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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Oct 28. 2019

아프냐? 내가 더 아프다

부모라는게 그런가? 아이가 아프니 내 맘은 더 아프다

오늘은 16년 전 이야기를 기억하며, 그때의 일을 써 내려가 봤어요.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많이 힘들었었던 거 같아요. 물론 지금은 다른 어려움과 힘듦이 있지만, 그래도 다져진 내공으로 하루하루 행복한 가정을 지켜나가려고 우리 가족은 애쓰고 있습니다. 




항상 찾아오는 명절이지만 올 명절은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아들을 데리고 내려간 첫 귀경길, 우리에게 특별했었던 만큼 부모님께도 특별했을 날이었다.

  하시던 사업에 실패하시고 이 , 저 일 하시며 재기를 생각하시던 아버지에게도, 나이 드셔서 가족에 보탬이 되려고 밥장사를 시작한 어머니에게도 웃을 일이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땐 그랬다.

 

 이런 우리 가족에게 첫아들, 첫 손주라는 감투를 쓰고 우리에게 온 귀한 녀석.

그 귀한 아들 녀석을 데리고 방문한 고향길은 나에게도 흥분되고, 설레는 길이었다.  이제는 제법 걸어 다니며 그 조그만 입을 오물거리며 내는 소리가 엄마, 아빠로 들릴 때면 들뜬 기분에 세상 행복을 다 가진냥 계속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자식이란 부모에게 그런 존재임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철들었죠.)


   짧지만 즐거웠던 명절 기간, 부모님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손주를 보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인자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 그 자체였다.

  즐거웠던 만큼 시간도 빨리 지나갔고, 처가에서 목을 길고 빼고 기다리실 장인, 장모님 생각에 아쉽지만 부모님과 다음을 기약하고 처가를 가기 위해 서둘러 나설 준비를 했다.

  본가와 처가가 멀리 떨어져 있었던 터라 짧은 명절 기간 중에  본가에 들렀다 처가로 가야 하는 일은 어린 아들에겐 무리였다.  참고로 본가는 포항이고, 처가는 강원도 삼척이다. 어린 손주에게는 쉽지 않은 외가댁 방문길이라 여겼는지 아버지께서는 처가에 미리 와있는 처남과 중간쯤(영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에서 만나는 접선 장소까지 아버지의 차로 데려다주었다.


  처남 차로 갈아타고 난 후  찰나의 순간에 그 날의 작은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돌아서는 할아버지에게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던 그 고사리 같던 손을 보지 못하고, 차 창문을 닫아 버렸다. 갑자기 터진 울음소리에 놀라 아이를 보니 창문 사이로 손이 껴있었고, 놀란 가슴에 창문을 연다는 것이 더 올려버리는 바람에 아들의 울음소리는 더 커져 버렸다.


   부랴부랴 창문을 내리고 손을 살펴보니 손바닥에 선명하게 남은 빨간 멍 자국. 아직 아기라 그런지 뼈는 유연해서 다치지 않은 듯했고, 다행히 멍이 든 것 말고는 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난 냉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직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미안해. 아들. 아빠가 아프게 해서 미안해."


   마음이 너무 아픈 나머지 아들이 얼마나 아팠을까 알려고 한 나의 행동은 창문 틈에 손을 넣고 아들과 똑같이 창문을 힘닿는 데까지 올려보았다.  그 순간 아팠다, 손이 아니라 마음이.  어리석어 보인 내 행동을 부모가 아닌 사람은 이해가 안 되겠지만,  자식을 둔 부모라면 아마도 이런 나의 행동에 조금은 이해가 될 듯하다. 자식을 향한 부모란 이름의 사랑의 무게가 아픔으로 느껴졌던 하루였다.

 

  사실, 손이 끼인 것은 이 차 창문 사건 이외에도 집 현관문 틈에 아들 손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고 닫았던 적이 있다. 아들 손을 여러 차례 끼게 한 나의 부주의가 이런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것 같아서 지금도 그 작은 사건이 더 생각 나는 듯하다. 지금은 장성한(?) 우리 아들이지만, 녀석 어릴 때 이런 일도 있었고, 부모가 이런 마음이었다는 건 알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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