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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Dec 29. 2021

결혼식에서 춤추는 신부는 꼴불견?

축하와 응원, 격려의 마음으로 채웠으면 하는 결혼식


“결혼식에서 신부가 춤추면 꼴불견인가요?”


제목을 보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내용을 읽어 봤다. 하객으로 참석한 결혼식에서 신부가 깜짝 이벤트로 춤을 준비했는데, 춤을 추는 동안 특히 신랑 쪽 하객들의 반응이 아주 싸늘했다는 것이다. 은근히 뭐라고 하거나 비웃는 듯한 사람도 있더라는 글인데, 글보다 댓글 반응이 더 놀라웠다. “어르신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하객들이 영혼 없이 박수만 친다” “우아한 웨딩드레스 입고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등 날 선 비난들이 줄을 이었다.


KBS2 <한번 다녀왔습니다> 이유리 인스타그램 (@leeyuri007)


신부의 춤뿐일까, 결혼식에서 뭔가 색다른 것을 해보려고 한다는 글에는 대개는 ‘하지 말라’는 만류가 따라온다. 특히 신부에게는 “평생 한 번 드레스 입는데 제발 조신하게 공주처럼 있어라”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외국도 아니고, 한국 결혼식 문화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말도 덧붙인다.


과연 그 ‘한국 결혼식 문화’란 무엇일까. 우리나라 결혼식은 사실 국적 불명이다. 형태와 복장은 서양의 것을 가져왔지만, 한국의 현실에 맞춰 변형되어 있다고 할까. 보통 떠올리는 서양식 결혼은 비교적 짧고 간결하게 서약을 나누는 순서와 피로연장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와 춤, 케이크 커팅과 건배, 여러 게임과 이벤트를 하는 순서가 구분되어 있다.


그러나 식사를 하는 와중에 무언가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한국으로 옮겨 오면서는 “피로연=식사”로 거의 굳어졌다. 축가, 각종 영상 상영, 양가 덕담, 친구의 축사, 간단한 이벤트 같은 이런저런 순서들은 자연히 예식 중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어차피 국적 불명, 고작 120년 남짓 한 시간 동안 변화하고 만들어가고 있는 결혼식 문화인데, 신랑신부가 어떻게 결혼식을 구성하든 어떠랴. 결혼식에 꼭 있어야 할 것으로 여겼던 주례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양가 부모님의 덕담이 채우게 된 것도 불과 10여 년 새의 변화다. 신랑신부가 동시 입장 혹은 각각 단독 입장을 하는 것, 신랑신부가 직접 서약서를 낭독하는 것, 신부가 신부대기실에서 나와 하객맞이를 하는 것 등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은 결혼식의 여러 모습 역시 용감한 누군가의 시도에 의해 시작됐다.


KBS2 <한번 다녀왔습니다> 스틸컷


평생 한 번, 많아야 두세 번쯤 직접 하게 되고, 대략 스무 번쯤(더 많을 수도 있지만) 참석할 결혼식인데, 이왕이면 다양한 게 좋지 않나? 하객의 눈에 거슬리지 않을 순서들로 채우려다 보니 결혼식이 뻔하고 재미없는 것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결국 한 두 번 결혼식에 참석하면 순서를 뻔히 꿸 정도가 되고, 나중에는 어느 결혼식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가 된다. 아무런 흥미도, 즐거움도 느낄 수 없으니 참석을 하게 돼도 축하의 마음보다 “빨리 식 보고 밥 먹으러 가야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결혼식은 다 똑같고 재미없어, 청첩장이 고지서 같다니까”라고 느끼면서도, 결혼식을 조금 새롭게 만들려는 신랑신부의 색다른 시도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다니 아이러니할 뿐이다.


물론 모든 시도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니, 신랑신부가 준비한 야심찬 시도가 나의 취향이나 가치관에는 썩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결혼식은 간결하고 경건한 것을 선호해서 아버지와 친구분들의 남성 4중창 축가, 신랑 큰 누님의 축사 외에는 특별히 눈에 띌만한 순서를 넣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내 취향일 뿐, 축하를 해주러 참석하게 된다면 한 몸 던져 가장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이 하객의 역할이니까. 실제로 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친구 부부는 입장할 때 노래와 랩을, 퇴장할 때는 춤을 췄다. “정신없는 결혼 준비의 와중에 춤과 노래와 랩까지 준비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감탄의 마음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SBS <질투의 화신> 캡처


나에게는 평생 참석한 수많은 결혼식 중 한 번이지만, 그 부부에게는 평생 한 번뿐일 결혼식이다. 비교나 평가의 마음은 내려놓고, 그 자리를 축하와 응원과 격려의 마음으로 채웠으면 한다. 최소한 결혼식 당일 육성으로 비난이나 조롱을 하는 것만은 삼가는 것이 하객으로서 예의가 아닐까.


반대로 하객들에게는 수많은 결혼식 중 한 번이지만, 나에게는 평생 한 번인 결혼식이다. 어차피 모든 하객의 마음을 100%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 스스로의 로망과 취향, 가치관이라도 만족시킬 수 있는 결혼식을 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각각의 결혼식이, 한국의 결혼식 문화가 좀 더 다채로운 것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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