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Dec 24. 2021

부부간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두 사람만의 표현법'

결혼 후에도 사랑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결혼과 함께 연인은 배우자가 된다. 매일 봐도 아쉬워서 시간을 쪼개고 쪼개 약속을 잡던, 기념일은 물론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 같은 연인들을 위한 날마다 고급스러운 식당을 예약하고 값비싼 선물을 준비하던, 분초 단위로 애정 표현이 가득한 연락을 주고받고 주변의 이성들을 질투하던 시대는 결혼을 기점으로 끝나고 말았다.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스틸컷

이제는 애써 시간을 내고 만날 약속을 만들지 않아도 언제든 남편을 볼 수 있다. 집 대출금을 갚기 빠듯해 결혼기념일과 생일을 제외한 모든 기념일은 그냥 넘기기로 했다. 어쩔 때는 카톡이 와 있는 것을 보고서도 느긋이 쉬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답장을 보내지 않기도 한다. 코로나 시국이다 보니 이성은커녕 가까운 친구나 지인들도 만날 일이 많지 않다.


폭풍 같았던 연애를 뒤로하고 진입한 결혼이라는 세계는,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바다 위에 같은 배를 타고 둥실 떠있는 느낌이다. 이전보다 훨씬 평화롭고 따뜻하고 친밀하지만, 연애 시절에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격렬하게 오르내리던 감정이 잔잔해진 자리가 문득 허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차분한 편이라 표정 변화도 많지 않은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


볼 때면 나를 이전처럼 사랑하는지 불쑥 묻고 싶어진다. 아니, 내가 그를 이전만큼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이에 사랑의 불꽃이 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은 규칙 같은 것이 있다. 전제 조건은 깊은 밤 또는 이른 새벽, 서로 비슷한 타이밍에 잠든 것도 깬 것도 아닌 상태가 되었을 때다. 이때 한 쪽에서 물을 떠다 달라고 부탁하면, 다른 쪽이 군소리 없이 떠다 나르는 것이다. 물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컵을 개수대에 넣고 침대로 돌아오는 것까지 포함되는 일련의 의식이다. 그러고는 서로 토닥이며 다시 잠에 든다.


영화 <결혼전야> 스틸컷


잠이 많아 매일 아침 일어나기 괴로워하는 내가 한밤중에 침대에서 나가 물을 떠오다니, 놀라운 일이다. 신기하게도 남편이 꿀꺽꿀꺽 시원하게 물을 마시는 모습이나 갈증을 해결하고 다시 곤히 잠드는 모습을 떠올리면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매번 “이것이 사랑의 힘이군” 하는 생각이 든다. 입장을 바꿔 내가 비몽사몽하며 부탁할 때 남편이 선뜻 일어나 물을 떠오면, 별것 아닌 물 한 잔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과 애정이 녹아 있는 느낌이다.


“잠들기 전에 미리 침대 옆 협탁에다 자리끼를 떠다 둬라”거나 “자기 물은 자기가 가져다 마시는 게 맞다”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하지만, 연애할 때는 서로를 위해 일부러 번거로운 일을 하느라 애쓰면서 사랑을 확인하지 않나. 부부가 된 후에도 번거로움을 참아가며 서로를 위해 굳이 해주는 일이 한 가지쯤 있다는 게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둘만의 무엇’이 있다는 게 내심 좋다.


물론 네가 제일 예쁘다느니 너 때문에 행복하다느니 하는 간질간질한 애정표현은 불러주는 대로 따라 말하라고 해도 못하는 그의 모습에 입이 삐쭉 나올 때도 있다. 프러포즈도 내가 먼저 했는데, 어쩌다 특별한 날에는 서프라이즈로 이벤트 한 번쯤 해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하다못해 꽃다발이라도 사다 줬으면 하고 바라게 되기도 한다.


영화 <해피 뉴 이어> 스틸컷
영화 <해피 뉴 이어> 스틸컷


이런 바람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면 ‘욕심이다’하고 서둘러 털어 버리려 애쓴다. 대신 일상의 틈새마다 사랑이 있으니까. 배가 고파도 내 퇴근을 기다렸다가 꼭 함께 식사를 하려고 하는 것이나 생선이 식탁에 오르는 날에는 가시며 껍질을 깨끗이 발라 살만 먹기 좋게 내 앞에 놓아 주는 것, 무수히 나오는 쓰레기들을 내가 손댈 틈도 없이 말끔하게 분리 배출해 두는 것, 주말에는 이불에 감겨 있는 나를 일으켜 어디든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 것, 밤이면 침대 끝까지 굴러간 나를 끌어다가 품에 안는 것까지. 소박하고 잔잔해서 누구에게 자랑스레 말할 수는 없지만, 연애의 격렬한 감정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을 채워주는 소중한 순간들이다.


모르긴 해도 이런 소소한 것에서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서로를 위한 작은 말과 행동에서 사랑을 읽으며 사는 것. <사랑과 전쟁>에서는 다루지 않는 결혼의 진짜 모습 아닐까?






▼ 웨딩해 콘텐츠 더보기 ▼

신혼부부가_크리스마스를_보내는_방법

부부간_방귀는_안녕하신가요?

딩 호구 탈출방! 결혼 준비 함께 나눠요!

매거진의 이전글 절교 직전까지 갔던 친구의 뜻밖의 결혼 소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