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유심히 지켜봤다. 키가 큰 할아버지는, 키가 작은 할머니가 두 걸음 정도 내딛는 모습을 확인한 뒤 찬찬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 다리를 저는 할머니를 위해 미묘한 타이밍으로 보조를 맞추는 듯했다. 노부부의 모습에 가슴 한쪽이 아릿해졌다. 별안간 나는 이런 생각에 휩싸였다. 상대보다 앞서 걸으며 손목을 끌어당기는 사랑도 가치가 있지만, 한 발 한 발 보조를 맞춰가며 뒤에서 따라가는 사랑이야말로 애틋하기 그지없다고. 아름답다고.
그래, 어떤 사랑은 한 발짝 뒤에서 상대를 염려한다.
사랑은 종종 뒤에서 걷는다.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 중
나와 아내는 서로 간의 신뢰나 믿음의 관계가 특별하다.
쉽게 이야기해서 우린 아직도 알콩달콩 서로를 아끼며 위하는 19년 차 부부이다. 실제로도 나는 아내를 많이 사랑한다. 우리 아이들조차 아빠의 우선순위는 엄마라고 할 정도로 나는 한 사람만 바라보는 바보로 살고 있다. 바보로 사는 게 좋은 남자다.
우리를 아는 분들은 항상 시기와 질투를 할 정도로 부부 사이 금술이 좋다. 아내의 가까운 지인들을 만나면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는 인사 후에는 항상 같은 말들을 하곤 한다.
'어쩜 그렇게 잘 살아요' , '늘 한결같으세요' 이런 칭찬들을 하는 통에 번번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는 일이 많다.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직원들이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다르지가 않다. 항상 따뜻한 남편, 다정한 가장으로서의 이미지가 딱 나다. 그래서 그 바보 남편 하길 잘했다 싶다. 사실 주변의 이런 시선이 싫지 않고, 예전 직원 중에서는 종종 나를 가장, 남편으로서의 자신의 롤 모델이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아내와 나의 인연은 연애까지 합하면 25년. 짧지 않은 인생 중에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왔고, 앞으로도 함께 해 나갈 생각이다. 나의 콩깍지는 25년째 벗겨지지 않았고, 아직도 진행형이다.아내와 긴 세월을 살다 보니 할 이야기도 많고, 추억도 많다. 예전 연애 때부터 생각해보면 위문편지, 한 번의 이별, 달콤한 장거리 연애까지. 그 시절 그러고 보니 아내는 날 울리기도 했다.
지난 주말 처가에 갔다가 버스터미널에서 너무도 우연하게 아내의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사실 아내가 너무도 놀라고, 반가워하는 모습에 가까웠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친구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아내가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난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이 나지 않아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인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내가 "오빠, 현지 몰라?" 하는 말에 머릿속에 있던 그 이름을 가진 사람과 지금 마주하고 있는 사람을 매치하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내 머릿속에서 그 친구를 소환하는데 걸린 시간만큼이나 난 반응을 하지 못했다. 아내가 이야기해서 기억했지만,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아내의 친구 얼굴에선 옛날 친구의 모습을 쉽게 찾지 못했었다.
잠깐의 어색함이 지났고, 내가 한 말이라고는 "어, 현지 씨 잘 지냈어?"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기억이 난 거라곤 이름과 얼굴이 떠오른 정도가 전부였다. 인사를 하면서도 망설여졌다. 내가 이 친구한테 반말을 썼나, 존대를 했나.
결국 입에서 뱉어진 말이 이건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애매한 표현으로 아내의 친구에게 인사했고, 짧은 인사 뒤에 아내는 친구와 아쉬움을 뒤로 한채 발길을 돌렸다.
돌아서는 길에 아내가 툭 던진 말에 난 정말 놀랬다.
"오빠, 예전에 기억 안 나? 오빠가 현지한테 먼저 작업하려고 했잖아?"
이 말을 듣고 난 정말 그랬나 기억을 되짚어봤지만, 정말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기억하는 아내에게는 그때 그 일이 조금은 상처였을 테고, 그 시간을 아무리 기억해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 나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인연이 아녔을 것이다.그래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여보, 앞으로도 지금 했던 것처럼 잘할게요. 사랑합니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에서 나온 노부부의 이야기를 읽고서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한 삶을 감사하게 되었고, 앞으로 노부부처럼 늙어서도 아끼며 사랑하며 살아가길 희망해 본다. 그래도 조금 더 욕심내면 나이가 들어서도 우린 함께 걸으며 서로를 아끼고, 위하며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