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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Oct 29. 2019

벼락 앞에 장사는 없었다. 왜 하필 그때...

우리 가족 첫 올레 도전기(1)

                                                                                     

2015년 11월의 어느 날,  4년 전의 추억을 글에 담았어요.


혹시나 제목만 보고 무언가 자극적인 것을 상상하셨던 분들에게는 미리 심심한 사과를 드려요.  이번 에세이는 우리 가족 첫 올레길 도전기를 제 기억만으로 써 내려간 에피소드임을 미리 말씀드려요.  이해를 돕고자 큰 아이 초등학교 6학년, 둘째 아이 초등학교 2학년 때에요.

                                       


                                                                                                                                          

2015년 조금은 쌀쌀해지기 시작한 11월의 어느 날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는 소식에 아이들은 많이들 들떴고, 여행 일정에 대해 물어볼 때만 해도 제주도 올레길을 간다는 이야기만 해서 어릴 적 갔던 제주도 여행만을 떠올리고는 마냥 신나 하는 녀석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참고로, 아이들은 3박 4일의 일정 중에 이틀 동안 40Km 가까이 걷는 일정은 꿈에도 모르고 있는 상태다.

 

   사실 좋은 길을 걷는 여행을 처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비싼 박물관이나 유명한 여행지를 찾아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곳을 비싼 돈 내고 구경하는 여행이 마음에 차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즈음 가을 단풍이 한창일 때 찾은 백담사 여행길에서 천천히 걸어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좋은 길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멋스러움에 푹 빠져 올레길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첫날은 오후 출발 비행기라 숙소로 바로 이동하여 근처에 있는 한림공원 식물원을 찾아 조용히 워밍업을 했다. 약 2시간 도보로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어차피 식물원 안에서 움직이는 거라 아이들은 큰 불만 없이 열심히 구경하고, 뛰면서 놀았다. 이 정도면 내일 출발해도 무리가 없을 듯했지만 다음 날 일정을 확인하고는 조금 걱정이 앞서는 건 올레 초보자로서 어쩔 수 없는 걱정이었다.

                                                                                                               

  숙소는 올레 14코스 중간쯤 11Km 지점쯤에 있는 펜션이었다. 당장 내일 걸어야 할 길인 15코스 숙소까지 거리는 19Km. 막상 걸으려고 하니 아이들에게 조금 무리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아이들을 믿고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올레길로의 첫출발의 날이 밝았고, 11월 초의 어느 가을날 우리는 협재 해수욕장을 끼고 비양도가 보이는 멋진 올레길 위에 섰다.  태양은 11월 가을 햇볕같이 않게 따사로웠고, 우리의 첫 여정을 축하라도 하듯이 날씨는 화창하고 포근했다. 해안 길을 따라 오전을 걷다 보니 어느덧 14코스의 종료지점에 왔고, 14코스의 끝을 알리는 간세를 보며 다시 한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아이들에겐 3시간 가까이 걸은 길이 힘이 들 때도 되었고, 허기도 질 때여서 15코스 시작 전에 맛있는 점심으로 아이들 기분을 어느 정도 '업(Up)' 시켜놓을 필요가 있었다. 어시장 쪽이라 크지는 않아도 작은 식당들이 군데군데 있었고, 인심 좋은 할머니가 하는 식당에서 든든한 백반을 먹으며 후식으로 감귤까지 얻어먹는 호사 뒤에 다시 길 위에 섰다.

                                                                                                                                                             

  사실 14코스 끝나는 시점에만 해도 아이들은 불평과 불만을 나에게 털어냈고, 더는 힘들어서 못 가겠다 어찌나 볼멘소리를 하던지 그때만 해도 정말 걸어서 15코스 숙소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애들은 애들이다. 밥 먹고, 후식 먹여놨더니 떨어진 체력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팔팔하게 웃으며 길 위에 섰다.


'대견한 내 새끼들. 저녁엔 아빠가 맛있는 고기 사줄게.' 하며 마음속으로 어찌나 대견했던지.


  하지만 숙소까지 남은 길은 길고도, 멀었고 또 바닷길과는 다르게 내륙으로 가는 코스는 아이들에게는 신기방기한 길은 없어 보였다. 마냥 따분해 보이는 길 좌우로 밭이 많고, 가끔 나오는 시골 동네를 지나는 길이 전부였다. 물론 나에겐 나름대로 제주 전통 돌담길을 끼고도는 시골 동네길도 이쁘게 보였지만 말이다.

  오후에 출발해 나선 길은 지도상으로 아직 4km 이상 남아있었다. 11월이라 해는 짧았고, 숙소까지는 아직 더 가야 해서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서 가자고 아이들을 독려했다.  사실 마음은 아이들보다 길을 이끄는 내가 더 걱정이 많이 됐다.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일렀지만 멀리 먹구름이 몰려오는 모습이 보였고, 앞쪽에 갑자기 낙뢰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는 정말 아이들이 보고 있는 걸 잊어버린 채 화들짝 소리를 질렀다. 주변엔 피할 수 있는 건물이나 나무도 없었고, 완전히 탁 트인 밭과 넓은 들판이 전부였다. 사실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라는 것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비가 안 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그 순간만큼은 든든한 가장의 모습이 아닌 번개를 보고 놀란 겁 많은 '그냥 어른', 아니 '쫄보 어른'이 되어 버렸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리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우리 막내 딸아이 하는 말


"아빠 괜찮아? 많이 놀랐어?"


 순간 아내의 얼굴을 보니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딸아이를 보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부정도 긍정도 아닌 ''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마른하늘에 날벼락' 덕에 더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고, 6시 전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다들 두려움 반 뿌듯함 반으로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야 허기진 것을 알게 되었고, 아이들도 배가 많이 고팠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음식점 등을 찾아봤으나 숙소 주변에는 식당이 1도 없는 동네였다.


  배달 음식을 먹기로 하고, 어렵게 어렵게 전화된 곳이 치킨집이었다. 배달이 밀려서 1시간은 걸린다고 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주린 배를 잡고 1시간을 참고서야 치킨을 먹을 수 있었다. 두 아이는 정말 1도 불만 없이 치킨을 맛있게 먹었고, 오히려 엄마, 아빠 힘들지 않냐고 걱정하는 말들을 한다. 

                                       


  녀석들 언제 이렇게 컸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고, 두 아이의 발 상태나 몸 상태를 확인해봤다. 다들 그 말랑말랑한 발들도 장장 19Km의 긴 거리를 혹사했는데도 정말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제일로 튼튼해야 할 내 발은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발가락에 물집이 두 군데나 잡혔고, 오히려 아이들이 아빠 걱정을 하게 만들어 버렸다.


"아빠, 발가락에 잡힌 물집 아프겠다. 어떡해?"


#제주도 우리 가족 첫 올레길 도전기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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