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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Oct 28. 2019

신입이라 회사 다니는게 가장 어려웠어요

회사가 처음이라 실수했어요

직장 생활을 처음 하던 때가 생각이 나네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저는 군 입대할 때만 해도 집안이 그리 어려운 환경은 아니었어요. 학교 다니면서 혼자 하숙이나 자취를 할 수 있도록 집에서 지원이 가능한 정도의 여유는 있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막상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는 학교 앞에 하숙을 하기 위해 집에 손을 벌리기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을 알게 되었죠. 부모님께서는 자식 기죽이지 않기 위해 학교 앞 하숙을 알아보라고 하셨고, 처음 몇 달 정도는 하숙하며 지방에 계신 부모님 주머니 사정을 잊어버리고 살려고 애썼죠. 하지만 채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같은 서울에 있는 친척 어른 집에 들어가게 되었고, 다행히 2학년 2학기부터 2년 동안은 조금은 불편했지만 돈 걱정을 덜 하며 지낼 수가 있었어요.


   하지만 머리는 굵었고, 친척 어른들이 잘해준다고는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그리 매일 좋을 수는 없잖아요. 가끔은 서운할 때도 생기고, 오해도 하고.  친척 집 형들은 몇 년을 대학 공부 준비를 했는데도 대학교를 못 갔는데 조카 학교 뒤 바라지하시는 게 그렇게 기뻐서 하시지는 않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4학년 2학기 초부터 싼 가격의 월세라도 보증금이 없거나, 적은 자취방을 알아봐서 나가려고 했죠.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취업하여 돈을 벌여야 된다는 생각이 절실했어요. 여러 번 입사원서를 내보고, 면접도 봤지만 마음만 급했지 준비가 아직 많이 부족했었더라고요.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원하는 독립을 하게 되었어요.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짜리 정말 보잘것없는 보금자리였지만, 마음만은 정말 날아갈 듯 좋았었죠.


  이렇게 어렵게 들어간 직장이다 보니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했었고, 선배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사소한 실수까지 하지 않으려고 많이 조심했었던 거 같아요.  

   아마 회사를 다닌 지 2~3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이 나요.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 선배들도 별로 무섭거나 두려워하지 않던 저에게 첫 직장 사수는 어찌나 두렵고, 어려운 존재였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뭘 그렇게까지 졸아있었을까 싶을 정도로요.  그 선배는 저 포함한 3명의 신입사원 교육 담당이었고, 최종 수습 기간이 끝날 때 최종 평가 및 고과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더 어려웠나 봐요.  


  업무가 IT 기술직이다 보니 직장에서 공부해야 할 것들이 정말 많았고, 다행히 제가 입사한 회사는 3개월의 수습 기간 동안 선배들이 돌아가며 강의도 해주고, 혼자 스터디할 수 있는 테스트 환경을 편하게 제공해 줘서 대학 때도 많이 안 해본 그 어려운 네트워크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며 회사를 다녔죠.


  그렇게 바짝 얼어서 회사를 다니던 날 제게 날아온 아주 반가운(?) 국가의 부름.  

'예비군 통지서'가 통장 아주머니를 통해 제게 전달되었고, 국가의 부름을 빠질 수가 없었던 저로서는 아주 기쁘게 예비군 훈련이 있을 그날을 확인했죠. 날짜가 2주 뒤인 것을 보고, 들고 다니던 가방 앞주머니에 예비군 통지서를 넣고, 다음날 회사에 가서 선배에게 2주 뒤에 예비군 훈련이 있다고 보고했어요.


 선배 왈(曰),

 

 "그래? 미리 팀장님에게 보고하고, 관리팀에는 예비군 훈련 참석 통지서 사본 제출해. 그리고 당일 나한테 얘기하고 일찍 나가면 돼."


 그 선배는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줬어요.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에 예비군 훈련에 참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실 살짝 들뜨기까지 했어요. 그만큼 회사에 있는 것 자체가 힘이 들었었다는 방증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예비군 훈련이 더 귀찮고, 짜증 나는 일인데 말이죠.  미리 팀장님에게 보고 다 하고, 관리팀에도 훈련 며칠 전에 통지서 사본 다 제출해 놓은 상태라 맘 편하게 그날 이야기하고 3시 30분쯤 퇴근하면 되겠다 생각했었어요.

   시간은 지나서 제가 그리도 고대했던 그날이 왔어요. 아침부터 들뜬 기분은 감출 수가 없었어요. 누가 보면 뭐 군에서 포상휴가라도 나가는 사병 같았을 거예요.  오후가 되자 자꾸 시계를 쳐다봤고, 시간은 맘 같이 않게 더디게만 흘러갔어요. 꾸역꾸역 흐른 시간이 어느덧 3시 30분이 되자, 전 그 선배에게 가서 허락을 구했죠.


