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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Feb 21. 2022

집 대출금 70% 갚아줘야
반반결혼이라는 애인

반반결혼 때문에 파혼합니다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는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직장도 잃고 희망도 잃은 우리는 결혼과 출산은 고사하고 어느새 살아남는 것,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두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미래를 계획하고 결혼을 한다고 해도 인원 수 제한 때문에 원치 않는 형태로 결혼식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끝을 모르는 불안한 현재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 모아 집을 사고 투자 열풍에 가세하게 되었다.


이렇게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불안 심리의 파생 효과 때문인지, 우리가 구매해야 하는 것들의 가격이 전체적으로 상승했다. 그 중에서도 주거는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단연 화두에 오를 만큼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오죽하면 명절에 한자리에 모인 친척들로부터 “나이도 있는데 만나는 사람은 있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라는 공격을 받았을 때 “한 15억만 보태주시면 집 사서 결혼 준비 시작해볼게요”라고 방어할 수 있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떠돌고 있을까.



그만큼 주거 문제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과거에는 아들 가진 집에서 결혼시킬 때 어떻게 집을 해줘야 할지 골치가 아팠다면, 이제는 영혼까지 끌어 모으다 못해 탈탈 털어도 쉽게 살 수 없을 만큼 높아진 집값 때문에 여유 있는 집이 아니고서야 남자가 집을 마련해오는 일은 일반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그렇기에 결혼할 남녀가 자신들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함께 갚아나가는 식으로 집을 마련하고 있는 게 요즘 추세다. 어쨌든 '두 사람이 어렵게 마련한 집에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결말이라면 그나마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새 출발을 하기에 앞서서 빚더미에 눌려 숨막히는 발걸음을 떼게 된 이들은 종종 경제적인 문제로 다투게 된다. 그리고 종국에는 이것이 걸림돌이 되어 파혼에 이르기도 한다.


지인의 지인의 지인, 그러니까 생판 남의 파혼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듣게 되었다. 주식, 연금 저축과 같은 재테크 방법론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어느새 내 집 마련으로 이어졌고, 내 집 마련은 다시 반반결혼으로 이어졌다. 같은 자리에 있던 지인은 자신의 지인의 지인이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었는데, 이 엄청난 행운이 사실은 불행의 씨앗이었다며 말을 꺼냈다.


JTBC <기상청 사람들> 스틸컷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A와 B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양가에서 얘기가 오가던 중 A가 아파트 청약에 당첨이 되었다. 당장 가진 돈이 얼마 없었던 A는 은행에서 전체 금액의 80%를 대출받아 집을 소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출 금액이 80%가 넘었고 이를 혼자 벌어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A는 B에게 “내가 집을 해왔으니 혼수는 네가 채우고, 나머지 대출 금액은 내가 3, 네가 7의 비율로 해서 갚아나가자”라고 제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대출금의 70%를 갚으면서 혼수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A가 “내가 집을 해왔다”라고 주장하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았던 B는 이에 대해 A에게 따졌다. 하지만 A는 자신의 생각은 확고하다며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면서 “만약 내가 이 아파트에 당첨되지 않았다면 애초에 우리 벌이로는 서울에 내 집 마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청약 당첨된 당시의 액수보다 3배 이상 대출을 받고 샀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청약에 당첨됨으로써 서울에 내 집 마련을, 그것도 지금 시세의 1/3 가격으로 사게 되었으니 나는 이 집을 마련하는 데 반 이상 보탠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네가 혼수랑 남은 대출금의 70%를 갚는 건 당연하다. 그래야 공평한 반반결혼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문제로 꽤 오랜 시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두 사람은 결국 지친 B가 항복을 선언하면서 이별로 관계를 끝냈다. 그리고 A는 여전히 자신이 제시한 유리한 조건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B를 어리석다고 말하며 서울에 ‘자가(물론 대출이 80%이지만)’를 소유한 자신에게 걸맞은, 이 정도 대출금은 흔쾌히 갚아줄 수 있는 사람을 새로이 만나겠다며 벼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사랑과 결혼의 본질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앞에 두고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물론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경제적 어려움까지 극복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결혼의 본질인 ‘사랑’보다 경제적인 부분이 관계에 있어 더 중요한 가치가 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사랑만 있고 의지만 있으면 단칸방에서 시작해 내 집 마련까지 가능한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철저한 반반 결혼’이라는 목표 아래 수년 간의 끈끈한 관계도 하루 아침에 끊어내는 세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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