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에겐 쉬운 것들이 왜 저에겐 어려운 걸까요?
"자네 팔자에 자식은 없어. 가정을 꾸릴 운명이 아니야."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저는 괜스레 눈썹을 찡그린 채 그녀를 바라봅니다. 이런 내 눈빛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속인은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고요는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갑니다. 대신 무속인의 음성이, 정말 내 운명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그 음성이 방 이곳저곳을 차지합니다.
"괜히 왔구나. 넌 시간만 낭비했어."
내 간과 심장이, 그리고 위와 창자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합니다. "맞는 말이야." 나는 그들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운명이라는 게 있을까요?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제가 아는 건 단 하나, 제가 운명을 필요로 한다는 것뿐입니다.
왜일까요? 나는 왜 운명을 필요로 할까요? 약하기 때문이겠죠. 내 삶을 변명하고 싶기 때문이겠죠.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운명이니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겠죠. 죽을 만큼 노력하기는 싫고, 노력하지 않은 것에 죄책감도 갖기 싫어하는 나. 이게 제가 운명을 필요로 하는 이유입니다.
"아기를 갖고 싶어."
그는 밥을 먹다 말고 이렇게 말합니다. 새하얀 밥알 위에 반짝반짝 윤기 나는 장어가 놓여있습니다. 저는 연구하고 또 연구했습니다. 그에게 맛있는 장어 덮밥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요. 장어를 다듬고, 느끼함을 잡아줄 소스를 만들고, 흰 밥과 어울리는 영롱한 색을 내는 것. 저는 이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그가 장어를 먹고 힘이 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아기를 갖고 싶다고 합니다. 그냥 "하고 싶어"라는 말이면 충분할 텐데요. 우리는 아기를 갖기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그게 우리 결혼의 조건이었습니다. 그가 마음을 바꾼 걸까요?
"말해 봐. 정말 아기가 갖고 싶은 거야, 아니면 콘돔 없이 하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정말 아이를 갖고 싶어. 물론 콘돔 없이 하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내 자식이야."
"하지만 우리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잖아."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할 때가 됐어."
"내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 계속 아기를 갖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럼..."
그가 뜸을 들입니다. 어찌나 뜸을 잘 들이는지 쿠쿠나 쿠첸이 그에게 뜸 들이는 법을 배워야 할 정도입니다.
"내 아이를 낳아줄 사람을 찾아야지."
아, 제 심장은 쿵 하고 아래로 내려가고 또 내려갑니다. 우리가 결혼 전에 했던 계약이 이렇게 파기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낳는 게 두렵습니다. 왜일까요? 저 같은 자식을 낳을까 무섭기 때문입니다. 저는 좋은 딸이 아닙니다. 솔직히 다리 밑에 버려져도 좋을 딸이지요. 전 저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자식을 키울 자신이 없습니다. 이는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느껴오던 것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단란한 가족을 보며 저는 "내 인생에 저런 행복은 허락되지 않았어"라고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제가 부모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자세히 적지는 않겠습니다. 아마 적고 싶어도 적을 수 없을 겁니다.
저는 이제 결정해야 합니다. 이혼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아이를 가져야 할까요? 아이를 낳기도 전에
이렇게 지레 겁을 먹는 게 과연 맞는 행동일까요? 대부분의 여자들이 아이를 갖기 전에 이런 불안감을 느끼나요? 주변 친구들은 아이를 많이 낳고 싶다고들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제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묻고 싶습니다.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이 있을까요? 그리고 삶에 과연 운명이라는 게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