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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r 30. 2020

아내에겐 특별한 메뉴, 특별할 것 없는 떡볶이

나에겐 특별할 것 없는 메뉴, 특별한 떡볶이

무슨 일인지 아내가 저녁으로 떡볶이를 준비했다. 퇴근하여 저녁 준비하는 아내에게 난 오늘 저녁이 뭐냐고 물어봤다. 아내는 얼른 씻고 나오라고 하면서 오늘은 특별히 떡볶이를 준비했다고 했다. 특별히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집 떡볶이는 지금까지 내가 해왔는데 오늘은 아내의 저녁 스페셜(?) 메뉴로 등장하니 의아했다. 난 얼른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나의 영역을 넘어온 아내에게 '선전포고'로 한 마디 했다.


 "나보다 맛있게 했으면 이제부턴 영희 씨가 쭈욱 떡볶이 담당이에요."


나의 한마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는 알 수 없는 미소만 보내며 맛있게 먹으라고 권했다. 아내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신경이 쓰였지만 밀려오는 허기를 참을 수 없어 난 우선 다른 생각은 뒤로 미루고  떡볶이를 맛있게 먹었다. 먹으면서 내가 했던 떡볶이와는 조금 다른 맛이었고, 콕찝어 이야기하자면 조금 단맛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아내의 떡볶이를 굳이 점수를 주자면 80점 이상을 주고 싶었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뭐 나쁘지 않았다. 표현을 안 했지만 아내는 이미 눈치를 챘을 듯했다. 접시를 박박 긇어먹는 내 숟가락을 봤으니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떡볶이를 다 비운 그릇을 보며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얘기한 것처럼 이젠 영희 씨가 떡볶이 담당이에요."

또다시 아내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냉장고 문을 열고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아뇨, 앞으로도 계속 철수 씨가 떡볶이 해요. 오늘은 제가 만든 게 아니고 이 소스가 크게 한몫했으니까요."  그러면서 오른손에 꺼내 든 작은 소스 봉지를 내 앞에 다시 확인시켜 줬고, 내 눈에 그 빨간색 봉지의 정체가 드러났다. 시판용 떡볶이 소스였다. 아내는 소스 봉지를 흔들면서 한 마디를 더 던졌다.

 

"좀 많이 단 거 같아요. 고추장 양념하고 섞었는데도 많이 단 거 보면요. 역시 철수 씨 떡볶이가 우리 집 대표 떡볶이인 거 같아요."  


 기분 좋게 한 마디 추켜세워주는 아내가 너무 사랑스럽고 이쁜 저녁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30년 정도는 더 내가 떡볶이를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것을 빼고는 뭐 듣기 좋은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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