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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08. 2019

두려움을 떨친 마법같은 위로의 노래

우리 가족 올레 도전기(2)

2015년 11월의 어느 날, 4년 전의 추억을 글에 담았어요.

기존에 썼던 『벼락 앞에 장사는 없었다...』 에세이  다음 이야기입니다. 앞에 글을 읽지 못했던 이웃분들을 위해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4년 전 우리 가족 첫 올레길 도전기를 제 기억만으로 써 내려간 에세이입니다.



  저녁부터 흐려진 날씨가, 결국 새벽녘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 올걸 대비해서 애들까지 우의는 준비했지만,  11월의 날씨에 비까지 오니 추위가 걱정이 되었다. 어른도 어른이지만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전날의 피로에도 잠은 일찍 깨버렸다.


  전날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랑 빵을 사놓은 덕에 아침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당장 빗속에서 아이들을 끌고 남은 올레길 여정을 갈지 말지 많이 고민이 됐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날이 밝아지며 빗살은 옅어지고, 굵게 내리던 비는 어느새 가랑비 정도로 바뀌었다. 원래의 여정이면 20Km가 넘는 거리가 남았지만 전날  많이도 걷고 아이들도 지친 상태인 데다 비까지 와서 우선 15코스 완주 후 16코스 해안 길까지 5Km 정도만 더 걷는 걸로 목표를 바꿔 세웠다.


   숙소 앞에 아열대 식물이 밀림을 이루는 금산공원이 자리하고 있어서,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서기 전에 시 다녀왔다. 30~40분 동안 낮은 구릉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이지만 내린 비로 조금은 미끄러웠던 길 때문에 생각보다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그래도 천해의 경관 및 우거진 아열대 숲에다 아침 안개 덕에 금산공원은 왠지 오래된 열대우림의 조금은 낯선 풍경을 우리에게 보여주었고, 내린 비로 걱정하던 우리들의 긴장을 어느 정도 풀어 주기에는 충분했다.  출발 시간이 조금은 늦었지만 10시가 넘은 시각에 각자의 배낭을 메고 우의를 입고 흩뿌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길을 나섰다.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고, 빗살도 굵지 않아 오히려 덥지 않아 좋다는 생각으로 둘째 날의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길은 우리에게 그리 호락호락 좋은 조건을 주지 않았고, 길을 나선 지 1시간이 조금 넘은 시점에 세찬 비와 함께 강한 바람으로 우리를 괴롭혔다.


   출발지로부터 4Km가 넘는 지점에서 만난 비바람으로 우의를 채운 상의 윗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든 옷가지, 신발이 젖어 갔고 우리는 서둘러 비를 피하고, 잠깐이라도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마침 고내봉으로 오르는 길의 초입에 보광사라는 절이 있었고, 절 입구 처마에 서서 급하게 비를 피하고, 초코바와 물로 체력을 잠시 보충했다.  


  참고로 지금은 15코스가 고내봉을 오르는 길이 없어서 코스 난이도도 중이고, 거리도 16.5Km이지만 우리가 15코스를 가던 4년 전에는 현재의 코스와는 다른 고내봉을 올랐다 내려가야 하는 코스였고, 거리도 19 Km가 넘는 난이도 상 코스였다.  물론 새로 개발된 15-B(해안 길 코스) 코스도 없었다.

  완전히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그리 힘들어하지도, 보채지도 않았고 비가 조금 잦아든 시점에 우린 다시 고내봉을 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래도 어제는 날도 좋았고, 해안 길이라 올레길 여행자들이 간혹 보였지만 오늘은 궂은 날씨 덕에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고내봉을 오르는 길은 그리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나무도 많았고, 세찬 비바람과 어두운 날씨 덕에 어둑둑해진 밤길을 걷는 양 을씨년스러웠다. 설상가상으로 고내봉 주변으로 보이는 무덤들도 마음에 자리 잡는 두려움에 한몫을 하였다.


  집들이나 사람들이 고내봉 정상을 오르면 바로 보일 것이라는 기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고내봉 정상에서 내려가는 내리막길은 높은 잡풀과 억새 등으로 잔뜩 우거진 긴 숲길이 었다. 기나긴 길을 보는 순간 겁이 더 났고, 아이들의 상태도 걱정이 돼서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길을 제대로 가고 있긴 한 건지, 이대로 길을 헤매다 아이들이 다치지는 않을지, 험한 산중(?)에 멧돼지나 들개 같은 게 나오면 어떡하지 등등 갖은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 상태로 내리막을 내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예쁘고, 힘찬 행진곡.


딸아이가 아주 예쁘고, 힘차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달팽이 관련 노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확실치는 않다. 사실 그 당시 딸아이가 가장 두려워했던 곤충(?)이 달팽이여서 본인 파이팅을 위해 부른 노래란 건 나중에 알았다.


  시간이 지나서 정확히 어떤 노래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딸아이의 노랫소리에 내리던 비는 낭만과 추억으로 바뀌었고, 길 위에 올레길임을 표시하는 리본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어느새 마음을 가렸던 두려움의 먹구름이 가뿐히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

  딸아이의 예쁘고, 힘찬 행진곡 그리고 묵묵히 아빠 옆에서 걸어주던 큰 아이의 밝은 미소 덕에 난 부끄럽지만  내딛던 발걸음에 더 힘이 났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하하~~ 올레 와서 참 우리 아이들에게 많이 위로받는구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내봉을 다 내려와서 만난 첫 번째 식당에서 양해를 구하고, 식사를 하려고 아이들을 보고서는 너무 대견하고, 너무 예쁘다는 생각에 한편에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아직 갈 길이 남아있어 아이들을 격려하고 맛있는 점심으로 한 끼 든든하게 채웠다.  그날 들른 식당 사장님의 배려 덕에 아이들은 젖은 옷 때문에 추워지고 있었던 몸의 한기를 따뜻한 음식과 실내의 온기로 덮일 수 있었다.



  식사를 하고 15코스 완주까지 남은 길은 1~2Km 내외였고, 마지막 고내포구까지 가는 길도 그냥 길이 아닌 비 온 뒤 수로여서 신발은 그냥 포기하고 걸었다. 오히려 아이들은 그 길 덕에 조금 더 신나게 걸었던 듯하다.

  2시가 넘은 시간에 드디어 15코스 종료지점인 고내포구에 도착했고, 계획은 16코스 일부를 걷고 신엄포구에서 우리의 올레 여정을 끝내려고 했지만 비도 많이 맞고, 아이들 건강도 걱정이 되어서 아내와 상의하여 우리의 첫 올레 도전기를 15코스에서 마무리 지었다.


  쏟아지던 비바람을 뚫고 8Km가 넘는 거리를 2일 차에 걸었고, 비록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함께 해준 우리 가족들이 모두 대견하고, 고마웠던 여정이었다. 그나저나 두려움에서 헤매던 아빠를 위로했던 우리 딸아이의 행진곡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진다. 


우리 딸아이한테 물어보면 지금은 기억하려나?

#제주도 우리 가족 첫 올레길 도전기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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