어떻게 집을 살 수 있나요? 제 나쁜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이런 제 마음도 모른 채 돈을 쓰기에 급급합니다. 그도 저랑 결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럼 같이 돈을 아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니, 돈을 아끼지는 않더라도 빚이라도 내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는 항상 신용카드 결제와 휴대폰 결제를 사용합니다. 그렇게 빚으로 소비합니다. 그걸로 뭘 사는 것 같으세요? 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걸 사는 것 같으세요? 아닙니다. 그저 먹는 것, 게임, 그리고 무슨 컴퓨터 같은 것을 사는데 씁니다.
그의 소비 습관을 보고 있으면 솔직히 결혼하기가 겁납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이 든달까요? 1원이라도 아껴야 목돈을 만들 수 있고 목돈을 만들어야 빠르게 돈을 불릴 수 있습니다. 똑같이 10% 수익률을 얻는다고 해도 목돈이 100만 원이면 10만 원을 버는 것이고 목돈이 1,000만 원이면 100만 원을 버는 겁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어떻게 소중한 돈을 소비하는 데 다 써버릴 수 있겠습니까?
남자친구는 제게 너무 발악하며 산다고 말합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즐기자고 말합니다. 저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인생을 즐기려면 우선 돈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리고 돈이 있으려면 우선 지금 돈을 쓰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제가 틀렸나요? 제가 너무 이상한 삶을 살고 있는 건가요? 공명정대한 여러분이 말씀해주세요. 제 삶에 반드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걸로 남자친구와 갈등을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말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여러분이 제게 부디 고견을 남겨주세요.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