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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Feb 28. 2022

그 누구도 사랑을 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하는 게 사랑이 아니더라도


“아직도 모르겠어? 넌 날 사랑하는 게 아니야. 넌 그냥 나와 자고 싶은 것뿐이야. 넌 왜 네 성욕을 사랑이라고 말해? 도대체 넌 왜 자신에게 이토록 솔직하지 못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우리가 표정만으로도 대화할 수 있는 동물이었다면,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거짓 없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동물이었다면. 만약 그랬다면 삶은 더 단순하고 소박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한때 함께 했던 사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의심합니다. 내 말을 잘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내 말을 알아듣는 척하는 것인지. 그는 어떨까요? 그 역시 나를 바라봅니다. 그리고는 의심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자신을 거부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몸값을 높이기 위해 전략적으로 자신을 거부하는 것인지.



이것이 우리들의 삶이고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합니다. 삶은 매 순간 협상이고 정치이며 이익을 얻기 위한 투쟁입니다. 다시,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 누가 생존으로부터 자유롭습니까? 생존하기 위해서는 법이 정하는 한도 내에서 타인을 속이고 이용하여 이익을 얻어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물질을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나는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매우 경멸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많은 돈을 벌고 있어. 그렇기에 네 앞에 나설 자격이 생겼다고 생각했지.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 난 너와 함께 했던 그 시절의 내가 부끄러워. 능력이 없어서, 빌어먹을 돈이 없어서 너와 헤어졌던 그때의 내가 너무 부끄러워. 그래서 그동안 생각했지. 꼭 성공하자. 꼭 성공해서 다시 네 앞에 나타나자. 이런 내 마음을 어째서 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야? 난 몇 년 동안 널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살았어. 이런 내 마음을 어째서 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야?”


난 그녀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왜 기뻐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나는 나 스스로를 낭만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을 위해 열심히 살았던 나를 보며 그녀가 감동할 거라고, 그래서 다시 나와 함께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아, 내가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면!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내 마음이 이렇게 괴롭지는 않을 텐데!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이토록 초조해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녀의 웃음이 행복을 표현하고 그녀의 울음이 불행을 표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허나 인간의 웃음은 행복뿐만 아니라 불행까지도 표현하고 인간의 울음은 불행뿐만 아니라 행복까지도 표현하죠. 


"나는 네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난 너를 안고 싶고 네 뺨에 입을 맞추고 싶고 어쩌면 너와 한 몸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래도 될까? 네가 내게 그 모든 것들을 허락해줄까?"


“오만한 소리를 잘도 하는구나. 네 마음이 사랑이라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으려면 우선 넌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해. 그래야 네 마음이 사랑이 맞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인간이 사랑이 뭔지 알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에 대해 아는 것처럼 떠들더라. 꼭 너처럼 말이야. 이건 사랑이 아니라느니, 저건 사랑이라느니 하는 헛소리를 하고 다니더라고. 왜 그래? 넌 왜 이렇게 솔직하지 못해? 아는 건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는 게 맞는 거 아니야? 넌 왜 모르는 걸 안다고 해? 설마 네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거야?”


언어는 인간을 기만한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고 해서 사랑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언어에 속는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도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은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실제로 그 어떤 것도 지칭하지 않으니까. 그것은 그저 단어일 뿐이다.


“그럼 내 마음은 뭔데? 난 널 보면 가슴이 뛰어. 네가 웃는 걸 보면 나도 웃게 되고 네가 우는 걸 보면 나도 울고 싶어져. 이게 사랑 아니야? 어떻게 이게 사랑이 아닐 수 있어?”


그의 마음은 정말 사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신하지 말아라. 그 누구도 사랑을 알 수 없으니 그 누구도 사랑을 하고 있다 자신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자기 욕망을 사랑이라고 속여가며 평생을 살 수도 있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도 있다. 그는 돈이 많다. 그녀가 그 돈을 거절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녀는 매력적이다. 그가 그녀의 매력을 돈으로 사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두 사람은 손을 잡을 것이고 어쩌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행동들을 사랑이라고 확신하지는 말자. 사랑은 죽는 그 순간까지 추구만 할 수 있을 뿐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이 아니라면 또 어떤가? 


연애와 결혼은 생존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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