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을 지향하게 된 이유
20대 끝자락을 달리고 있어서일까. 요즘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는 단연 ‘결혼’이다. 결혼 시기는 언제가 적절한지, 스드메 비용이 대략 얼마인지, 없는 남편, 없는 시어머니 욕하기까지 다양한 대화가 오간다. 즐겁게 떠들다 보면 어느새 내가 대화의 주제가 되어있을 때가 있다.
“P야, 너는 결혼 언제 할 거야?”
“P 결혼 안 한대.”
“엥? 결혼을 왜 안 해?”
“비혼주의자래.”
“저기, 비혼 지향 주의자야...”
비혼 지향 주의자. 내가 생각해도 어감이 참 이상한 단어다. 비혼주의자도 아니고 비혼 지향 주의자라니. 의미는 말 그대로 ‘비혼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결혼을 아예 하지 않겠다고 단언하기에는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몰라 여지를 남겼다. 사실 한 입으로 두말하기 싫어서 작은 창구를 하나 내놓은 셈이다.(비겁해도 어쩔 수 없다) 물론, 기본적으로 비혼에 대한 신념은 강하다.
왜 비혼을 지향하세요?
사람들은 비혼 지향 주의자라고 말하고 나면, 자연스레 묻는다. ‘왜 비혼을 지향하세요?’
사실, 그때마다 어떻게 답해야 할까 고민했다. 저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인데 어쩌고저쩌고 구구절절 TMI를 뿌리는 건 쿨해보이지 않고, 단순하게 ‘혼자가 좋아서요’라고 대답하면, ‘혼자는 외롭잖아.’, ‘나이 들면 어떡할 거야’ 등등 고리타분한 말들이 쏟아져나와 이마저도 좋은 대답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비혼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고, 질문을 들었을 때 말없이 이 글을 마패처럼 보여주려 한다.
문유석 판사님의 책 <개인주의자 선언>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싶다. 내 공간을 침해받고 싶지 않은 것이 내 본능이고 솔직한 욕망이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나는 이 문구에 깊이 공감했다. 인간관계에서도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하고, 사적인 공간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누구와 평생 함께 살아갈 자신이 없다. 물리적인 공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칠 때 휴식을 취하는 내면의 방, 내면의 동굴이 필요한 나는 이러한 나만의 공간을 존중받고 싶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면 괜찮을까?’라고도 생각해 봤었으나 그럼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차라리 옆집에 사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다.
결혼을 하면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 며느리로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남편 밥을 챙겨주고, 아이를 씻기고, 시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는 등 여러 역할이 요구된다. 지금도 나를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씻기려고 하는 게 쉽지 않은데, 내게 요구되는 일들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내 몸 하나 챙길 여유가 없는 나에게 결혼은 굉장히 부담스럽고, 체력이 필요한 일이다.
만약 결혼을 하더라도, 한 명이 희생하는 독박살림은 전혀 하고 싶지 않다. 가장 이상적인 결혼 생활은 남편과 내가 동등하게 가정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실현해 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아직까지 아내가 슈퍼우먼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이를 낳아 기른다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곤 한다. 부모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단순히 모성애만 가지고 육아를 할 수는 없다. 건강하고 성숙한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경제적, 정신적으로 기초 토대를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미성숙한 나는 아직 이러한 능력이 부족하다. 게다가 엄마가 항상 하는 ‘너랑 똑같은 딸 낳아봐라’라는 말처럼 나와 똑 닮은 주니어는 사양하고 싶다.
그럼 연애 안 하실 건가요?
비혼을 지향하게 된 이유까지 밝히고 나면,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럼 연애 안 해?”
비혼 = 비연애가 아니다. 결혼과 연애는 다른 문제다. 결혼만 안 한다 뿐이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구는 대단하다. 결혼이라는 제도와 이로 인해 변화되는 나의 생활이 싫을 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당연 찬성이다. 연애가 반드시 결혼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을 원한다면 생각해보겠지만.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화려한 연애를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