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Nov 12. 2021

남편과 14,000보를 걸으며 보낸
새삼스러운 하루

새삼스러움이 가져온 소중함의 의미


SNS 피드를 넘기다가 한 브랜드의 새로운 캠페인 문구와 마주쳤다. 새삼스럽게, 새삶스럽게. 평소 잘 쓰지 않는 '새삼스럽다'라는 형용사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맞아, 새삼스러운 일은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일이 되지. 카피 잘 뽑았다'라고 생각하면서 며칠 전 요란스럽고 새삼스러웠던 우리 부부의 하루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연애 9년 차에 결혼해서, 이제 결혼 3년 차.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은 우리 부부가 1만 4,000보를 걸었던 하루.


영화 <극적인 하룻밤> 스틸컷


평소 주말이면 느지막이 일어나 대충 씻고 적당히 입은 뒤 집 앞 카페를 향한다. 좋아하지만, 평일에는 먹지 않는 ‘바질 토마토 크림치즈 베이글'과 ‘바닐라 라떼'를 시킨다. 크림치즈가 넉넉히 들어있는 베이글을 한 입 물고 나면 이제야 주말 같다. 알람 소리가 아닌 먹는 음식으로 몸에게 알리는 주말.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아니, 아무 날도 아니지만, 새삼스럽게 우리가 다른 날로 만들었다. 8시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깨끗하게 씻고, 어차피 마스크를 써서 가려지는 입술에 꼼꼼히 립스틱도 바르고, 무거운 필름 카메라도 챙겼다. 비장한 각오를 하고 집을 나섰던 날. 전국에 세찬 바람과 강추위가 예고된 토요일 아침 9시였다.


용산의 한 브런치 카페


우리는 용산에 위치한 브런치 카페부터 시작했다. 이곳으로 말하자면, SNS에서 발견하고 조용히 저장해둔 곳으로, 남편이 좋아하는 분위기와 음식들이 가득해 함께 가야겠다 생각해둔 곳이었다. 언제 한 번 가봐야지 하던 차에 관심 있던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웨이팅은 하기 싫어 오픈런을 하기로 결심. 그리고 브런치를 먹기 위해 하루를 일찍 시작한 김에, 나 아니면 남편이 갈 일 없는 곳들로 하루를 채워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남편 힙 게이지 채우기' 프로젝트.


브런치 가게를 시작으로 알고 보면 재밌는 전시 중인 연희동의 철물점, 유난히 라떼를 좋아하는 남편과 가고 싶었던 카페, 독특한 베이글 가게 그리고 서울역에서 진행 중인 타이포 전시 관람 후, 을지로의 맛집들까지. 내 SNS 피드를 요란하게 장식했던 곳들로 남편을 모셨다. 계획은 필요 없고, 그냥 나만 따라오면 된다는 드라마 주인공이 할 법한 말과 함께.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모습을 SNS에 올리면, 친구들이 오늘 도대체 무슨 날인 거냐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메시지를 읽으며 남편도 나도, 이렇게 되어버린 우리 상황이 재밌어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주말이면 집에서 고양이들과 보내는 하루를 올리던 사람들이니 친구들도 우리가 새삼스러워 보였을 거다.


영화 <뷰티 인 사이드> 스틸컷


가을이지만 겨울인 듯 추웠던 그날 저녁. 용산, 연희동, 서울역 그리고 을지로까지. 돌아가는 길에 걸음수를 확인하니 14,000보가 찍혀있었다. 그럼에도 술이 없는 게 또 아쉬워 을지로 노포에서 도루묵을 포장해 집에 돌아와 막걸리 한 병을 나눠 마셨다. 그래, 이왕 할 거면 마지막까지 제대로 해야지. 몸이 따뜻해지니 잠이 몰려왔다. 


갑자기 추워졌던 날이라 즐겁게 놀고 와서 감기라도 걸릴까, 둘이 무거운 겨울 이불을 함께 덮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 재밌었지?"
"응, 나 무슨 생일 같았어."
"내일은 집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갈 거야."
"나도."

이런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다시 복기했다. 하루 종일 함께 하는 데이트를 마치고, 바로 옆에 누워 오늘 데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새삼스럽게, 우리가 가족으로 함께 지내는 지금이 소중해졌다.






▼ 웨딩해 콘텐츠 더보기 ▼

아버지와 비슷한 남편, 정말 부모를 닮은 사람에게 더 끌리는걸까?

내 뱃살에 은근한 경고를 날리기 시작한 남편

딩 호구 탈출방! 결혼 준비 함께 나눠요!



매거진의 이전글 형편 어려운 백수 애인, 알고보니 코인 대박친 부자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