"김 대리님, 미리 말씀드린 것 같이 오늘 예비군 훈련이라 일찍 퇴근해야 하는데 지금 나가봐도 되겠죠?" 저는 기쁜 마음을 들키지 않게 감추고, 당당하게 용기 내서 말을 꺼냈죠.


선배  왈(曰),

"어? 그게 오늘이었어? 그래, 늦지 않게 얼른 퇴근해."


   그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당연히 허락을 해줬을 테지만 그 순간에는 선배가 어찌나 고마웠는지 '감사합니다'란 말을 연발하고 미리 싸놓은 가방을 메고 회사를 나왔어요.  햇살도 좋았고, 기분도 한껏 들떠 있던 상태라 지하철로 가는 발걸음이 너무 가벼웠죠. 집에 가서 예비군복을 갈아입고 근처 집결지로 참석하면 되는 저녁 훈련이라 시간적 여유도 있었죠.

   천천히 회사 근처 지하철역을 내려가서 지하철을 기다렸어요. 마침 플랫폼으로 지하철이 도착하였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하철에 몸을 실으려는 순간 조금은 이상한 생각이 제 머리를 스쳐갔죠. 그냥 싸한 느낌이랄까?  혹시나 해서 예비군 훈련 참석 통지서를 꺼내어서 참석 요청 날짜를 본 순간 정말 머릿속이 아득해지더라고요.

   실제 예비군 훈련 날짜보다 하루 훈련을 빨리 가겠다고 이리 서둘렀던 거죠. 정말 이 순간은 머릿속이 하에 지고, 덥지도 않은 날씨에 머리와 등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대로 그냥 집으로 가버려' 하는 생각도 들었었죠.  잠깐의 들뜬 기분 때문에 날짜를 잘못 알게 된 저는 이 순간을 어찌 넘겨야 좋을지 생각을 짜내고 짜내 봤는데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아주 짧은 시간이 무척이나 긴 것처럼 지나가고 우선은 입사 동기에게 전화를 걸어봤어요.


   :  "사무실 분위기가 어떠냐? 김 대리님이나 팀장님 외근 안 나갔어?"

동기 :  "어? 왜 전화했어? 예비군 훈련이라며."

    :  "나, 어쩌냐? 오늘 훈련인지 알았더니 내일이네. 날짜를 잘못 알았어."

동기 :  "그래? 그럼 오늘은 그냥 퇴근해버리고, 내일 또 훈련 가야 한다고 얘기해. 지금 와서 어쩌겠어."


   잠깐이지만 그 녀석 뒤통수를 때려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어요. 난 심각한데, 녀석은 대수롭지 않게 얘기해서 자기 일 아니라고 너무 막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 싶더라고요. 어찌 되었든 결단은 내려야 하고, 길지는 않았지만 지하철까지 오는데 여유를 부린 덕분에 퇴근한다고 사무실에서 나온 뒤로 30분이나 지났죠. 일단 그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죠.


"대리님, 죄송한데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전 말을 꺼냈어요. 정말 어렵게, 어렵게 말이죠.

"응? 뭐가, 퇴근하는 길인데 무슨 일 있어?" 조금은 의아해하며 김 대리는 퉁명스럽게 얘기했어요.

"제가 예비군 훈련 날짜를 잘못 알아서요. 그게 내일이더라고요." 날아가는 정신을 꼭 부여잡으며 전 울먹이며  말했어요.

"뭐~? 야, 당장 튀어와라. 팀장님 안 계실 때 빨리 와!!!"  김 대리의 높은 톤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어요. 정말 정신이 달나라쯤 가버릴 것만 같았죠. (저 엄청 겁쟁이였나 봐요)

   당장 큰일이 날 것 같은 선배의 목소리에 난 더 위축이 되었고, 10여 분 거리의 사무실까지 정말 발에 땀나도록 뛰어서 5분 만에 갔죠. 조용히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는 통화했던 그 선배도, 팀장님도 그리고 다른 여러 선배들도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자신의 일을 보고 있더라고요. 조용히 다시 제 자리로 가서 앉을 때쯤 뒷자리에서 누군가 '키득키득' 되는 웃음소리가 들렸고, 잠시 뒤에 웃음소리가 사무실에 여기저기에서 들려왔죠.


  조심히 뒤를 본 저는 기가 막히는 광경을 봤죠. 뒤쪽에 앉아있던 선배들과 팀장님은 저를 보고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고, 나와 통화했던 선배는 잔뜩 얼어있는 저를 더 난처하게 했죠.


"회사 있는 게 정말 불편했는가 보다. 날짜까지 하루 당겨서 예비군 가려고 하고. 하하~"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일찍 간다고 할 때부터 선배는 알고 있었고, 제가 사무실을 나가고 나서는 아마 제가 금방 다시 돌아올 거라고 선배들에게 귀띔을 했다는군요.  결국 제 동기들까지 저를 속여먹었고, 그날은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40분의 일탈이었지만,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기억이 생생히 나네요.  이날의 대참사는 평생 기억될 추억거리를 하나 선사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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