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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Feb 14. 2022

꼭 나의 새장 안에
가둬둘 필요는 없다

자유로운 새의 노랫소리가 가장 아름답지 않은가


“잘못된 선택이었어. 그냥 적당히 즐거운 관계만 유지할 걸 그랬어.”


새로운 남자 친구와 사귀기 시작한 지 고작 3개월 된 친구의 첫마디였다. 당연하게도 나는 “왜?”라고 물었고 그녀는 “그냥. 이게 맞나 싶어서”라는 두루뭉술한 대답을 내놓았다. 뜨거운 커피가 식다 못해 차가워졌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친구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와 남자 친구는 친구의 친구로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저 친구 사이였던 그가 한 가지 부탁을 해왔고, 그것을 해결해주는 과정에서 몇 번 만나 도움을 주다 보니 더욱 친해졌다고 했다. 고마워서 밥 한 번 사주고, 저번엔 네가 밥 사줬으니 이번엔 내가 영화 보여준다면서 두 번 만나고, 이렇게 만나는 횟수를 늘려가다 보니 두 사람은 어느새 썸을 타고 있었다고 한다.



친구는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자신은 굳이 구분하자면 ‘썸 단계’에서의 즐거움 정도로도 만족스러웠다고. 사실 그녀는 당시에 우리가 썸의 단계에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둘 사이에 친구 이상의 오묘한 기류가 흐르긴 했지만 그 또한 너무 편하고 좋은 사이이기에 그런 것이라고 무심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각자의 속도와 마음의 크기가 달랐던지, 남자는 관계의 진일보를 위해 고백을 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친구는 고백을 완곡히 거절하면서 뻔한 멘트를 던졌다.


“미안. 난 우리가 지금 이대로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꼭 남녀 관계가 연인으로 발전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이렇게 한 번씩 만나서 맛있는 밥 먹고 재미있는 영화 보면 되지. 난 남녀 사이에도 마음이 잘 통하는 ‘진짜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하지만 남자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가 싫은 게 아니었던 친구는 수 차례의 구애 끝에 고백을 받아주었다. 사귀기로 한 후에도 이전과 다름없이 데이트를 즐겼고 그녀 또한 그 시간들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미래를 이야기하며 관계의 진지함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녀에겐 오히려 관계에 대한 회의가 밀려들었다. 그래서 지금의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고 했다. 그저 만나면 좋고 즐거운 관계였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연인관계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끝끝내 이 깊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과 특별한 관계가 되기를 원한다. 두 사람 사이에만 존재할 수 있는 특별함과 견고함을 바라는 것이다. 감정이 점점 깊어지면 그 사람을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남자 친구, ‘내’ 여자 친구처럼 그 사람을 지칭하는 말 앞에 나만이 부를 수 있는 소유격을 붙임으로써 타인과 세상을 향해 우리 두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이임을 알리고 싶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관계의 진전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저마다 상대에 따라 원하는 관계의 거리감과 깊이감이 있을 텐데, 너무 급격하게 좁아지거나 멀어지면 이에 부담을 느낀 한쪽이 결국 관계의 울타리를 벗어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욕심이 나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거리를 유지하면서 조금의 아쉬움을 가지는 게 욕심 내 억지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나에겐 힘든 일이 되더라도 관계가 아예 단절되는 것보다 낫다고 느낀다면 더더욱.


새는 새장 안에 갇혀 있을 때보다 자유롭게 날아다닐 때 더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주는 법이다. 나의 새장 안에 갇힌 새가 더 이상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귀지 않게 된 후 눈물 흘리는 것보다는, 내 손아귀에 잡히지 않더라도 그 날갯짓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 모두에게 더 행복한 일일 수 있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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