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학교는 감옥의 다른 이름이 아니길

이상과 낭만의 반대말이 지독하고 고약한 현실이 아니길 빌어봅니다

by 추억바라기

요즘 읽는 인문학 책에서 '학교와 공부'라는 주제로 쓴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릴 때에도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들이 있었고,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학교 가서 공부하기 싫다는 이야기를 가끔씩 들었던 터라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가볍지 않은 주제를 마냥 편하고, 쉬운 글로는 읽히지 않았고, 그렇다고 글 소재로 쓰기에도 쉽지는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에게 학교에서 무슨 과목이 제일 좋으냐고 물었다. 대답하길 '쉬는 시간'이란다. 그러면서 아이는 내게 되물었다.

"아빠, 왜 공부 시간은 길고, 쉬는 시간은 짧아?"

아이의 입장에서는 여간 부당한 일이 아닌가 보다. 50분 공부하고 10분 쉬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아이 입장에서는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다. 50분 공부하고, 50분 놀면 안 될까?


- 인문학은 행복한 놀이터 중에서, 김무영 지음 -

아이의 생각이 너무도 기발하게 느껴졌고, 아이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불만이고, 요구인 것 같다. 나는 이제 두 아이 모두 초등학교를 졸업한 터라 저자의 아이와 같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갖고 있을 법한 고민들을 아이들이 털어놓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또래 아이들은 자신의 나이에 맞는 아이들 나름대로 고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일 테고 이런 고민을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맑고, 순진한 아이의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를 학교에 맡긴 학부형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학교 현실에 마냥 웃음이 나지만은 않는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큰 아이 때문에 얼마 전까지 아내와 나는 걱정을 많이 했었다. 중학교 때까지 학교 내에서 상위 성적을 유지하던 녀석인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1학기 성적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이런 '기대'를 갖고 있는 나의 생각도 바르지는 않지만 해오던 가닥이 있고, 받아오던 성적표가 있는데 늘 공부하던 대로 큰 아이에게 맡기는 스타일을 고수하기에는 결과가 실망스러웠고, 중학교 때까지 공부하던 방식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무언가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는 생각에 아이의 학습 방식에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이야기하는 식이었지만 여름방학이 다 지나도록 좀처럼 변하지 않는 아이의 학습 방식에 아내와 나는 서로 걱정도 해보고 아이에게 잔소리의 강도도 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아이에게 자율이라는 그간 우리의 교육 방침을 깨고 있음을 깨달았고,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으로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기로 했다. 이렇게 평소같이 믿고 기다려준 우리에게 아이는 2학기 중간고사까지 스스로 해보고 안되면 학원의 도움을 좀 받았으면 한다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참고로 아들은 중학교 내내 사교육은 받질 않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2학기 중간고사를 기점으로 자신이 부족하다고 요청하여 사교육의 도움을 받고 있다. 나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한다. 스스로 목표를 가지고 주도적인 학습을 해야지 그 결과가 좋게 나오든, 나쁘게 나오든 이에 스스로가 수긍을 할 것이고, 이는 부모의 간섭이나 반강제적인 학습목표를 강요하는 것보다는 아이의 정신건강과 자존감에도 무척이나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렇게 학원을 쫓아다니면서부터는 가족이 모두 식사할 수 있는 횟수가 줄었고, 가끔씩 아이도 공부하는 게 힘든지 애교 섞인 앙탈을 부리고는 한다. 아들이 얼마 전에 한 말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는 그냥 웃었지만, 웃고 지나치기에는 아들이 안쓰럽고, 그 마음을 알기에 나는 어깨를 두드려 주는 일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빠, 난 할 수 있으면 고등학교를 6년 다니고 싶어요."

"응?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난 아이의 생각이 궁금했고, 그 답을 듣기 위해 아이에게 물었다.

"3년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놀면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나머지 3년은 정말 열심히 공부하며 보내게요. 지금 나이가 딱 놀기 좋은 나이인 거 같아요. 놀기만 해도 후회할 거 같고, 공부만 해도 나중에 후회할 거 같아요."




과거 읽었던 또 다른 책에서는 이런 글을 봤고, 그 평범한 아이의 평범하지 않은 생각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중학교 1학년인데, 그걸 알고 처음으로 혼을 냈대요.

"야, 인마, 너 이렇게 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갈래!" 그랬더니 이러더래요.

"아빠가 나한테 그랬잖아.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돼라 그랬지?"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30등을 했으니까, 난 내 위에 있는 모든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준 거야."

아빠들은 할 말 없으면 뭐라 그럽니까? 보통 이렇게 말하죠.

"이게 입만 살아가지고." 그랬더니 아들이 그러더랍니다.

"아빠, 내가 한마디만 더 할게, 진짜 훌륭한 사회는 나 같은 애들도 잘 사는 사회 아냐? 꼴찌를 해도 괜찮은 사회가 돼야 하는 거지."


- 그럴 때 있으시죠? 中에서, 김제동 저 -


따뜻하면서도 내 자식 이야기면 슬픈 일이다. 예전에 내가 어릴 때 본 영화 중에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생각이 난다. 우리 아이는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아닌, 행복한 아이로 자라나길 바란다고 하면서도 막상 성적이 좋지 않으면 성적순과 행복 순을 같은 선상에서 보는 어른들의 시선이라니......

지금 사는 우리들의 현실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살 세상은 지금보다 나아지길, 정말 꼴찌라도 괜찮은 세상이 오기를 기도해 본다.



이 글을 쓰면서도 피식피식 웃음이 납니다.

우리 아이가 성적이 괜찮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드는 못난 어른인 제가 웃겨서요.

"미안, 아들아!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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