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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pr 01. 2020

힘들어요 여보 그래도 함께 할래요

아내의 정원에도 봄이 왔어요

는 지금 아파트에 살아요.

화분 가득한 정원 같은 베란다를 갖고 있는 아파트에 살아요.

모두 아내 덕이죠.



 이사온지 4년, 이제는 아파트에 사는 게 익숙해요. 하지만 아내는 아직도 아파트보단 화단이 있는 마당 넓은 집을 꿈꿔요. 좁은 반지하에 살던 신혼 때부터 아내의 식물 사랑은 대단했어요. 다세대 반지하 구조상 식물을 놓고 키울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었죠. 하지만 이런 제한적인 장소에서도 아내는 반지하 들어오는 대문 안 길목의 작은 자투리 공간을 십분 활용해 화분을 키웠어요. 이사를 간 3층 연립에서는 맨 위층에 거주하는 장점을 활용했죠. 연립 맨 위층의 특징상 옥상과의 접근성이 좋아서 옥상의 공간을 식물을 키우는 화단으로 활용했어요. 그래도 여러 사람이 올라오는 공간이다 보니 화분이 훼손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실내가 아니다 보니 비가 많이 오는 장마 때나 식물들이 살 수 없는 겨울에는 넓은 베란다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는 했어요.


 다세대 2층에 살 때에는 1층 계단에서부터 각종 화분들을 계단 단마다 올려놔서 출퇴근 길이 마치 꽃길 내려가고, 올라오는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집주인 아주머니도 3층에 살다 보니 왔다 갔다 하실 때 기분이 많이 좋으셨었나 봐요. 가끔 집 앞에서 뵐 때면 아내의 화분들이 집 분위기를 너무 예쁘고, 화사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어요. 아내의 식물 키우기는 계단 화분에 만족하지 않고 주방 밖으로 나 있는 뒷문이 있었는데 딱히 용도가 베란다라고 하기에도 좁았어요. 하지만 아내는 그 뒷 공간에 흙을 붓고, 돌로 막아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한 동안 식물을 심어서 키우기도 했었죠. 하지만 워낙 집들 사이에 둘러 쌓여있는 구조라 일조량이 너무 적어 식물이 잘 살아나가지는 못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아쉽더라도 주어진 환경에 맞춰서 아내는 식물을 키웠고, 첫 우리 집인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나서 비로소 커다란 화단으로 꾸밀 수 있는 베란다를 가지게 되었죠. 이사 올 때 이삿짐센터 직원분이 화분수가 정말 많다고 혀를 내둘러서 저도 좁은 공간에서 많은 식물을 키웠던 아내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이사를 올 당시 베란다를 정원으로 갖게 된 아내의 기뻐하는 표정을 기억해보면 지금도 마음이 뿌듯해지곤 한답니다.  

 베란다에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주고, 베란다 밖으로 화분 걸이를 내어놓고. 아내는 이사 와서 하루하루 화분을 정리하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었나 봐요. 특히 아내는 겨울에도 초록색 풀들을 보는 맛에 지금까지의 식물과는 조금 색다른 식물들까지 집에 들이기 시작했죠. 이렇게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던 아내는 시간이 지나며 소박하지만 조금 더 큰 꿈을 갖고 일을 벌이기 시작했어요.


  이사 온 지 2년이 되면서 아내는 아파트 후문 밖 인도에 조금 있는 틈을 꽃길로 꾸미기 시작했어요. 2월 말부터 좁은 땅을 파서 꽃씨를 심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꽃씨를 집에서 발아시켜 3월 초부터 발아된 꽃씨를 심기 시작했어요. 굳이 좁은 그 틈에 심는 이유를 물었더니 큰 아이 학교 가는 길목이어서 등하교할 때마다 꽃길 걸으며 아들이 기분 좋아지라고 그곳에 심었다고 그러더라고요. 우린 꽃씨를 심고 1주일에 2번씩은 물을 주러 함께 다녔고, 이렇게 정성을 쏟았더니 4월, 5월에 예쁜 민낯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여름까지 백일홍, 미니 백일홍, 메리골드까지 다양한 색상의 꽃들이 기특하게도 형형색색 자신의 자태를 뽐내며 아내의 정성에 보답하며 꽃을 보여줬죠. 길 위에 쪼그리고서 물과 영향제를 주고 있을 때 지나가시는 주민분들이 너무 예쁘다고 한마디 할 때면 아내는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했어요. 

 작년부터는 아파트에 노는 화단을 활용하고 있어요. 관리실에 미리 이야기해서 양해를 구하고, 노는 화단에 국화랑, 백일홍, 과꽃, 메리골드까지 꽃씨를 뿌렸는데 뿌린 씨보다는 많이 꽃을 보여주지 않아서 아쉽더라고요. 코스모스도 함께 뿌려봤는데 군락은 고사하고 꽃을 몇 개 밖에 보여주지 못했어요. 그래도 과꽃, 백일홍, 국화가 늦가을까지 고운 자태를 보여줘서 아파트 단지 입주민들을 기쁘게 한 것 같아 아내는 만족하다고 했어요. 출퇴근 길이 그쪽 동선도 아닌데 저도 왠지 그리로 다니게 되더라고요.

 올봄도 아내의 마당에는 봄이 오기 시작했어요. 코로나로 준비는 조금 늦었지만 오늘 아내와 화원에 가 큰 흙을 포대로 사고, 비료와 물을 챙겨 화단 작업을 했어요. 작년부터 해오던 아파트 빈 화단에 흙을 갈아엎고, 사온 흙과 비료를 잘 섞어 화단에 꽃씨를 심을 준비를 했어요. 작년부터 아내의 화단 작업을 함께 하기 시작했는데 새싹이 올라오는 과정부터 꽃을 틔우는 순간을 지켜보는 재미가 솔솔 하더라고요. 꽃망울이 올라오고, 꽃이 필 때면 무언가 새 생명을 키운 보람에 뿌듯해지는 기분까지 들어요. 암튼 아내의 이런 예쁜 취미 덕에 저도 식물 키우는 재미를 조금씩 알게 되었어요. 혼자 하라면 못하겠지만 아내와 함께라면 뭐 앞으로도 쭈욱 식물을 가꾸는 취미가 가능할 거 같아요. 주말 작업 후에는 위에 사진같이 아내와 둘째가 꽃씨를 뿌리고, 구역별로 작은 푯말 작업까지 해 놓았네요. 올해는 조금 더 다양하고, 풍성한 꽃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린 아내가 생각하는 큰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는 그 날을 준비하며, 오늘도 봄을 준비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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