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주변에 이런 분 안 계시지요?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
내가 먼저 예의를 지키며 고운 말을 사용해야 상대방도 나에게 친절을 베푼다는 뜻의 속담이다. 그런데 이 속담을 잘 살펴보면 항상 고운 말도 고운 행동도 내가 먼저 해야 남도 그렇게 한다라고 가르친다.
가끔 자의적으로 오는 말이 고우면 가는 말도 고울 텐데라는 생각을 한다. 자의적 생각처럼 이 속담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먼저 이야길 꺼낸 상대방이 나에게 고운 말을 쓰지 않았을 때는 내가 뱉는 말도 거친 말, 나쁜 말이 되어도 괜찮다는 의미 부여가 가능할까. 고민이 되는 대목이다.
난 아파트에 살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큰 건물 안에 여러 가구가 이웃으로 산다는 건 많은 걸 배려하고, 이해하고,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현실은 그렇지가 못한 경우가 더러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마주치는 이웃들에게 인사를 건네면 못내 인사를 받는가 하면, 그조차도 불편한 내색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도 물으시는 감사한 분들도 있다. 가벼운 인사에도 서로 불편해하는 모습에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들었고, 이젠 스스로조차 인사에 인색해져 가는 걸 느낀다.
거절당하고, 불편해할까 봐.....
아래층의 이웃은 베란다에서 흡연을 한다. 겨울을 제외하고 베란다 창문을 대부분 열고 사는 우리 집은 예고치 않은 간접흡연의 고통에 꽤나 시달리고 있다. 아내가 아래층 아주머니에게 여러 번 부탁도 해봤지만 단지 얘기한 그때뿐 바깥양반의 베란다 일탈은 계속되고 있다.
아래층 흡연으로 늘 투덜 되던 때 우연히 아래층 아저씨와 마주친 일이 있었다. 한번 얼굴보기를 고대했던 난 잘됐다는 심정으로 아래층 아저씨와 대면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라했고, 자제를 바라는 경고 가득한 눈빛을 내게 보냈다. 그런 아내의 경고에 움찔한 나는 아내의 의도대로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베란다에서 흡연을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정말 가관이었다.
"에이, 우리 집서 내가 피우는데. 그리고 난 베란다 맨 오른쪽에서만 피니까 맨 오른쪽 베란다 창문만 안 열면 괜찮을 거요."
아무리 배려란 걸 아예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분이라도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나는 잠시 이성이라는 녀석이 어딘가로 나갈까 걱정스러웠다. 잠깐이지만 입에서 나쁜 말을 뱉을뻔했지만 오른팔을 '꾹'잡은 아내덕에 나가려던 이성을 다시 깨울 수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고, 말문이 막혀서 그냥 그 자릴 피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오가는 말이 곱다고 예의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그 말속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있어야 된다. 그런 이유로 내가 하는 말속에 그런 따뜻함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있는지 늘 상기해 본다. 가는 말, 오는 말의 순서가 중요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